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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Feb 10. 2022

엽편소설

김집사의 욕설


3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처음 교회에서 찬송가라는 걸 불렀던 그때.

그 어떤 간절함이 필요했던 그때, 하나님만이 나를 치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때,  하나밖에 없던 딸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정신줄을 놓아버렸던 그때

모든 게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나는 벌을 받기로 작정했다. 내가 지켜주지 못했고, 공감하지 못했던 내 무심했던 마음이 저주스러워 함께 죽고 싶었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로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 난 어떻게든 학교만 졸업하자고 딸아이를 달랬었다.

자퇴를 시키지 못했던 후회가 자학을 넘어 나를 괴롭혔다.  신랑과 함께 다녀온 정신과 약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내가 싫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결국 스스로를 살리는 걸 선택한다.

 내가 정말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한 번도 찾은 적 없었던 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이를 죽인 엄마도 행복하게 살아갈 이유가 있는지  찾고 싶었다.

  교회를 가려고  마음먹었었다. 친구가 잡아끌던 교회가 아닌 내가 스스로 찾아 나서서 선택하고 싶었다.

 잔뜩 흐린 휴일 봄날 아침 무작정 집을 나왔다. 동네에 교회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번듯한 건물의 교회, 반지하에 작은 교회, 여러 교회를 지나치면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데, 예배시간이 가까워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같은 건물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교회가 두 곳이 있었다.

한 교회건물 입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렸고,  한건물 교회는

썰렁했다.  썰렁했던 교회 이름은 낮은 교회였는데,  교회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확신이 왔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성큼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정적이 감돌았다.  30명 정도의 사람이 그냥 앉아있었다.

그들의 작은 관심과 숨소리가 느껴졌지만 그들은 나라는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찬송가도 예배도 없었다.  중년의 남자 한분이  연단에 서서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오늘 목사님께서 병원에서 이 예배를 주관하실 것입니다. 목사님의 빠른 쾌유 기원하면서 우리 기도 합시다."


잠시 후 뚱뚱하고 키가 작은 아주머니 한분이 연단에 서서  다시 기도를 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눈을 감고 기도 하는 내내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을  했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 몸안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이상하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역시 잘못 생각한 것 같아. 교회는 나랑 안 맞아. 분명 예배가 끝나면 온갖 부드럽고 달콤한 말로 날 붙잡으려고 하겠지...

그러기 전에 얻른 여길 빠져나가자."


예배가 끝나자.  굳게 닫혀진 출입문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일어서려는데...   뚱뚱한 여자가 아무 말도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작은 메모지 하나를 건냈다.


" 밥 먹고 가세요."


딱 이 말 한마디뿐이었다.  눈이 작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뚱뚱한 여자는 40 정도 돼 보였다.

그녀는  단호하게 날 바라보았다.

거부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가식도 없고, 친절함도 없고 단지 단호함 뿐이었다.

 하지만 그 단호함 속에는 마치 내 아픔을 다 안다는듯한

너그러움이 느껴졌다. 그녀가 민첩한 행동으로 내 팔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


작은 예배당  베란다창쪽에 식당이 있었다.   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햇살이 깊게 드리운 곳에 자리를 마주하고 앉았다.

뚱뚱한 여자는 자기를 전도사라고 소개했다.  전도사는 빠른 동작으로 식탁을  차렸다.

남자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서 기다렸다.

고등어조림이  맛있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그 고등어조림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흔한 인사말도 없이

묵묵히 식사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애써 명랑해 보이려고 말을 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질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들이 눈빛에는 궁금증이 조차도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교회의 이미지 하고는 너무 달랐다.


" 저는 교회가 오늘 처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내가  떠들어 대었던 이야기들은 지금도 기억한다.  



" 아주 아담한 건물이네요.  교회건물이 정감이 있어서 들어왔어요."

그때 전도사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 건물은 목사님 사택이에요.  목사님이 아주 정성스럽게 지은 교회입니다."

 목사의 이름은 이은택이었다.

식탁을 치우는 걸 도와주는 날 향해 전도사가 말했다.

"목사님이 폐암 선고를 받으셔서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전 곧 그분 병문안을 갈 거구요.

전 목사님에게 빚이 많아요. 이혼을 하고 오갈 데 없는 절 거두어 주셨거든요,

지금도 목사님 건물에서 지내고 있어요.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던  절 우울증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거든요."

그때 난 벼락처럼  운명이라는 걸 믿었다.  힘들어서 찾아온 거기에 나보다 더 몸이 아픈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결국 인간은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잔인한 구석이 있었다.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날 이곳으로 오게 만든 걸 믿었다. 하나님은 내가 이곳에 머물기를 원하고

이곳에서 내가 치유되기를 원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목사 병문안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처음 만난 사람을 따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 명문 안을 갔다.

같이 예배를 보던 나이 지긋한  남자가 차를 교회건물 밖에 세웠다. 그는 자신을 김집사라고 소개했다.

 김집사의 차를 타고 병원을 향했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  작고 갸름한 머리가 희끗한 여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조금 흥분해서 말했다.

" 전 목사님이 남자인 줄 알았어요. 여자 목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전도사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이야기에 미소만 지었다.


젊었을 때 제법 미인이었을 것 같은 목사는 새 신자라는 전도사의 소개에 반갑게 나를 맞았다.

함께 운전을 했던 김집사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그는 목사의 남편이었다.  

이 목사는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건넸다.   신상을 적는 신자 카드였다.  처음 보는 낯선 종이 거기에는

별별 항목들이 다 있었다. 이력서도 아니고,  학력.  성별, 출신지까지 적혀 있었다.

병원에서 작성하는 신자 카드라니... 이런 이상한 광경이 어색했지만 운명 같은 일이라 받아들이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암 선고를 받은 환자가 멀쩡한 사람에게  기도를 해주고, 위로를 아끼지 않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녀가 머리에 손을 얹고 축사 기도를 했을 때는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정말 하나님이란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이은택 목사는

자신의 병보다 내 아픔을 들여다보려는 깊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김집사라는 남자는 맘씨 좋은 아저씨 같은 미소만 지으며 말없이 우리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 시간 정도 머물고 나서 우리는 함께 병원을 빠져나왔다.

강남의 큰 대형 종합병원 주차장은 차량이 꽉 들어차서 빈 공간이 없었다.

김집사가 능숙하게 차를 운전하는

우리를 태운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였다.

중년의 여자 안내요원이 말했다.



" 3000원입니다"



김집사는 차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환자 방문입니다.



" 내 그래도 주차요금을 내셔야 합니다. 안내문 안 보셨어요?"



" 어제는 내지 않았는데,  무슨 요금을 내라는 거요?"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말했다.



" 3000원입니다"



" 환자 보호자라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차비냐고?"



여자는 단호했다.



" 3000원 내십시오 여기서 나가시려면 여기 법을 따르셔야지요."



말없이 온화한 미소로 병실에 서있던 남자는 주차요원에게 두 눈을 부릅뜨면서

거칠게 외쳤다.



" 야! 이  시발 미친년아 네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이야

이런 법은 대체 누가 만든 거야? "



잠시 후 내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육두문자들이 한차례 더 오갔다.

그 틈을 타 옆좌석에 앉아 있던 전도사가 얻른 주차비를 냈다.

뒷좌석에서 앉아 있던 나는 방금 전까지 목사로부터 축사를 받고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다가

김집사의 욕설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승용차가 병원을 빠져나오자 차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김집사는 자신의 욕설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맨트도 없이 운전만 했다.

세 사람은 그렇게 침묵을 지켰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교회에 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날 기도라는 걸 처음으로 했다.



"하나님 김집사의 욕설 사건만 없었다면 오늘 하루 나의 첫 교회 탐방은 완벽한 하루였을 것만 같았지만

또 완벽한 건 없잖아요. 뭔가 하나는 어긋하는 게 있어야 또 조화롭겠지요.  주님 이은택 목사가 암이 완치되게 해 주세요."

그때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처음으로 기도했다.

 하나님은 뭔가 날 위해 어떤 시간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수면제 없이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눈 떴을 때

딸아이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그런 평온한 일상을 마음으로 느꼈다.

 이은택 목사의  폐암 수술 결과는 의외였다.  막상 폐를 열고 보니 암이 아니었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녀는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았다. 교회 신도를 늘이려고 얼마나 열성적으로

전도를 하고 다녔는지.. 마치 주식회사가 사업을 늘려나가는 걸 바라듯이 나는

그때 교회에 신도수가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믿음보다 먼저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 교회를 8개월을 다녔다.

그 교회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닌 교회가 되었다.

내가 이성적으로 교회와 이 목사 가족의  실체를 느끼기 시작한 건 5개월이 지난 후부터였다.

이은택 목사는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목사였지만 그냥 평범한 아줌마였다.

돈 욕심이 많아서  그녀는 재테크 비슷한 사업도 하고 있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몇 주 안돼서 교회에서 단체로 어딘가로 놀러를 간다고 내의사를 물어왔다.

무슨 사업설명회 같은 곳에 가기만 하면 주식을 준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고, 그들은 내 의사를  존중했다.

그 교회 사람들 중 반 정도는  다단계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의 공동체처럼 보였다.

 그들의 강요가 없었기에 나는 그다지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목 사는 나에게 늘 잘 대해 줬다.  나는 십일조 잘 내고,  교회일에 열심인 착한 성도였기 때문이었다.

이은택 목사는  전도사를 마치 자기 가정부 대하듯 함부로 대했다.



   아무리 가족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듯한 태도가 눈에 띄었지만

 순종과 섬김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든 걸 다 참고 견디는 전도사를 보면서

그들만의 관계란 내가 알 수 없는 룰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나님이 나를 그 교회로 맨 처음 이끈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모두 인격적으로 존경받을 수가 없다.  또한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깊은 곳에 들어가면 자신만의 위선 속에서 살아간다.

힘든 시간 어떤 방법으로든 나에게 위안이 되는 그 어떤 사건 속에 하나님은 나를 던져놓고.  내 마음이 변화되기를 기다리셨다.

불안정한 인간들이 모여서 서로 불협화음을 이루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기를 바라신다.

누군가를 벌하고 정죄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나만이라도 변화되기를 바라신다.

언젠가 우연히 먼발치에서 전도사를 우연히 보았다.   그녀는 변함없는 믿음과 섬김으로

여전히  그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는 사람은

믿음도 없고, 의리도 없고,  사랑도 없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신앙인들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람이 교회다.  믿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보지 않는다. 바로 사람들을 본다.

대형교회의 부자세습을 날로 그 수법이 지능화되고 있다.  페이퍼 컴퍼니는 들어봐도

페이퍼 교회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교회를 세습화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들을

다 동원한다.  이제 돈이 없으면 교인들은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하나님은 역시 이 모든 상황을 다 아실 것이다.



천국은 작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누구나 처음에는 이런 순수한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으로 시작한다.

내가 키운 한 그루 믿음의 나무가 무엇을 향해 가지를 뻗고

어떤 양분을 먹고,  누가 와서 나에게 쉼을 하고 있을까!

초원에 외롭게 홀로 자라고 있는 나무에 바람과 하늘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천국을 꿈꾼다.



"  목사님 전요.  믿음이 두터워지면 각자의 개성이 사라지고, 사람에게서 풍겨지는 향기가 사라지는 게 두려워요."


그녀는 이런 나의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리고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나의 질문을 무시했었다.


옥상에 일구어놓은 텃밭일을 오후 내내 시켜놓고서 내가 힘들다면서 배가 고프다고 하자

어린애같이 투정 부린다면서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참으라고만 했다.


어느 날은 몇 날 며칠을 불면증에 시달리다.   힘들다고 그녀를  찾아갔을 때,  자신의 아들 자랑과 집안 자랑만 두 시간 했었다. 바보같이 난

그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들으면서도 이 이야기 속에 뭔가 은혜로운 은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고,

단지 자랑질에 불가한 그 이야기를 나만의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서

새롭게 각색해서 받아들였다.  그녀가 자기 아들 자랑을 했던 그 이유는 나도 곧 편안해져서 이런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맞장구쳐서 공감해 주고, 함께 즐거워해 줄 수 있는 상황이 곧 오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언제나 자신이 믿고 싶은걸 믿고 해석하고자 하는 데로 흐른다.

처음으로 선택한 목사는  자애롭고 존경하고픈 인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었다.

내가 결정적으로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 이유는 목사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날의 설교 때문이었다.



그날 그 마지막 설교는 늘 기억에 남는 예배로 기억된다.

그녀는 설교 도중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잠시 후 그녀는 황홀한 미소를 지으면서 외쳤다.


"  우리 여기에 모인 분들은 모두 구원받은 택함을 얻은 자입니다.  우리는 이 몸으로 선택받아,  하늘로 올라갑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지옥불로 떨어집니다.  믿음의 사도인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선택받았습니다."


그때 나도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말했다.


" 목사님 어제 까지도 웃고 떠들던 내 이웃들이 모두 불신자라는 이유로 지옥불에 떨어지고 있는데.

나 혼자 구원받았다고 뭘 그렇게 좋아하십니까?  그들 때문에 마음 아프지 않으세요?"


나의 돌발 질문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녀는 당황한 듯 잠시 내 질문에 생각하더니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어떤 용서도 없는 무서운 분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세요."


그녀의 충격적인 답을 듣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주여 회개합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그녀의 남편 김집사가

고개 숙여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때  그가 오래전  뱉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맴돌고 있었다.



" 야! 이  시발 미친년아 네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이야

이런 법은 대체 누가 만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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