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싸워를 하면서 비누칠을 하는데 다리에 큰 상처가 가로로
길게 나 있고 피멍과 함께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언제 다친 거지?"
상처로 보아 최근 이삼일 사이인 것 같은데...
이 정도 상처면 눈물 쏙 빼는 순간적 아픔으로
한 번은 소리를 질렀을 것이 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기억 속에는 스치는 기억조차 없다.
어딘가에 쿵 부딪히면서 예리하게 베인 흔적도 있는데
이때 난 아픔도 못 느낄 만큼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한번 집중하면 시간 감정 감각이 모두 정지돼 버리는 불감증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다.
그 잠깐의 집중력이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일 년 전쯤 일이다.
운동부족이라 가급적 생활 속에서 운동거리를 찾는다. 엘리베 리터를 타지 않고 계단 오르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13층 사무실 오르기가 숨이 차기 시작했다. 쉬었다가 잠시 숨 고르기를 몇 번을 하고 나서야 비상구문을 힘껏 열수 있었다.
그날은 아마도 5층쯤에서 소설의 기발한 소재가 반짝하고 떠올라 줄거리를 정리하느라 몰입하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기승전결 어디쯤 갈등구조를 머릿속으로 엮어가며 신이 나서 다리는 움직이지만 머리는
딴 나라에 있었다. 문득 다리가 좀 뻐근해서 멈추었다.
어딘가 익숙한 곳에 서있었는데.
정신이 든 곳은 16층 옥상층이었다.
심장은 고요했고 숨결도 가벼웠다.
믿을 수없었다. 10층에서부터 불굴의 의지로 올라야 겨우 오르는 저질체력이
가뿐하게 3층을 더 오르고도
심장은 얌전했다. 인간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어떤 거대한 몰입의 순간이라 했는데. 난 상상 속에 몰입하면서
계단 3개를 심장도 속이고 내 무의식도
속이고 가뿐하게 넘었다.
이 사건은
사소한 것이라 여기면 사소하지만 어떤 엄청난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나는 마음이 해 내는
기적들을 믿는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해내는 일들도 믿는다.
그 사랑으로 해내는 일들도 믿는다.
스스로
기꺼이 해 내려는 그 마음을 사랑하고 응원한다.
기꺼이 하려는 그 마음 안에는 몰입이 있고
사랑이 있고 비움이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그 엄청난 마음의 에너지도 있다.
나는 그 마음 어느 언저리쯤에 지금 서 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알기에 오늘 하루가 가슴 저리게
감사하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