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쪼그리고 앉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같은 글 좀 그만 쓰고
아침에는 운동을 해 그게 훨씬 건강에 좋아"
그는 내 글을 골똘히 한번 보고 나서
무심한 듯 말하고 현관문을 열고 새벽바람을 맞으며 운동을 나간다.
내 옆지기는 내 글을 읽지 않는다.
뭔가 쓰긴 쓰는데.... 그냥 일기를 쓰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렇게 나에게 무관심해 주는 그의 발소리를
아침 공기에 숨을 들이쉬며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듣는다.
옆지기는 어쩌면 지금의 나에 대해 1도 모른다.
가끔은 그런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가슴을 슬어 내린다.
내 글에 미주알고주알 토를 달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마 그런 상황이 오면 자기 검열에 들어갈 테고 보이는 글만 쓰게 될 것이다.
옆지기는 내가 과거처럼 글 따위 모르고 애같이 조잘대며 자신과 장난치며 놀아주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옆지기랑 그렇게 놀지도 않는다.
그래서 서로에게 관심이 없느냐고?
그래서 서로가 외롭냐고?
나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노"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가 서로 붙어서 오글거리며 살았던 시간은 기쁨과 싸움의 연속이었고.
지금은 존중이라는 단어가 서로의 거리를 튼튼하게 지켜주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각자의 즐거움을 존중한다.
그리고 참견하지 않는다.
그런 평화협정은 서로를 바라보는 다른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지지고 볶고 해 볼 건 다 해본 부부들의 종착역이 바로 지금의 현주소인가!
싶은 생각도 가끔은 해 보지만
서로의 자유를 존중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이제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깊어져 간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공평하게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내가 글이라는 걸 쓰지 않았으면
자유라는 지금의 이 결론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늘 옆지기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젊었을 때 외국생활도 해보았고, 고향을 떠나 자유롭게
살았지만 나는 자유라는 본질을 알지 못했다.
세상으로 나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고 나의 생각이 열리고 넓어지는 건 아니었다.
나의 세계가 넓어지려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해야 하는데,
단지 경험만 쌓인다고 해서 내면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서 속이 좁은 건 아니다.
세계 곳곳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내가 바라보는 시야가 한 곳 만을 바라본다면 내가 경험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경치가 주는 장엄함과 멋진 호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만을 남기고 오는 여행이라면
허기가 진 여행이 될 뿐 세상을 보는 눈이 다양해지지 않는다.
그때 그 시절 내 젊음의 열기가 달아올랐던 그때 내 다양한 경험들 속에는 오직 한 가지 깃발이 나를 향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눈부시게 나를 유혹했던 깃발 안에는 늘 성공이란
단어가 빛나고 있었다.
나의 행복과 즐거움보다 늘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이익과
조직 안에서 내가 인정받는 것만을 생각했었다.
프로로써 내가 살아남는 실력만을 생각했다. 행복해야 할 나를 걷어차면서
언제나 밀어붙이고 억압하며 스스로에게 매정하게 굴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건 이제 딱한 가지 이유이다.
나로서 살지 못했다는 거!
그래서 어쩌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인지 모른다.
그 모든 실수와 후회의 시간들을 다 품에 안고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금.
신은
깨달은 자에게 죽어서가 아닌 바로 지금
천국을 선사해 주신다.
자유를 선물해 주신다.
마음은
글 한 줄에 감동받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설렌다.
자유를 누리는 마음은 언제나 천국이다.
죽어서 천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서 마음의 천국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죽어서 천국을 꿈꿀 수 있을까!
옆지기 이야기를 하다가 또 글이 살날 얼마 넘지 않은 글인 나의 전매특허로 흘렀다.
어쩌겠는가! 내가 쓰고 싶은걸 쓰는 거
지금 이 순간이 천국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