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에게 배우는 사랑

애완견

by 토끼

거리에서 목줄도 없이 한가로이 어슬렁 거리는 강아지는 걸음을 멈추게 한다.

작고 귀여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아장아장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뒤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요물도 아닌것이 어쩌면 사람을 혼을 그렇게 째놓을 수 있을까!

나잡아봐라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침을 질질 흘리면서 녀석들을 따라다니게 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입에서 감탄사가 나오고 마음은 뭉게뭉게 솜사탕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 어디선가 큰 소리로 강아지 이름 소리가 들리고 주인이 나타나면 그제야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이 든다.


강아지 주인의 팔에안겨 가는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면서

매일 거리에서 보이는 강아지들과 혼자만의 짝사랑 같은 짠한 이별을 하지만,

성인 되고 나서 지금까지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애완견과의 공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반려견들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팔자좋은 애견들은 내 삶의 질보다

더 좋은 개팔자를 타고난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나도 동물과의 깊은 유대감을 통해 내안의 행복감을 채우고 싶을 때가 있다. 애견샵을 지나칠때면 어김없이 넋놓고 구경하다 겨우 유혹을 떨쳐낸다.

유튜브로 강아지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몇 시간을 행복한 웃음을 흘리지만.

나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결국 강아지에게 잡아 먹히는 신세가 돼 버릴 것을......


그것은

강아지만 보면 무장해제돼 버리는 내 마음이 무서워서이다.

강아지를 보면서 무안한 애정, 귀여움, 순순함,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감정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 일 것이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도, 자식을 여럿 둔 엄마도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은

마치 자식을 품에서 키우는 것과 같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본성 중 하나인 측은지심에의 본능적 감정일 것이다.

그때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에게서 느끼는 보호본능이 발동되면서 옥시토신이 방출된다.

아주 잠깐 강아지를 만지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감정이 된다.


강아지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필요하고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강아지는 인간의 마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나만을 애정하고 따른다.

이 말을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무섭고도 섬뜩한 말이기도 하다.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주인의 손길이 있어야지만 유지되는 생명체로 인간들이 길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지구 상의 한 종족인 생명체를 인간이 길들인 완벽한 하나의 예이다.


강아지에게 만은 완벽한 나의 소유권이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것이다.


내가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강아지는 학대해도 나에게 꼬리를 흔들고

칼을 들고 위협해도 나를 향해 달려와서 가슴에 안기는 날 향한

뜨거운 사랑을 증명해 보이는 지구 상의 유일한 존재가 된다.


극악무도한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들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들에게 조차도 이런 감정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나의 손길에 길들여진 강아지는 내가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아도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내 옆에서 조용히 굶어 죽는 걸 선택한다.

물론 모든 강아지가 이러지는 않을 테지만 ,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강아지들의 특성은 이렇다.


인간이 이렇게 강아지를 길들여놓았다면 과연 인간은 강아지로 인해서

어떤 변화의 강을 거슬러 왔을까?


강아지를 사랑하면 더 많은 사랑을 하고 더 많은 인류애를 가지면서 박애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이 질문에 조금은 냉정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인간이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성의 문제는 별개라고 나는 본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인간은 정서적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집을 지키는 무서운 강아지는 낯선 이방인으로부터 주인을 지켜내고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면 언제나

악당들의 곁에는 험상 굳은 개들이 나오고

악당은 손으로 부드럽게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연쇄 살인마든 잔혹한 범죄자든 개들은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조건없는 충성을 바친다.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키면서 목숨까지 바친다.

이런 변하지 않는 동물의 본성이 주는 안정감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안정감이란 감정에 속아서는 안된다.


내가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 한번 좋아하면 모든 걸 걸어버리는 사람에 가깝다. 물론 좋아하기까지 많이 가리고

또 까탈스럽지만 한번 마음이 무장해제되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편이다.


그러니 강아지를 내 집에 들이면 내 삶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마음의 근육이 넓어지고 생각이 확장되는 게 아니라

강아지 하나에 몰입해서 나의 우주는 한평 남짓한 애정 덩어리에 갇힐게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강아지 내 강아지. 하면서.....

모든 걸 걸어버릴게 뻔하다.

또한 강아지로 인해서 혼자가 되지 못하는 고독한 시간을 다 빼앗겨 버릴 것이다.

인간이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몸부림쳐야 되는 시간.

그 시간을 빼앗기면 인간은 깊이 있는 인간이 될 수 없다.



강아지로 인해서 외로움을 달래고 새로운 사랑을 느끼고 편안함 안정감을 느낄 수가 있겠지만

나에게 강아지는 자유를 뺏고 내 애정의 범위를 한정시키고

내 걱정의 범위를 한정시키고, 단순화시킬게 뻔하다.

한번 마음 주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안 되는 종족이 바로 나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마음 안에 무엇을 들이는 걸 신중하게 생각한다.


인간이 애완동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갈수록 어쩌면 인간의 마음은 더 나약해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안정감이 아니라 안정된 집착이다.


한없는 애정과 사랑으로 빠져드는 존재 앞에서 느끼는 사랑은 휴머니즘과 구별된다.


길 잃은 강아지를 데려와서 한 생명을 살리고 그 사실에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무안한 뿌듯함을 느끼는 행위에서

우리는 조금 냉정해져야 한다. 이 마음은 어떻게 보면 이기심이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느끼는 가장 단순한 본능적 이기심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에 대한 자기 욕구의 충족이다.

마지막까지 내 곁에 있어 줄 것 같은 안정감을

강아지에게 갈구하는 나약함 마음이 깔려 있다.


길냥이들이 굶을까 봐 길거리에 사료를 주는 행위 뒤에도 결국은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보상심리를 깔고 있다.

나의 욕구충족에 깔린 이기심은

나의 사랑스러운 소유물이 병들어 지저분해지면 또 새것으로 쉽게 교체 해 버린다.

안락사를 시키고 몰래 길거리에 버리기도 한다.


지금 거리에 버려지는 녀석들을 또 누군가 따듯한 마음이 거두어 가고 있다.

버려진 강아지를 키울 때는 더 마음이 애틋하다.

마치 운명같이 생명과 생명이 만난 것만 같다.


마음은 거리에 죽어가는 강아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몇날 며칠 생각하게 하지만

지구 상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강아지 만큼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아지는 언제든 내 소유물이 될 수 있다.

너무나 쉽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그 무엇에게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


우리는 야생에서 뛰어노는 늑대개에게 연민이나 애정 따위를 느끼지 않는다.

늑대개는 그냥 자연속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늑대개가 내 소유물이 될 가능성이 있었을 때 만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


인간이 정말 강아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은 그냥 소유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애완견에게 깊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가

소유물에게 길들여지고 중독되고 있는 것이다.


애완견에게 느끼는 무한사랑의 자기 마음을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 번쯤은

질문해 보아야 한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 사랑으로 인해 내가 인간으로서 변화하고 있는게 무엇인지...

내 것이라는 소유에 더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더 깊은 사랑의 의미를 나의 소유물에게만 한정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마당넓은 집에 살게 된 다면

그때

강아지를 두마리 정도를 키우고 싶다.


그들은 밖에서 지내고

나는 안에서 지내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환경에서

함께 동등한

관계를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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