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들려주는 이야기
출근길 따뜻한 버스에서 내리자, 차가운 아침 겨울바람은 코트 깃을 여미었는데도
칼바람처럼 얼굴을 할퀴고 갔다.
신호등 앞에서 추위에 발을 동동거리며 사무실을 향해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구로디지털 단지 네거리 신호등은 대각선으로 건널 수 있었다. 초록색 불이 바뀌자,
버스정류장과 겹치면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잠깐 사이 사람들에 밀려
도로 위를 분주히 걷고 있었다.
그때 잠깐 멈칫하고 찰나의 순간처럼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주변의 풍경들이 그림처럼 멈춰 서고 나는 혼자 모든 광경을 관찰하는 새로운 눈으로
정지된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 빌딩 속 거대한 도시를 보았다. 제각각 호화로운 빌딩들이 콘크리트 시멘트로 보이고
성냥갑처럼 느껴졌다.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주위를 덮고 있었고, 납작한 모양을 한
차들이 딱정벌레처럼 달리고, 사람들은 마치 개미처럼 하얀 입김들을 뿜어내며 허겁지겁 걷고 있었다.
두꺼운 옷들을 둘둘 말아서 입고, 장화 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도 보였다.
그들은 어딘가를 향해 동동거리며 걸었다.
나는 누구지?
이곳은 어디지?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걷고 있는 거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네모난 건물들은 또 뭐지?
난 무엇을 하려고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세상이 아득히 멀어져 갔다.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고, 중요한 미팅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냥 다 재껴 버리고 어디론가 가 버릴까?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고작 이런 것들을 하려고 세상에 나온 건가!
이 거대한 지구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어느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며 나는 지금 이렇게 허겁지겁 걷고 있다.
내게 주어진 하루의 일을 하기 위해서.....
정말 이게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이란 말인가!
단지 나는 하루의 일상을 살아내는 게 전부란 말인가!
신호등을 벗어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마치 긴 시간여행자라도 된
것처럼 이 시간 밖에서 서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이 들었다.
정지된듯한 시간 속에 있던 그 도로 위로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자동차들이 질주하며 쌩쌩 달리고 있고,
나는 어느새 반대편에 서서 사무실을 향해 걷고 있었다.
잠깐 꿈을 꾼 것 같았다. 아주 잠깐의 꿈.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흥분된 마음을 달래려고
옥상을 향했다. 16층 옥상에서 내려다본 디지털밸리의 모습은 또 한 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산꼭대기까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도심에는 빌딩들이 발 디딜 틈도 없는 행렬이
이어졌다. 늘 무심하고 당연하게 보았던 풍경들에 계속 나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땅의 주인들은 누구지?
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줄을 긋고 이렇게 빽빽하게 건물들을 짓고
자신이 이 땅의 소유주라고 못을 박는 거지?
나는 고작 이 땅에 단지 몇 평 되는 땅을 소유하려고
가족들을 만들고 그들과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단 말인가!
또다시 같은 질문이 머리를 가격했다.
정말 이게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이란 말인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정말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인 건가?
이미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인간이 만든 조직들은 이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견고한 틀이 되었다. 이것을 문명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그런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문명화된 첨단과학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존재 이유는 모른다. 단지 태어났기에 살고 있지만
이게 진짜 삶이라고 나라고 이야기될 수는 없다.
내가 나라고 실존할 수 있는 순간은 이런 세상에서 내가 완전히 독립된
어떤 한 존재로 있을 때이다.
신호등을 건널 때 아주 잠깐 모든 광경들이 풍경처럼 정지돼 버렸던 그때 나는 완전히
존재한다는 느낌 속에 있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나의 이름이 불리어졌을 때 나는 그저 이 사회 속 나라는 이름 속에
다시 갇혀 버린다. 모두가 인정하는 나만의 전문적인 사회적 명성이 있고,
내 힘으로 이루어놓은 사회적 위치가 있고, 내가 쌓아놓은 명성이 있는 삶이라고
할지라도,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순간 조차고 나는 단지 이사회 속 갇혀버린
존재일 뿐이다.
차라리 혼자 고요히 명상 속에서 만나는 내가 더 나라는 존재에 가깝다.
신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고, 벌레 같은 존재라고 무릎 꿇고, 엎드릴 때
더 나라는 존재에 가깝다.
신의 사랑을 느낄 때나,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평온한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마음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가볍게 하고, 텅 비게 만들어,
자유로움을 주고,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온전한 그런 상태가 된다고 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가끔씩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 몰입하거나,
그 어떤 일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 어떤 일에 감동을 했을 때, 깊은 사람을 느꼈을 때나,
명상을 통해서 평정심을 유지할 때도 비슷한
감정들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순간들은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 힘들게
마음을 단련하고 집중해야지만 얻어 낼 수가 있는
감정적 느낌이지만 아주 손쉽게 느낄 수가 있는 방법도 있다.
아마도 마약을 하고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의 세계지만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들은 마약을 하고 느끼는 감정은 황홀함을 동반하였다.
마약을 하든 수행을 통해서든 두 가지 공통점은 한번 느낀 이런 순간이 오래 머물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감정이고, 이감 정에 한번 빠지면 또다시 그런 감정들을
갈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약을 통한 활 홀 감은 한 번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만
수행을 통한 황홀한 감정은 늘 은은하게 남아서 다시금 몰입하게 하는 흔적을 남기고 간다.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은 이런 나라는 존재를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신의 뜻을 안다는 건
어떤 거대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다.
내가 신이라면
인간들이 첨단과학을 연구해서 달에 가고, 화성에 가고,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타고
타임머신을 만들어 시간여행을 하고, 암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몇백층이 넘는 건물을 짓고,
이런 일들을 하는 것들이 대견하다고 여길까?
과연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라고 인간을 만든 것일까!
지구라는 아름다운 자연을 밀어버리고,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들의 마지막 종착역은
권력을 탐하고, 자기의 소유물들을
늘리는 일들뿐이다.
신의 진짜 마음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느끼려면 이 세상에서 멀어져 자연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명을 거슬러 다시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간을 역주행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역주행할 수 없다.
인간이 신의 마음을 느끼려면 자신을 내어놓아야 한다.
자신을 내어 놓는다는 건 그 어떤 시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스스로 못 박았듯이...
부처가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갔듯이...
눈앞에 닥친 시련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을 알아가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일들이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음이란 걸 얻고 사람들과 자신의 일부를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 앞에 한없이 절망하더라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아간다.
신은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고통이라는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인간들은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다가
죽음을 맞이 하지만 시련 앞에서 몸부림 친자들은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고 나서
삶이라는 해석이 달라지고,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그 마음으로 이웃들을 보듬고, 자신이라는 지상에서의
숙명을 다하려고 아름답게 살다 간 자들인 것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오늘 잠시 찾아온 멈춤이라는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나라는 존재가 분리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