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용건이 있어서 자리로 온 사장이 얘기를 끝내고
돌아서면서 산만하게 종이들이 어질러진 내 자리를 쭉 둘러보면서
한마디 했다.
"옆에 있는 책상을 하나 더 써야겠어!"
사장이 가고 나서 나의 뇌는 순식간에 4가지 생각을 한다.
1 옆에 책상을 같이 쓰라고? 앗싸~~~
2 책상이 지저분하니 정돈 좀 하라는 거군!
3 너는 왜 그렇게 지저분하게 책상을 쓰니 칠칠치 못하게
4 이왕이면 책상 좀 정리하고 살자.
물론 나는 그 말에 한마디로
일축한다. 웬 참견! 난 예술가야,
이렇게 어질러져 있는 게 내겐 정서적으로
더 일이 잘되거든....
보통은 이렇게 넘어가지만 어떨 때는 소심해져서
3번을 택하거나 2번을 택해서 마음이 조금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1번은 순수한 정보일 테고,
2번은 자신의 심경고백일 테고,
3번은 우리의 예민한 한 부분일 테고,
4번은 내가 실행해야 할 일일 테지만,
난 늘 그 모든 걸 떠나 그저 그 말을
사장의 유머로 받아들이기에,
아마도 옆 책상을 진짜로 가져다 쓰는 행동을 하거나
웬 참견쯤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깐깐한 사장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사장의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이 상해서
일할 맛이 뚝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나에게 대화를 걸고 있는 사람이 나와 어떤 위치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스스로 그 말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진다.
사회에서는 위계질서에 따라 순종하고 복종하는 포지션으로
참아야 하지만 비슷한 위치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어떤 감정의 상태에서 내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신경을 쓰며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 한솥밥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다.
" 사촌 형 딸내미 주희 결혼식이 언제라고 그랬지?"
신발장에서 등산화들을 정리하던 남편이 안방을 향해 소리쳤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던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자기야! 냉장고 밑에 결혼 날짜하고 장소 포스트잇으로 붙여 놨어."
그는 냉장고 위에 붙은 여러 개의 포스트잇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지 냉장고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어디에 붙여 놨다는 거야?"
그가 안방 앞에 서서 툴툴거리면서 서 있었다.
답답해진 내가 달려가 냉장고 귀퉁이에 붙은 포스트잇을 확인해 주었다.
그는 내가 전해준 포스티 잇 딱지를 쳐다보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 빨간색이라고 말해 줘야지... 밑이라고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은 늘 이게 문제야. 앞뒤상황을 생략하고
하고 싶은말만 하는거!"
그는 나의 두리뭉실한 설명을 늘 지적한다. 하지만 냉장고 밑에 포스트잇은 몇 개 되지도 않고,
제일 밑에 붙은 포스트잇은 빨간색 하나뿐이다.
우리가 서로 메모하는 습관을 냉장고에 붙이게 된 건 오랜만의 일이긴 해도,
남편의 투덜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다 한마디를 덧부치려다 말았다.
" 당신은 뭐가 문제인 줄 알아?
보통은 찾지 못했던걸 찾았을 때는
빨간색이라고 말해줘야지 당신은 늘 이게 문제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 이게 여기 있었구나. 찾았다.
고마워 라고 하는 거야
대화란 이런 거야!"
마음속으로만 맴도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익숙해진 남편의 남 탓하기의 습관이 이제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한 장르의 영역이 돼 버렸다.
남편의 습관적 탓하기는 이제 그의 변하지 않는 고착화된 화석 같은 언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런 습관적 탓하기를 제대로 보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지는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의외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맥락을 읽어내는데 무심할 때가 있다.
늘 습관적으로 길들여지기 때문에 깊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히 신경이 둔한 나는 신랑의 탓하기 습관에 내가 늘 잘못된 줄 알고 나를 고쳐나가려고만 애 섰다.
내가 설명이 좀 부족한 사람이구나!
설명을 좀 더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해야겠군 이라고 마음먹지만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고 노려한다고 해도 나의 습관 또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신랑은 나의 이런 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나의 두리뭉실함은 늘 언제나 신랑의 예민함에 발목이 잡혀서
지적질을 받아야 했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습관. 늘 부부싸움을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던 우리의 대화 법속에서,
신랑은 지치지도 않고 나의 대충대충인 대화법을 지적하면서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의 대화법은 꽤나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많았다.
단지 집에서는 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단지 편하게 지내다 보니 말이 짧아지는 것뿐이었다.
가족인데 뭐 이렇게 까지...라는 생각이 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의 방식을 설득시키기 시작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설명했다.
그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지만 그런 결론은
우리의 대화에 하등 도움이 안 됐기에
그렇게
우리가 오랜 시간 부부싸움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결론을 맺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그 사람을 읽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 사람을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사람과 원만한
생활을 하며 지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오랜 시간 서로 함께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알 수도 없다.
단지 습관만이 서로를 지배하면서 서로를 길들일 뿐이다.
가족은 이해보다는 화목이 중요하고 안정이 더 필요하기에
친구에게 아주 세세한 나의 내면을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배우자에게 자신을 다 내어 보이면서 까지 깊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걸 이야기하면 분명 깊숙한 데까지 나의 삶을 간섭하려고
든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꾸려고 싸우는 시기를 지나 이제는 적당히 무관심해주는 선에서 서로를 존중한다.
사랑이 시작되면서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다가도 이제는
더 깊이 들어가면 상처받는 그런 관계가 부부라는 세계이다.
서로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걸 알아가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유지되는 안정을 택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관심해진다.
"알면 다쳐"
이 말이 딱 어울린다.
요즘 졸혼이 유행이다.
어쩌면 더 이상 무관심해진 관계의 종식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