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바다

위로중독

by 토끼


나의 마음 안에는 늘 야누스적 두 얼굴이 있다.

그녀의 불행 앞에 그녀의 모든 말들에 공감하고 아파하며 그녀의 행복을 기도하는

마음과.

그녀의 불행은 모두 그녀 스스로가 자초한 자업자득이라고 확신하는 잔인한 마음.



그녀는 불안장애 환자이면서 갖가지 모든 희귀병들을 가진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저 글로써만 만났다. 서로의 글을 팔로우해주면서 그녀의 스토리들을 읽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이 앓고 있는 모든 병들이 마음의 병에서 시작되었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응어리를 풀어야지만 자신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날것 그대로 욕의 토시 하나도 검열하지 않고 그대로 써 내려갔다.



그녀는 글 쓰는데 재능이 있었다. 글은 흡입력이 있게 빨려 들어가서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자연스레 빙의되었다.


하나뿐인 딸에게 24시간 거동이 힘든 자신의 병시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친정 가족들로부터 아프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철저히 버림받았고,

남편의 외도로 인해 끝나버린 결혼생활의 비극과

시댁의 무관심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과 육체가 붕괴되는 이야기를 아주 디테일하게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가부장적이고 돈밖에 모르는 친정아버지의 아집과 자기밖에 모르는 친동생의 이기성.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이 건강할 때는 괜찮았는데 아프면서부터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키도 작고 눈도 큰 얼굴이 하얀 쪼그마한 이쁜이.

공부도 잘했고 직업도 공무원이었으며. 중산층의 여유 있는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란 자신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살게 해 주겠다던 자기밖에 모르는 헌신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 남편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삼류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망가져 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써 내려갔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블로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이웃추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머 어쩌면 그렇게 나쁜 시댁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떻게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어요."

"저 같으면 벌써 이혼했을 거예요."

"왜 그때 이혼을 안 하신 거예요:"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작가님 힘내세요."

"어머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어요" 이런 응원의 댓글들이 매회 연재가 끝날 때마다.

몇십 개씩 달리기 시작했다.


간혹 남편과 헤어진 것도 아니면서,

이런 글을 쓰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반문의 댓글도 있었고, 마음 안에

아직도 화가 느껴지는데. 화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는 우려 썩인 걱정의 댓글도 있었다.

그녀는 이런 부정적인 댓글을 힘들어했다.

"지금 나는 이렇게 라도 다 쏟아 내면서 마음치유를 해야 합니다.

응원을 해주시지않읗꺼면 그냥 읽기만 해 주세요"라는 답글을 달았다.



작가의 변명의 답글이

절규처럼 느껴져서 감히 그런 댓글을 단다는 건 너무나 잔인한 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정 많고 다정하며 완벽한 현모양처로 여겼다.

친정에는 착한 딸이었고 동생에게는 동생의 아이까지 도맡아 키워주는 헌신적인 언니였고 괴팍한 아버지의 성격을 늘 언제나 유연하게 받아내어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는 맏딸이었다.



그녀의 결혼의 불행은 무개념적인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으로 시작되었다.

회사일밖에 모르고 회식 날이 되면 늘 술 취해서 귀가하는 남편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녀가 몸이 아파 며칠을 끙끙 앓던 날 일찍 들어와서 아이를 챙기겠다던 약속을 다짐하던 남편은 또다시 다음날이 돼서야 귀가하고, 그런 시간의 악순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심증을 하고 물증을 잡는다.


남편의 외도가 만천하에 까발려지고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도 알려지자.

주인공은 가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남편의 회사 부서 상사와 동료 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연극을 하면서,

남편을 지지한다는 의사표시를 직원들에게 하는 대목을 읽을 때

나는 이 불쌍한 여인의 운명이 앞으로 더 얼마나 비참해질지 불 보듯 뻔히 보였다.



한 번의 접대로 남편이 이제는 회사에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도록 자신이 한 이런 모든 일들이

남편의 위신을 세워 주었다고 뿌듯해하는 장면에서 읽기를 멈추었다.


15년 전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쓴 글 이었다, 자긴의 행동을 곱씹으면서

과거 자신이 했던 이런 일에 진심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했던 피나는 노력이 모두 허망한 일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정확한 본질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파서 피를 흘리면서도 가정을 위해 이렇게 헌신하고

가정을 지키면서 살아보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장면에서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헌신인지 의구심을 들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로

작가는 뿌듯함을 느낀다는 이 사실에 슬픔이 밀려왔다.

자신이 했던 이런 일이 얼마나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는지를

지금 현재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여기 실제로 존재하고 있어 구나.

착하다는 가면에 도취되어 세상이 모두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진짜 존재하는구나!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에 대한 이상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통에 마음이 미어지게 아프면서도 결코 그녀를 응원해 줄 수 없었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지금 낭떠러지에 있었다. 매달린 절벽을 손에 잡고 있었다.

지금은 마음치유를 했고 편안해졌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했지만

그녀는 결코 편안하지도 않고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걸 글 속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타인은 나의 반영이라고 했던가! 나의 분노 속에는 그녀의 모습 속에 내가 살아온

모습이 스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 우리가 살아온 인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녀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그녀 스스로를 긍정하고 응원해 줄 지원부대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몇천 명의 사람들이 좋아요 표시를 누르고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런 세월을 견디셨어요 라며 위로해주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위로에 생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기쁨의 동력으로 아픔을 잊고 글을 써내려 갔다.

글이라는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온라인을 빠져나왔을 때

두배로 밀려오는 허무를 감당할 힘을 그녀는 가지고 있을까!



그녀는 언제부턴가 위로 중독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녀의 글은 아직 그 위로 중독을 채우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녀에게는 갈길이 너무나 멀어 보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그녀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건 글쓰기이다.

늘어나는 구독자수에 힘입어 그녀는 아픈 와중에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자신의 배설을 맘껏 하고 있다.


그녀의 이 자극적인 불행의 이야기들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그녀의 내면을 괴롭게 지켜봐야만 하는 나.


아! 그녀의 이야기가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이야기된 그녀의 불행이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남편이나

친정 식구. 시댁 식구들이 악인이 아니라

그저 불안정한 우리 모두의 모습일 뿐이었다.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정당성이 없다. 누군가의 탓이 아니다.

지지고 볶는 이 모든 일들은 오케스트라 공연처럼 협주곡으로 늘 시작된다.

이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협주를 멈추면 된다.

하지만 더더 자신의 악기를 소리 높여 연주하고 있으면서 불행의 강도를

높이기만 했던 그녀에게 지금은 "불쌍한 불행"이라는 딱지만이 붙어 있다.


그녀의 글은 불쌍하다. 그녀는 불쌍하기만 하다.

그녀의, 인생을 긍정하고 그녀를 향한 갈채를 보낼 수가 없다.



타인의 불행위에 나의 행복과 안위를 쌓지 말라는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그녀의 모든 불행의 시작은 그녀의 자아도취적 나르시시즘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지금 고약한 약자이다.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자신 앞에 굴복시키고 자신을 버리지 못하게 군림하려 하고 있다.


그녀가 냉정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안의 분노를 완전히 걷어내고

가족들에게 너그러운 엄마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위로 중독은 벗어나 사랑이라는 뿌리에 더 마음을 쏟아야 한다.

그때 그녀의 글은 죽을 만큼 힘들어도 향기를 품고 따듯함을 품고

모두에게 불행을 쓰고 있지만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마음치유의 글은 솔직한 배설과 동시에 자신의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타인을 향한 저주와 한풀이만 되고 마음 안에서 너그러움이 안착되기 힘들다.


자신의 마음 안의 응어리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녀가 이 시간의 문턱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그녀의 고통이 완화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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