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도 다시 들여다 보기

행복한 기도.

by 토끼

눈을 뜬 아침 방문을 열면 거실 한구석에 어머니는 작은 교자 상위에 물 한 사발을
놓고 기도를 하고 절을 한다.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없이 절을 하고 지성을 드린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어머니의 기도 때문일까 우리 가족들은 탈없이 잘살고 있다.

어느 날 오빠가 말했다.

"우리 형제들 이렇게 탈없이 잘살게 된 건 어쩌면 어머니가 했던 그 간절한 기도 때문이기도 한건 같다고.."

식구들 중 어느 한 명도 신앙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기도는 우리에게 그 어떤 믿음의 힘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 기도가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
지금 누군가 이름 모를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해도
그 이름 모를 사람이 나를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에게 바치는 염원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해도 내가 변화되는 건 없다.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내 손가락에 칼로 베인 작은
상처 하나의 흔적만이 신경 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염원들은 지금 세상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
떠돌아다닌다.


나를 위한 염원. 타인을 위한 염원.
그리고 인류 룰 향한 사랑의 마음들....


신앙이 없던 엄마는 누구에게 그토록 매일

또 무슨 내용의 기도를 하셨을까?

매일 그렇게 기도로써 몸과 마음을 닦으셨던

엄마는 단단한 분이셨다. 그 단단함이 우리 가족들을 든든하게 지키는 힘이었을지 모른다.


기도는 대체 어떤 의미인가!


어머니는 단지 아침시간에만 기도 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기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시간의 그 상징적인 모습만 기억하는 나는

가끔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 곤 했었다.


가족들이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하는 이유는 어머니는 보이는 기도를 했다는 이유에 있다.

매일 정해진 아침시간에 어머니는 물을 뜨고 정갈하게 옷을 입고 기도했다.

어린 시절 그런 모습의 어머니를 대할 때 마음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침범할 수 없는 어머니의 영역이고 무언의 사랑이며 의무이고 책임이었다.

어머니는 그 시간을 빌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자신의 모습을 더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 나는 어쩌면 이토록 너희들의 안위를 위해서 헌신하고 매일매일 마음을 닦는 고결한 존재이다.

너희는 이런 나를 우러러보고 어머니로써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

라는 무언의 경고 이기도 했다.


모든 종교적 행사에는 보이는 기도들이 등장한다.

수도자들 승녀들 사제들 신앙인들은 대중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하는 기도는 더 특별하다.

골방에서 혼자 하는 기도보다 그 어떤 특정한 공간에 가서 하는 기도가 더 은혜를 받는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어머니가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식구들의 눈에 띄게 기도했던 그 이유 또한 어머니는

자신의 기도 모습 자체만으로도 우리 가족을 결속시키고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속내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만약 어머니가 아침마다 기도 내용을 소리를 내어 떠들면서 기도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마도 난 가출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보아야 한다면 말이다.

생각해 보라 어머니가 매일 아침 하는 기도의 독 백중에는 가족들을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전부일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의 이미지는 이렇다.

감사, 헌신, 용서, 화해, 참회, 평화, 화합, 행복, 희망 , 염원

100프로 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전부이다.


하지만 골방에서 하는 기도는 전혀 다르다.

왜 모든 기도는 숭고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하는가! 기도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은

어쩌면 형식과 장소 이미지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종교의 영향이 크다.

기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은밀한 행위이다.


절규, 원망, 고통, 몸부림, 저주, 이런 솔직함이 기도일 수도 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전부 아시고 용서하신다면 이런 솔직한 기도도

기도여야 한다. 기도에 감사만이 있는 건 아니다.

감사는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다.


내가 다녀 본 교회에서는 은혜받는 기도를 가르치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도가 모두 똑같았다.

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간구하고, 염원하며,

죄를 회계하고, 감사하라고 했다.


기도는 무엇일까?

나는

신과 하는 대화가 기도라고 생각한다.

신은 언제나 우리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신다.

그리고 당연히 잘되게 하신다.

내 가족 내형제를 위해 기도한다는 건

신을 너무 모르는 처사가 아닌가!


신께서 다 알아서 하실 일을 내가 무슨 권리로

잘되게 해 달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대는가!

진정 우리가 신에게 고해야 할 것은


나를 변화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이다.

내 마음의 평화를 언제나 강구하여서

그 풍족한 마음으로 주번 사람을 따뜻한 마음을 베풀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가 먼저이다.

나를 잘 알게 해 주셔서 나를 늘 죽이고

부러뜨려서 타인에게 말로써 행동으로써 상처입지 않게 해 주시고

내가 육체적 고통을 당했을 때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해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걱정과 근심 가득 차 서기 도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은 일이 없도록

마음을 비우고 닦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가 먼저이다.


신과 대화할 때 유머도 쓰고

시적인 표현도 해보고

정말 내 안에서 친구처럼 스승처럼 애인처럼

그 어떤 모습으로도 대화할 수 있는 절대자의 모습은

내가 나를 얼마큼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신을 대하는 나의 그릇도 변한다.

감성과 공감력 있는 언어로 신과 하는 대화는

신이 나에게 주신 능력을

이런 아름다운 언어로

바꾸는 축복이 아닌가!


그래서 언제 난 신은 나에게 속삭인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

바로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

인간을 위해 늘 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머니의 기도가 부디 자식들의 안위가 아닌

당신 자신과 신의 아름다운 대화이었기를.....

그리고 그 기도가 행복한 시간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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