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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Oct 18. 2021

하나님 사용설명서

부활


2021년 10월 17일 밤 11시 10분  아내분이 숨을 거두셨습니다. 의사가 내 눈을 감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내 몸을 빠져나왔다


. 마지막 숨이 할딱꺼려질때 이제 이승을 떠나는구나 하는 느낌이 강렬하게 찾아왔다.

내가 늘 마음속으로 예상했던 마지막 순간과 조금 달랐다.  섹스 후 찾아오는 오르가즘의 바로 그 절정의 순간이죽음일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 봤는데.... 그 순간보다 훨씬 황홀했다.

모든 몸의 감각이 사라졌는데 영혼만이 허공으로 둥둥 뜨고 있고, 그것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싸늘해져 가는 얼굴에  자신의 빰을 대고 내 육체 옆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런 남편의 눈물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기억이 지워진 건 분명 아니었다.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올 때 모든 기억이 생생했다. 하지만

슬픔과 비통함에 잠긴 남편이 이제는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말기암 선고를 받고서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공격적인 치료법으로 모든 돈들을 쏟아부으며  내 몸에 가해졌던 많은 처참했던 의료행위들이

 어리석게 느껴져서 헛웃음이  바람 빠지듯 흘러나왔다.


 약에 찌들어서 쇠약해진  육체는

할머니처럼 쪼그라져  있었다. 아름답던 육체는 흔적도 없었다.

내일 아침이면 인터넷 포털과 신문  방송에서 나의 부고를 떠들어댈 것이다

유명한 인기 웹툰 작가 김이슬 .3년간의 췌장암투병을 끝내고 45년의 생을 마감하다.


그녀의 팬들은 슬픔에 잠겨 그녀의 죽음 앞에서 그녀를 잃은  슬픔에 오열할 것이다.

난 종교도 없었다.   죽고 나면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소멸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생생한 영혼이라니.... 당혹스러웠다.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생생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육체가 없는 영혼은 이제 미래가 사라지고 없었다.

 마흔다섯이라는 기억만을 가진 내 영혼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얼마 동안 내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있는 걸까?

더구나 살아생전의 모든 기억까지 생생하지 않은가!

문득

천국과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늘 전전긍긍하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앞으로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사랑하는 딸 지연이  병실 문을 열었다.

교복도 벗지 않은 모습이 못내 마음이 아렸지만  이제는 나와 상관없었다.

마지막 임종을 보지 못한 안타까움에 그녀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서 있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감정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그들은 나와 무관한

사람인 건가!  내 손으로 키우고 내손으로 어루만진 자식을 마지막으로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육체의 죽음은 감정과 함께 죽는 것이었다.

부모님을 기다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들이 우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보다 더 절실한 게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실을 빠져나오는데 희미하게

 딸의 울음소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딸의 웅크린 뒷모습을  보다가 뒤돌아 섰다.

난 이제 모든 고통이 끝났는데.... 이제 남은 고통은 그들의 몫이 될꺼라는 생각을 하다가

생명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동안 내 집같았던 vip병동 특실을 빠져나와 일반병동 복도를 걷고 있었다.


환자들이 잠든 병실에는  간호가 들 만이 분주히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한 병실 문이 열려있고, 사람들이 몇 명 서 있었다.

이제 막 나처럼 죽음을 맞은 사람이 보였다.


주위에는 의료진만이 있었다.

70이 넘은 노인의

희미한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오면서 선명해졌다.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제일 먼저 나를  발견했다. 그는 영혼의 형태가 선명해지기도 전에

말했다.

"당신은 천사인가요?"

나는 그가 농담을 하는 것 같아 웃었다.

"할아버지 눈에는 내가 사람으로 안 보여요? 나도 이제 막 죽은걸요

말씀 낮추세요 할아버지."

"아! "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족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 아직  한 명도 오지 않았네요. 할아버지 식구들이"

" 난 올 사람이 없어.

이제야 몸에서 자유로워졌군."

간호사가 할아버지의 시신에서 모든 의료장치를 제거하면서 말했다.

"미국에 있는 선생님 가족분들 한테 알려야 하지 않나요?"

의사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때  숨을 헐떡이면서

그의 대리인인듯한 변호사가 연락을 받고 들어 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재산도 사회에 기부하고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가족은

없을 거라고.. 장례만 간소하게 치르라는 유언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나서 나를 바라보며

 손짓 했다.


"우리는 이곳을 떠아야 할 것 같군."

할아버지는  죽음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초연해 보였다.

"처자는 아직 젊어 보이는 데.....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은 했나?


나는  딸과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이내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할아버지 전 이상하게 기억은 생생한데 별다른 감정이 없네요.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나도 모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곳으로 인도하시겠지."


그는 살아생전 독실한 기독교인 것처럼 말했다.

" 하나님을 믿으시나 보군요, 할아버지는 "

그는 기도하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당연하지 이제는 내가 처음부터 온 그곳으로 돌아가는 거야"

" 전 죽음은 소멸이라고 여기고  하나님의 존재를 늘 부정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영혼이 선명하게 살아있군요. 전 이제 어쩌죠?"

" 하느님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시지... 믿지 않는 자라고 해도..."

나는 잠시 생각이라는 걸 했다. 뇌가 없는데도 생각이라는 게 가능하다니...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근데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으니....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남자가 내 눈을 응시했다.  


" 자네는 삶을 잘 살아온 듯싶어.  "

남자는 마치 죽음이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해 보였다.

" 전 지옥불에 떨어질 거예요. 살아생전 쓰레기 같은 소설만 써서 돈만 열심히 벌며 살았거든요.

제 소설은 재미를 위해 인간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쓰레기였어요."

" 할아버지는  성직 자세요? 어떻게 이렇게 죽음에 초연하죠? "

환자복을 입은 그는 셔츠 단추를 하나 풀면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 난  정신과 의사였어. 이병원은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이야"

그는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리면서 미련이 없다는 듯 병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를 따라 걸었지만 걷는 건지 날아가는 건지 모호했다.


아직 감각의 느낌이 남아있는 건지 지나치는 사람들을 피해 걸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병원 옥상에 난간에 걸터앉았다.


야경이 보이는 새벽 두시의 고요한 도시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물기 하나 없는 눈으로 말했다.

"우리 이제 이곳과도 마지막이군."

말없이 별을 보고 있던 나는

밤공기를 호흡해 보았지만 기억 속 후각의 느낌은 예전과는 달랐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자네는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으니... 괜찮은 인생을 산거야!"

"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 게 아니라 돈을 버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돈이 되는 글이 어떤 건지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건드는 글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았거든요.

웹툰 작가들에게는 금기어와 소설의 일정한 법칙이 있어요.

들어보실래요?

남자 주인공은 절대 실패를 해서는 안된다.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쳐도 안된다. 단 위기가 닥쳐도 주인공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내용은 무조건 해피앤딩 이어야 한다.

심각해서 고구마를 주면 안 된다.

주인공들은 무조건 조신해야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이어야 한다.

주인공이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사자 이거나 재벌남이어야 한다."


나는 신들린 듯이 말하다가 말을 멈추었다.  

나를 흥분하게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다 무슨 소용인가!

난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대리 만족하는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면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면서 돈을 벌었다. 100원을 내고 100원의 재미를 채워주었다.

내 소설은 영혼의 마약이었다.  난 마약 같은 소설만 쓰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약을 서비스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래서 난 행복하지 않았다.

마약 같은 소설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계속 써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듯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난   정신과 의사를 때려치웠어야 했었어.

병원문을 박차고 나오는 일을 수도 없이 상상했지만 나도

때려치우지 못했어.

왜냐면 의사는 모두가 부러워하고

존경받는 자리였으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자네나 나나 둘 다 똑같군.

 내가 했던 모든 의료행위는 사기라는 걸 난 다 알고 있었어"

할아버지의 한숨 썩인 이야기는 나의 한숨을 덮었다.


" 난 10년간 우울증 환자였어.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라니 재미있지 않아!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 마흔 살 때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고 나서

시작된 거야. 교회도 다니고 절도 다니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별별

치료를 다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어.

그러다가  오십에 되어서 우울증이 완전히 치료되는 기적을 경험했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였어.

생각해봐 예수님이 살아있는데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데... 그게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체험하고 나니 두려움이 사라지더라고, 이미 한번 자리를 잡은 우울한 감정은

내가 어찌할 수가 없었던 거였는데... 예수님이라는 빛이 그 감정을 사라지게 해 준거야.

그 뒤부터

우울증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더라고.. 모든 게 예수님 생각으로 아침에 눈뜬순간부터

기쁨과 감사의 나날이었지... 난  이런 선명한 진리를 알고 나서 세상을 사는 눈이 달라졌지만

환자들에게 약을 팔아야지만 돈을 벌 수 있었어....

그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도 예수님을 체험하고 나면 정신적인 병을 고칠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아!

정신과 의사가 그런말 하면

날 미친 사람 취급할게 뻔하잖아"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죽음 직전에도 종교를 거부했던 나를 떠올렸다.

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단지 내가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소설이 날 행복하게 해 주지 않았지만 소설을 쓰고 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늘 살아있는 기쁨이었다.

말기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나서도 나는 소설을 썼다.

손가락 힘이 남아있는 그 순간까지 난 소설을 썼다.


" 예수님을 만난 다는 게 어떤 건지 전 모르겠어요 우리 이제 그분을 만나는 건가요?"

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보자 그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난 마음으로 신을 사랑하고 신의 존재를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에 두었을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신이 예수나 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선명하게 알았지만

그건 개개인의 능력이라는 걸 알았어.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시켰지...

이건 개개인이 신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러니 내가 잘못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난 그저 약으로써 그들을 치료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하지만 내 안의 예수님은 더더 선명하게 나에게 기쁨을 주고 있었고.

나의 죄책감은 점점 커져갔어..

그렇지만 난 그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말할 수는 없었어

주님께서는 그런 날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 전 예수님이라는 분 자체를 부정했는데...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거죠? 할아버지....

전 소설을 쓰는 그 자체가 기쁨이었고 저한테는 예수이고 종교였어요."


그는 내 질문에 아무런 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병원 주차장에서 엠블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지상에서의 모든 소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지상에서의 마지막 소리들과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희미한 불빛이 하늘에서 새어 나왔다.

우리들의 몸이 가볍게 들리듯 날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소음은 여기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우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도시의 소음이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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