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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Feb 16. 2021

천사 미리네 3편

소설

그녀는 자살시도가 실패한 후   시골의  마당이 딸린 작은 집으로

혼자 이주했다.

이때가 어쩌면 나로서도 가장 행복한 때였는지 모른다. 그녀의 안식년은 꽤 길었다.

인간의 영혼 속에서 휴식을 얻는다는 거 일찍이 천사로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삶이었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돈으로 지냈다.

평생을 눈만 뜨면 듣던 음악이 없는 그녀의 집은

고요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종일 먼산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텃밭을 가꾸고 하루 종일 씨를 뿌리고 어떤 날은 이제 겨우 싹이 올라온 텃밭을 종일

보면서 지내기도 했다. 혼자서 보름을 말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하는 일상을

그녀 안에서  느꼈다.



500년 동안 그 어떤 인간에게서도 느끼지 못하는 조용한 시간들이었다.

그녀의 묵언 수행과도 같은 침묵과  조용한 시골 생활로 그녀의 몸은 점점 건강해졌다..

그녀와 동거한 지 3년째 되던 그날.

텃밭에  풀을 뽑다 말고

그녀는 말했다.

"난 행복하지 않을 거야!  그냥 이렇게 죽은 듯이 살게. 그게 기정 씨를 위한 거야."

내가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 안돼 너한테는 너의 전부였었던

음악이 있잖아. 널 행복하게 해 주었던 음악이 있잖아"

그날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틀고서

하루를 보냈다.

첫 클래식 음악이었다.

연주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다시  듣고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음악적 감수성은  나의 언어에 언제나 함께 반응했다.

음악을 하는 인간은 처음이라서인지 과거 느끼지 못했던 예술적 아름다움 이 그녀의 내면에서 느껴졌다.

그녀가 3년 동안 음악을 잊고 있던 사이 그녀의 음악적 영감은 더 예민해져서

새로운 느낌의 음악적 깊이를 만들었다.

그녀는 내가 느끼는 음악적 선율을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불러주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녀는 오랜 시간 보냈다.

 내가 느끼는 우주의 깊이를 알아듣는 듯했고

그 고독을  함께 느끼는 듯했다.

단지 감수성이 뛰어나서 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한 번의 계절이 바뀌고

저녁을 하다 말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미화는

브람스의 현악 6중주를 들으며ㆍ

중얼거린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서 보내 준 어떤

사람이 내 안에 있는 거 같아

종일 그 소리를 듣기도  해.

당신이 보내준 거 맞지?"

나는 침묵했다.

이 여자가 천사인 나를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남편한테 하는 얘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내 말을 알아듣는다.

그녀에게 말했다.

"너의 첼로 연주가 듣고 싶어"

그녀는 콧노래를 멈추더니

창가로 갔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알잖아 난 이제 연주는 안 해"

천사에게도 심장이라는 게 있다면

난 아마 지금 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나의 언어를 듣는 이 여자 나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는 걸까!

그때 이후로 난  영혼 안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영혼이 천사의 존재를 느끼는 건 괜찮지만 실제의 모습을 들키는 일은 내가 소멸하는 시간이 된다. 천상의 법칙에서 천사의 신분을 들키면 천사직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때 이후로

그녀가 나에게 자조 섞인 말을 걸 때

나는 숨죽였다.

"왜 아무 말 없는 거야"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주파수를 차단하고.

그녀가 나의 주파수를 위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때 이후로 나는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그녀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과 동시에 수정작업도 함께 했다.

 나의 존재를 상상 속 영역으로 리셋하는 작업은

힘들었다 그녀의 무의식의 공간은

너무 팽창해져서 나를 위협했다.

나에게 답은 침묵과 그녀의 의식에서 빠져나오는 길 뿐이었다.



.

하지만 그녀의 주파수는 점점 내가 조절하기 힘들 만큼 가까이 접근했다.

침묵의  순간조차도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서로 너무나 깊게 서로에게 몰입했다.

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천사의 영적인 힘을

스스로 통제했다.

난 이제 그녀 안에서 기억만 지우는 일만 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벌면서 그녀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문제는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지금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잘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크게 영적으로  관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혼이 안정되어  있었다. 잠깐이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

내가 침묵을 택한 사이

그녀는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고

시골  생활을 정리했다.


그녀는 미리 예약해 둔

베를린 필하모니 내한공연 날짜에 맞추어

하루 전에 서울로 왔다.

몇 달 전부터 이 공연을  기다렸다.


서울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드레스를 고르는 일이었다.
과거 그녀가  첼로 연주를 할 때 입던 드레스들은 시골로 이사하면서  모두 다 버렸다.
그녀는 연주를 할 때보다 공연을 보러 갈 때 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곤 했다.


그녀에게 드레스를 고르는 일은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내보이는 일이었다.
"이 드레스 레이스가 쫌 많아도 우하한 게 맘에 들어 넌 어때?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네게 들으라는 듯
속삭인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나를 느낄 수 없다.
"난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너 가 있잖아"
조용한  눈은 나를 응시하듯  
바라보았다.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나도
거울 속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단단해 보였다.


베를린 필하모니 말러 교향곡 9번 연주는  한국의 첫 내한 공연이었다.
그녀는 내면의 가장 깊이 있는 음악적 감수성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말러라는 작곡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음악이 없는 5년은
 스스로에게 죽음을 선고한 시간이었다.
남편을 잊기 위해 자신 안의 음악을 거세했다. 연주자는 사흘만 연습을 안 하면 청중 앞에 설 수가 없다.


"음악가들은 결코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영원히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오로지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만 자신을 이길 수가 있다."음악을 손에서 놓았으면서도
그녀는  시골에서 틈만 나면 이 말을 늘 마음속으로 되풀이했었다.


그녀에게 연습은 강박관념 같았다. 첼로 연습이 없는 그녀의 일상은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을 첼로 연주하듯 공을 들여 준비했다.
이른 아침부터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는  
공연장으로 가서 주변을 서성거렸다. 나는  행동하는 감각만을  느낄
뿐 그녀의 생각을 난 읽을 수가 없다.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보러 왔지만 그녀의 내면을 느낄 수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공연장 구석구석 그녀가 모르는 장소는 없다.
냄새를 음미하고 작은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녀는 마음에 담았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움직이기 직전의
모든  정적을 음미하는 듯했다.
1악장이 시작되고 그녀는  몸을 잠시 떨었다.
2악장에서 경쾌한 리듬에 잠시 몸을 흔들고
3악장에 접어들자 말러의 광기 어린 멜로디에 답하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해탈과 초월의 4악장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안에서 일고 있는 전율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이라도 그녀의 그 감격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지금 그녀의 의식 안으로 들어가다는 건 자살행위와도 같다는 걸 알면서
나는 봉인된 나의 영적 에너지를 다시 그녀의 영혼의 주파수에 맞추었다.
축축한 수분 같은 그녀의 영혼.
나는 이 느낌의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때
너무나도 선명한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정적에서 깨웠다.
"지금 내 안에  너 있는 거  다 알아"
천사  마리네.
난 너의 존재를 알아.
다시 돌아왔구나!
 반가워"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동시에 이상했다. 몸 안에서 어떤 독성이 느껴졌다.
"너 도대체 몸에 무슨 짖을 한 거야"
나는 소리쳤다.
내가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 주파수를 조절하고 있을 때 그녀는 나의 주파수를 피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속고 있었다.
그녀는 말러 교향곡을 듣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기 전
나의 주파수를 벗어나
비소를  구입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녀는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나를 감쪽같이 속이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의 존재를 알고부터  나처럼 그녀 스스로도 나를 속이고 모른척했다.
"난 널 만나서 너무 좋았어.
그 칠흑 같은 시간 네가 내 안에 있다는 게 안심이 됐어 "
그녀의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왔다.
그녀는 공연이 시작되자 이미 비소를 삼킨 후였다.
말러 교향곡을 작곡할 때 말러는 심장질환으로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


9번이라는 교향곡의 징크스를 의식하면서도
말러는 9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네 개의 악장에서 삶의 질풍노도가 지나고  마지막 현악기들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다가 결국에는 모든 소리가 사라지자
모든 산자들은 숨을 죽였다. 음악에 대한 정수는 그때 느껴진다.
마지막음이 생명을 다하고 고요 속으로 사라진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면서
다시 나를 불렀다.
"천사 미리네?".
고마워"


말러 교향곡이 끝나자 그 고요 속에  들숨과 날숨의 가쁘게 몰아 쉬었다. 마지막 순간 음이 끝나고
다시 내쉬지 못하는 순간 그 감격과 전율의 순간이 오면 우리의 영혼은 지상을 떠난다.
그녀가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흐른다.
주위에서 비명이 들린다.


잠시 후 그녀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사 마리네. 너와 함께한 5년의 시간이 나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어. "
"너는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그녀의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내 눈앞에서 웃는다.
그녀의 영혼도 눈부시게 아름 더웠다.
나는 울부짖었다.
"넌 아직 생명 시계가 많이 남았어. 난 너의 첼로 연주를 들어야 한단 말이야"
우리는 죽어서야 그 영혼과 조우한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그녀의 영혼을 보면서 나도
그녀가 남편을 보낼 때처럼
울부짖었다.


"그녀를

 그렇게 둔
내 잘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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