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사랑했던 한 남자에게서 배신당한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서도 1년을 아팠었다. 그녀가 그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건
그와 정말 헤어지고 나서 3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부터 였다. 아직도 그녀는 그와 함께 갔었던 카페 거리 식당만 지나쳐도 그때 그 시간 속 감정들이
함께 뒤섞여서 마음이 아려온다고 한다. 배신 후 느낀 비참한 감정은 이별 후 그녀의 모든 감정들을 정복하고 말았다.
서로 웃으면서 사랑을 속삭이고 남자와 함께 했던 장소 안에서의 행복과 기쁨으로 가슴 설레던 감정은 사라지고, 단지 가슴 한 편을 쥐어짜는 고통의 감정만
그녀가 기억하는 사랑의 전부였다. 분명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았던 연애의 끝은 불행한 감정만을 남겨버리고 그녀에게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녀의 감정은 아무런 상상의 원동력을 잃고, 단지 불안했던 감정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녀와 그렇게 오랜 시간 그녀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녀가 불행하게 느껴졌던 감정들이 옅어지고 행복하게 느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오르려면 앞으로도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마치 오염된 물을 정화하듯 마음이 받은 상처도 정화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지나면서 인간은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마음의 정화를 시작하고 있는 단계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
" 널 웃게 하는 건 사랑이구나. 넌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너다워 보인다."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 언니 난 변했다. 이제 사람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어. 잘 보이고 싶은 맘도 없고, 이번 사랑은
그냥 난 가만히 있는데, 다가 온 거뿐이야. 아무것도 애쓰지 않았는데...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더라
난 정말 이제 그 사람에게 아무런 기대조차 없어, 만나면 만나는 거고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고, 그냥
사랑이라는 게 이렇게 편하게도 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그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사랑을 해야지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난 가끔 농담처럼 그녀에게 던진다.
"난 네가 부러워.
넌 그래도 너에 전부를 다 바치고 버릴 만큼 사랑이라도 해 봤지. 난 아무것에도 미쳐 본 적이 없어.
그리고 난 나이 먹고, 큰 사고 후 트라우마에 갇혀
나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서 무너지고 말았어!
난 네가 부러워 난 그냥 나 혼자 그렇게 스스로와 싸우면서 온갖 시간을 다 허미하고 말았어
물론 모든 시련의 그 본질이 사랑이라는 걸 최근에 와서야 알았지만"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
" 사랑이라는 게 별건가 이별의 상처가 밑바닥을 경험하고 나서 결국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게 중요하지... 난 이별을 통해서 그렇고 언니는 사고를 통한 시련을 통해서 그렇고,..."
그랬다. 그녀와 나는 정화라는 시간을 통해 변했다.
그녀는 지금의 자신이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는 이런 시련은 없을 것이라 장담했다.
정말 그럴까?
단지 과거의 자신을 잊고 싶었던건 아닐까?
나도 그런 말을 많이 했었다. 난 달라졌어, 예전의 내가 아니야!
하지만 예전의 나라는 사실에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단지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과거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치유되지 않은 채로 살 것이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런 보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모호함과 불안을 즐기기도 한다.
이전과 다르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향으로 보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면 고개를 갸웃할만한 나만의 시각으로 사물을 본다.
나는 이것을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달라졌다는 건 나만의 관점과 나만의 시각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감정의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서 스스로를 정의해 볼 필요가 있다.
단지 느낌 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만의 창의적인 시각이란 먼저 감정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먼저 불안이라는 감정이다. 노트를 꺼내서 아주 구체적으로 써 본다.
불안이라는 단어를 쓰고 떠오르는 감정들을 새롭게 써 본다.
과거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변화된 뇌 속에서 새롭게 변화된 단어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
불안이 두려움이나, 불편함 , 트라우마, 심장의 박동, 이런 것들이 아닌
다른 정의가 있어야 한다. 나는 먼저
불안의 본질을 보기 위해 수많을 시간을 보냈다.
나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고, 근육을 경직시키고, 팔다리의 힘을 빼고,
입맛을 잃게 만드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진장 노력했다.
그리고 그 불안이
이타성에서 비롯된 지극히 희생적인 단어라는 걸 알아냈다.
잘하고 싶었고, 지켜주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 남을 위해 살고 싶었다. 내 불안의 본질은 그것이었다.
그렇게 될 수 없는 반대적 상황이 불안이란 단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먼저이고, 과거처럼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나는 평생을 누군가가 심어놓은 감정 속에서
더이상 살지 않기로 했다.
심지어는 행복, 기쁨, 즐거움 , 이런 감정들도 의심해 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감정의 기초가 되었던
어린 시절 느꼈던 모든 감정들도 알고 보면 모두 이사회 속에서
학습된 감정에 불가한 것이었다. 공동체 속에서 모두가 함께 느끼고 동참해야 하는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이외의 소외되는 것들은
건강한 감정이 아닌 일종의 두려움 ,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무의식이 나쁜감정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이렇게 피해야 할 감정 스트레스라는 감정,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고, 편협하게 다루어 왔다.
걱정과 염려가 모든 카테고리 안에 한꺼번에 넣어놓고, 저항하고, 억압하고, 통제해 왔다.
하지만 그 본질의 의미를 안다면 불안과 평온은 모두 한뿌리에서 자라난다는 걸 알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부터 불안이라는 단어의 색깔을 하나씩 바꾸는 게 중요하다.
불안이라는 단어 뒤의 정의를 바꾼다.
아름다움.
좀 더 근사하고 임팩트 있는 단어를 가져와 보았다.
거룩함.
행복함과 평온함. 보다 더 멋진 단어들은 아름다움과 거룩함이다.
행복과 평온은 상태을 나타내지만 아름다움과 거룩함은 본질을 나타낸다.
내 심장은 과거 아무 생각 없이 타인들의 기준에만 맞추어온 수동적이었던 나의 무의식에
세팅되어 지금도 불안이라는 단어에 미친 듯이 날뛴다.
그리고 조금씩 그 색채를 바꾼다. 불안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내 마음을 두드린다.
창조적이 마음이란 지금과는 다른 마음이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마인드 컨트롤이 아닌 창조적인 이름으로 하나하나씩 단어의 의미를 바꾸어 나간다.
그렇게 타인들을 바라보고 행동으로 옮긴다.
아무것도 고정시켜서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창의적인 단어로 받아들이면 된다.
창조는 신이 주신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