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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Feb 02. 2021

보편적이지 않은 생각

살인

painting by
Holly Warburton 홀리 워버튼

중고등 학생 시절  일관성 있게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를 보면 목을 조르고 싶다는 생각을 순간순간 했었다.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나도 모르게 염화미소 같은 표정이 된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는 별개로 사랑스러움을 파괴하고픈 감정이 스쳐 지나면서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며
묘한 쾌감 같은걸  느끼곤 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차체만으로도 은밀한 범죄행위를 모의하는 것 같은 나만의 비밀의 방이 생기는 것 같아 그 상상을 혼자만의 보물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이런 일반적이 않은 기이한 생각은  어른이 되면서 완전히 사라졌고.
가끔씩 소설 속 연쇄살인마 같은 사이코패스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되살아나곤 했다.


살인이나 가혹 행위 따위 등에서 쾌감은 얻는다는 건 어떤 감정적 결핍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는 것일까?  보편적이지 않은 이런 감정을 이해 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끄적임의 글을 매일 쓰면서  감정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윤리와 도덕은 언제나 우리의 감정들을 통제해 왔었다.  그런 감정의 통제가 심해지면
마음은 병을 얻기도 한다.
살인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억눌러 왔다.
.
극한의 상황이 아닌 이상은
하늘이 두쪽이 나도 일어나지 않는 감정이었다,.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고 미치도록 힘들 때도 나라는 인간의 감정은 나를 자책할 뿐이지 타인을 가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를 자책 하서 나를 힘들게 하고 결국은 그 자책이 스스로를 죽이는 정신적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들 때 우리는 아주 쉽게 자신을 학대하는 쪽으로 선택을 한다.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살기 위해서 선택하는 행위일 수 있다. 악을 단죄하는 방법 중 가장 통쾌한 행위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감정은 복수를 꿈꾸는 감정이라고 한다.
복수를 향해 칼을 갈 때의 그 감정은 인간을 강인하게 만드는 감정중 하나라고 한다.

나를  괴롭히는 상대가 있다면 복수의 칼을 갈면 갈았지 나를 학대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타인을 미워하는 법조차 모른 감정은 정신적 고자이다.

한때 미움받을 권리가 서점가를 휩쓸고 있을 때
나는 코 빵 귀를 꼈었다. 미워할 사람이 있어야 마움을 받지.....
나는 정말 미운 사람이 없었다. 불편한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아는 타인들에게 맞추어주고 있었고  타인들과의 충돌을 피하고  언제나 중용을 선택했다.

타인을 미워하는 법조차 모르는 감정은 정신적 고자이다.
또한 그 미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 불구이다.
타인에게 맞추면서 자신의 욕망을 내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의 진짜 민낯을 만나면
위험해질 수 있다.

감정적  고자와 불구의 최후는  결국 스스로에게 칼을 들이대고 자학하는 길로 들어선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볼 줄 모르면
보편적 감정 속에서만 갇혀 지내게 된다.

김현이라는 평론가는 좋은 시인은 시인의 개인적  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시가 보편적으로 인식되기 위해서
시인은 보편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해 본다.
작가는 어느 날  살인을 하고 싶을 때도 잔인한 행위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잔인한 마음을 시로써 쓸 때
혼자만의 잔인한 행위를   독자들에게 읽히게 하기 위해 언어는  은유와 상징을 넣기도 하면서. 자신의 광기를 보여주기보다 보편적인 옷을 그럴싸하게 입혀야 한다.
그래서 보편적인 색채를 하고서 문학시장에 나와야지만 대중으로부터 덜 공격을 받고 공감을 얻을 수가 있다.

자신의 행위나 생각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
뛰어난 예술가라는 정의는 결국 보편적이라는 하나의 , 유형에 맞추기를 바라는
사회적 억압일이나 규제일 수도 있다. 진정한 예술은 날 것 그대로여서 불편하고 대면하고 싶지 않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이 많다.

시나 에세이 심리서적 철학서들의 방향은 모두 보편이라는 길을 따라서
순항하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보편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장르인지 모른다.
그 어떤 보편적이지 않은 인물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들의 광기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니.. 보편적인 것만 보려는 사람은 이런 소설이 불편할 수밖에 없으리라.

오늘도 머릿속에 갖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림이라는 언어로
말이라는 음악으로
민낯을 하고 뾰족하게 시작되다가도.
동글동글하고 두리뭉실하게  끝이 난다.

 이제 겨우 미움받을 권리를 외치며
나를 표현하며
세상 밖으로 나온 나!

아직은 보편이라는 옷을 입고 수줍게  거울을 본다.
서슬이 퍼런 날 선 글
금방이라도 칼에 찔릴 것 같은 그런 글
밤에 어디선가 찢어지는 비명 같은 그런 글
핏물이 뚝뚝 떨어져 살갗을 파고 들것 같은 그런 글들이
보편이라는 틀의  옷을 헐크처럼 박박 찢으면서
 자유롭게  비상하는
욕망이  꿈틀대는 걸 느낀다.
그때는 아마 날것 그대로의 소설을  한번 쓸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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