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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Jan 28. 2021

공벌레와 나

우주

길거리에 공벌레 한 마리가 기어간다. 공벌레 앞에 발을 밀었다.


녀석은 가로막힌 발을 장해물로 여기고 방향을 튼다.


계속 공벌레 앞에 발을 갖다 대어도 녀석은 묵묵히 방향을 틀며 가던 길을 간다.

지금. 공벌레를 밟으면 한 생명은 오늘 지구 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전지전능한 신처럼 난 공벌레를 납치해서 집에 가져가 감금해놓고 굶겨죽일수도 있고 사육할 수도 있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뒷산에다 삶의 터전을 바꾸게 할 수도 있다.

공벌레와 나의 세계는 다르다.




공벌레가 인식하는 나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공벌레는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알지 못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종말이 와서 지구가 붕괴되더라도 모르는 세계다.
공벌레에게 나의 발은 그저 자연의 불확실성이 가져온 천재지변일 테고 순응하는 그 어떤 초자연적 현상일 뿐이다. 공벌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신의 뜻이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지능을 가졌지만  인간이라는 나를 인식하는 순간.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의  자각으로 지구의 균형은 깨어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공벌레를 대하듯이
나를 대하고 있는 생명체가 우주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할지 모른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질서에 의해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 수없다.

 공벌레가 나를 인식 못하듯이....... 혹시 공벌레의 세계는 다른 차원이 존재하지 않을까?
양자역학처럼 공벌레와 나를 잇는 새로운 공간이....
공벌레에게 나의 발은 그저 다른 차원이 아닐까?
우리에게 우주가 상상과 관측으로만 존재하는 다른 차원인 것처럼.....





개미와 거미 벌들은 지구 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살아가는 집단이다. 그들은 개체수는 인간보다 많고 잘 조직화되어 있다.

이들보다 더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는 바퀴벌레는 유목민적인 삶을 살면서 인간들에게 깊숙이 침투해서 살아가는 가장 완벽하게 진화된 이동성이 가장 좋은 생명체들이다.
그들은 지구 상에서 자신들이 주인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들에게 인간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일구는 어떤 수단 같은 의미쯤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인간 위에 나를 공벌레처럼 보면서 나를 조정하면서 보고 있는 존재가 없으라는 법이 없다. 지금 이 평화로운 세계는 그 어떤 힘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도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가 모를 뿐일지 모른다.

어쩌면 외계 생명체가 지금 공벌레에게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데. 난 전혀 모를 수 있다. 인식의 체계가 다르다면 말이다.

그 생명체와 내가 속한 공간과 내가 인식하고 있는 공간이 다르니까 말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하겠지.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과 지구 밖의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공간 속 문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벌레에게 차원이 다른 세계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인식의 세계인 것이다.

지구 안에서 다른 차원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한번  기울여 집중해보자.
의식은 어디로 흐르는가?
단지 뇌의 작용일 뿐인가!
차원이 다른 의식의 영역이라면 어떤가!

우리의 마음은 매일 그런 일들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
마음은 또다시새로운 우주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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