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것 같은 하루라고 생각하는 그런 날이 있다.
잠은 못 자고 컨디션이 엉망이던 날이 그렇다.
다크서클이 내려와,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어디를 가도
피곤함에 즐거움이 없어, 얼굴에 먹구름이 끼였다.
견대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머릿속에 끼어들 여지가 없는 그런 날.
하루의 일과를 무얼 해도 억지로 힘들게 해 내었던 기억 때문에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 것처럼 느껴졌던 또 다른 하루도 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시간이 어떻게 가 버렸는지
모르는 하루가 그렇다.
완전히 다른 이 두 하루를 왜 나는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 것 같은
동일한 느낌을 가지는 것일까?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나라는 존재가 붕떠서 망각되어 가버린 하루!
너무 힘들어서, 나라는 존재가 무겁고 바닥으로 기어들어가 망각되어 겨우 움직이기만 하루!
행복했던 날 속의 시간은 너무 빨리 가버려서 그 안에 사유의 시간조차 없어서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고.
괴로웠던 날 속의 시간은 너무 더디게 갔지만 그 안에 즐거움이 없어서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두 시간 속 하루는 계속 붙잡고 싶은 감질맛 나는 시간이고, 또 다른 하루는 괴로워서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는
정반대의 시간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의 느낌은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시간 속에 선명하게 머문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간은 바로 이런 시간이다.
하루를 견디면서 보낸다는 건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게 아니라
하루를 토닥거리면서 소중하게 끌어안은 그런 하루이다.
힘든 몸을 하고서 일상을 전날과 똑같이 해낸 날이다.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런 시간 속의 나이다.
전쟁 같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기쁨은 바로 이럴 때 가져보는 것이다.
견딘다는 것은 승리의 깃발을 자신의 자랑스런 하루에게 꽂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 꽂혀진 깃발들을 보라.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건 전쟁의 종식이 아니다. 평온의 시작이 아니다.
또 다른 전쟁을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변화되고 새로워질 수 있는 전쟁.
무엇을 적으로 돌리고 싸울지를 정하는 것도 나의 몫이고, 어떤 방식으로 싸울지를 정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칼로 싸울지, 꽃송이로 싸울지 정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축제처럼 싸울지, 피를 튀기며 싸울지 정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야수처럼 싸울지, 천사처럼 싸울지 정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통째로 날아간 어느 하루라는 시간 속에 다시 하나의 깃발이 나부낀다.
그날 나는 무엇을 향해 어떻게 싸웠는가!
숲이 무성한 정글에는 끝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나는
나뭇잎으로 짠 옷들을 입고 있고서 오래된 나의 루틴들과 나무 타기를 하고 있었다.
비 때문에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결국 나무 타기를 포기했지만.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나의 적이 승리를 만끽하며 자신만만하게 오른 나무가 번개를 맞아서
두 동강 났기 때문이었다.
ㅎㅎ
하늘이 나를 도우고 있었다.
견디는 사람은 이긴다. 통째로 날아간 시간 속에서 견디는 힘은
싸우는 힘보다 강하다. 나를 견디는 시간 속에서
또 하나의 승리의 깃발이 나부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