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마음을 위하여

축복

by 토끼

지인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늘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심리치유를 받으려면 1시간당 팔 만원에서 1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단다.

좀 더 유명한 심리치유 사라면 액수가 더 높아지기도 한단다.

심리치료가 끝나면 늘 비용은 온라인으로 보낸다고 했다.

돈이 현장에서 오간다는 게 왠지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서 돈을 지워버리고 싶은 심리라고 했다.

그녀가 가끔씩 나에게 심리치료를 권유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 난 사람 마음을 돈으로 지불하고 얘기한다는 게 맘에 안 들어, 차라리 마음 편한 친구를 만나 얘기하는 게

훨씬 치유가 되던데... 난 그래"


그녀는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니다 라며 자신은 늘 도움을 받는다고, 요즘도 만나면 잊지 않고 심리치료를 권한다.

하지만 늘 글을 쓰며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심리치료사가 어떤 말을 할지 기초지식이 너무 많아

차라리 아무것도 모를 때 받아야지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라며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심리치유의 치유효과는 그들의 전문적인 이론적 심리적 치유의 기술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본질은 나를 긍정할 수 있게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돈을 내고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짖을 하든

나를 백 프로 긍정해주는 조언자를 만난다는 스스로의 믿음이다.

완전한 내편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불안하다.

마음이 아프다.

라는건 먼저 몸이 보내는 신호로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하지만 어떨 때 우리는 마음이 불안해지는 걸까?


내 트라우마의 이유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 깊은 뿌리는 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의 본질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결론 내렸다.

결국 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큰 사람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믿어왔었는데... 요즘 들어 그 생각이 변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속살을 한 꺼풀 더 들어내고

한 번 더 깊이 들어가 보게 되었다.

죽음 너머에 있는 더 깊은 근원적인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었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두려움. 그것은 죽음의 소멸보다 더 큰 두려움이었다.

내가 질병에 의한 두려움 때문에 내 안에 내가 내가 아닌 게 돼 버릴 때

내 몸은 반응을 한다.

그것은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라는 스스로를 긍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언제 어느 때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다면

인간의 마음은 병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뻔뻔하고 후안무치인 사람들이

오래 사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수명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길다. 그들은 늘 그 어떤 합리화로써 스스로를 긍정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은 정반대이다. 그들은 늘 자신이 잘못한 것이 많다는 피해의식에

절어서 스스로를 긍정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죄를 짓고도 뻔뻔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도 뻔뻔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오래 산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인간의 정신건강을 좌지우지하는 이 자기 긍정의 힘을 유전적으로 타고나서 오래 살다 간 독재자들을 종종 본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다가 일찍 죽는 게 더 인류에는 유익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불안하면 우리는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관계의 갈등에서 시작된 불안이라면 당사자와 풀어야 하고,

질병에서 시작된 불안이라면 몸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휴식하고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먼저 눈앞에서 활활 타고 있는 원인은 잠시 옆으로 밀쳐두고,

아주 멀리 있는 본질을 한번 보기를 바란다.

내가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하는 바로 그 이유.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면, 미움, 분노, 억울함, 자기 비하, 이런 것들은 내려놓아야 한다.

질병에서 비롯되었다면, 행복, 즐거움, 불평등, 죽음, 불편함, 고통, 이런 것들 안에서 집착하고 그 집착으로 훼손되고 있는 자아를 자기 사랑으로 붙들어야 한다.

우리가 신을 믿는 이유는 바로 그 역할을 해주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고 긍정할 수 있는 내가 정신줄을 놓더라도,

괜찮다 괜찮다고 해주는 그런 대상.

그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자기 긍정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아름다운 사실이 있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해서 좌절할 이유가 없는 한 가지....


그것은 신은 이런 사람을 더 사랑하고 아낀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연약함은 인간이 가진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다.


인간이 상처받는 출발점은

이타성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양심적이고 싶었고,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해서 생긴 일들에서

마음이 적응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게 된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아 스스로 무너졌다고, 스스로를 자학하면 안 된다.

건강염려증 따위에 스스로 무너졌다고 , 나는 왜 이것밖에 안돼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 왜 상처받았는지. 왜 건강염려증이 되었는지...

건강염려증 안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누군가를 보살펴주지 못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있다. 자신만의 몸뚱이가 아닌 타인에 대한 이타성이 더 크다.

누군가를 더 많이 아끼고,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고,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없기에 생긴 트라우마 들이다. 그 안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없다. 모두가 이타적인 것들에서 비롯된 아름다운 것들 때문이다.

인간을 상처 입고 입히는 것은 어쩌면 이타성 때문이다.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 중에는

악이 아니라 선이라는 의무와 책임이 더 많이 있다.

질병으로든 사고로든 세상을 일찍 떠나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연약함!

그 본질은 언제나 아름다움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신은 이런 마음을 알기 때문에 더 귀하고 아끼신다는 뜻이다.



아름다움 마음은 건강한 마음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이다.

부서지는 마음이다.

고통받는 마음이다.

상처받는 마음이다.

이런 생채기가 생긴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긍정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관심 가져주고, 더 많이 걱정해준 마음이다.

어째서 이런 마음을 스스로 외면하는가!

이런 마음은 축복받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훈장을 주어야 한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잣대로.....

최고의 긍정의 찬사를 보내야 한다.

이제는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칭찬과 찬사 우월감을 느끼자.

넌 참 아름답구나, 그래 이런 게 인간의 마음이지...

바로 하느님이 사랑하는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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