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글들은 쓰는 순간 자신 앞에 거울을 하나 놓는 것과 같다.
눈앞에 보이는 선명한 진실은 바로 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눈앞의 나는 거짓일 수도 있다.
우리는 거울 뒷면을 보지 않는다. 볼 수 없기에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 늘 언제나 거울 뒷면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변화되는 내시각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꽉 막힌 고지식함이 조금은 허구와 허상에 새로운 옷을 입히기 시작한다.
처음 소설을 쓸 때는
나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타인들에게 감정을 실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흥분됐었다. 내 글들이 삶 속으로 들어와,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관점들이 변하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나를 지위와 권력으로 굴복시키려고 드는 갑 앞에서
거울 뒷면의 모습과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을 둘려 싼 상황들을 조립하는 것도 즐거웠다.
머리를 조아리고 권력 앞에서 순응하는 내 모습이 비굴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현 실속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바로 눈앞에 서있는 갑!
바로 당신이 지금은 이 순간 속에서 주인공이었다.
"오늘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나는
마음껏 그들의 개가 되어 꼬리를 흔들어주는 시늉을 하기도 했지만
내 역할극이 싫지도 않았다.
그들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그 상황극이 끝나면 나는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웠다.
자유자재로 나는 모든 상황들 속에서 내 모습을 바꿀 수도 있었지만 본질적인 내 모습은
변함없이 나인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타인 앞에서 무릎 꿇고 마음에 없는 미소를 짓고 있어도 나의 자존감은
아무런 스크레치도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
시를 쓰는 것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요.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나를 치유하고 성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소설은 허구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가끔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길을 잃는다.
일이 빠쁜데도 일은 뒷전이고 글을 쓰고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원망을 퍼붓는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소설을 내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야.
난 요즘 내가 지금 뭐하려고 이걸 쓰나 싶어.
사람들의 호응도는 떨어지고.
근데 또 어느새 쓰고
있는 날 보면서
나도 참 이상타 싶다.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세상에 넘쳐나는 게 작가들 인디.......
친구에게 짧은 답장이 온다.
"네가 창조한 세계잖아. 그런 게 매력이지. 넌 신이야."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다시 탄력을 받는다.
이렇게 다시 쓴다.
시를 쓰는 것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요.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나를 치유하고 성찰하기 위함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나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