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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15. 2021

용서

그릇


용서하지 못한 어떤 것들


터미널 그릇 상가. 만원 주고 얼씨구나 하고
샀는데....
몇 번 쓰지도 못했다.
어느 날
뚜껑을 닫았는데 뚜껑이 붙어 버렸다.


서로 아귀가 안 맞아 어긋난 다기 차 주전자.
버리지도 못하고
이쁘지도 않은 것을
 이태리산 고급 찻잔 세트 옆에
세워 둔다.
쓰지도 못하는 거
장식장을 열 때마다.
만지작만지작 이걸 깨버려 말어?

불량품인  거지 내 손이 무슨 죄가 있겠어?
싸구려가 다 그렇지....

하지만 뭐가 그리 급했을까?
싸구려라고  급하게  아무렇게나 뚜껑을
 닫아버린 건가!

불쑥불쑥 분노와 억울함이 차 오른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저 불량품을 만든 장사치들이 아니다.
싸구려라고  아무렇게나 만든 장사치들이 아니다.

늘 조급하게 달려드는 싸구려 같은 마음이다.
아귀가 안 맞아 옴짝 달짝 못하는 저 뚜껑처럼
저 안에 갇혀 버린 마음들이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것들이 모두 저 뚜껑 안에
들어서 아우성친다.

이태리산 차 세트는   아끼고 어르고
부드럽게 매만지고 닦아 광이 난다.

아무렇게나 던지고 포개지도 않는다.
부딪힐 때도 여유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구석에 처박힌  차 주전자는 한숨소리만 낸다.

 차 주전자 속
삐그럭 떨그럭 찌그러진 소리는
내 마음이다.

주전자를 탓하는 게 아니다.
내 조급하고 못난 마음이
저 속에 갇혀 있다.

오늘은  찻잔 뚜껑을 깨버리고
몸통만이라고 써 볼까?

장식 장안 내 용서 받지 못한
조급한 마음은 싸구려 차 주전자를
노려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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