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과 연애하다.

불면증

by 토끼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편지를 쓴다.

생각만으로도 참 낭만적인 이야기다.

백만 년 전 아마도 내가 사랑에 빠져 마음에 초롱초롱 별이 떠서

까만 밤을 지새웠던 아름다웠던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밤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잠이 오지 않으면 일을 하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 되지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 또한 그저 부러울 뿐이다.

내가 처음 만난 불면의 첫인상은

생과사를 가로지르는 두려움이었다.

불면은 나를 집어삼킨 공포의 악령 같았다.


불면이라는 것에 무지했던 나는

평생을 불면의 밤을 보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9년 전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불면증은 9년 전 외상 후 스트레스로 시작됐지만

지금까지도 신호를 감지하면 어김없이 시작된다.


사고 나기 전 나는

누구나 그렇듯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복잡한 생각 따위 하지 않고,

독서는 즐겼지만 판타지 소설, 연애소설, 추리소설을 탐닉했다. 재미만을 추구했다.

글 따위는 쓸 일도 없었고, 영화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며,

일하고, 여가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고, 경치 좋은 곳 구경 다니면서, 깔깔거리며

노는 걸 좋아하는 그냥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불면증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변해버린 세상은 모든 초점이 잠에 맞추어졌다.

아주 작은 스트레스 앞에서도 결론은 잠과 연결 됐다.

그만큼 불면은 고통스러웠다.


나이가 들어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이유는 당연히

체력이 딸리니 당연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호기심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몸을 사리게 되는데.....

힘든 일을 피해 가려고 하다 보니, 거기서 오는 부담감을 견뎌내기 힘들다.

이런 압박감이 스트레스를 유발해서 불면증이 온다.


제일 처음 불면증이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불면을 유발하는

원인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내 잠을 방해하는 건 소음이었다. 똑딱거리는 시계를 치우고,

혼자 독방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일찍 잠자리에 든 나와 달리

신랑은 야행성이라 문밖으로 소음은 차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음차단 귀마개를 샀다. 귀마개는 소음을 거의 차단했다.

1차적 원인을 제거했지만, 잠자는데 실패했다.


두 번째 원인을 찾았다. 창문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문제였다.

암막커튼은 쳤다. 하지만 이것도 잠자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뜻한 우유 한잔, 미지근한 목욕, 하루의 힘든 노동, 아로마향, 평온한 마음

모두 소용없었다. 결국 정신과를 방문해서 약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신과 약은 나와 맞지 않았다. 속 쓰림이 너무 심했고, 수면제는

두통을 유발해서 이틀정도 먹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잠자리를 바꾸려고 시골로 내려가보기도 하고, 잠에 좋다는 건강식품도 챙겨 먹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란 긴 시간, 삼사일을 꼬박 새기도 하고, 이틀에 한번 꼴로 자기도 하고,

일도 못하고, 백수가 되어 , 폐인처럼 살았다. 면역력은 떨어져 잡다한 병들이 2년 동안

낫지도 않고 반복됐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생각의 홍수 속에서

마음의 둑방이 무너져 내려앉은 폐허만 가득한데.... 잡다한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평온한 마음, 안락한 잠자리, 조용하고 어두운 환경, 건강한 몸들이 나의 불면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불면의 원인은 소음도, 빛도, 생각의 홍수도, 불편한 몸도 아니다.

이런 것들이 원인이라고 믿는 마음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 잠은 하루라는 룰에 따라 움직인다.

일상을 살기 위해서는 잠은 자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이 불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불면이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없다. 잠이 안 오면 안 자면 된다. 몸이 자는 걸 거부한다면 몸에

순응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은 자야 한다는 생각자체를 버리고, 잠이 올 때 자면 된다.

잠이 안 올 때는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행동을 찾는다. 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가만히 누워 있든

하나를 선택해서 머무르면 된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걸 고르면 된다.


8년 동안의 불면을 지나오면서 내가 선택한 약은

불면이라는 녀석과 연애를 시작해서

온전히 받아들이고,

명상이라는 수면유도제를 먹는 것이다.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는 시간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명상법이 무수한 밤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폐기되었다. 지금 이 순간 명상은 지난 4년간 늘 밤의 친구가 돼 주었다.

매일 명상을 하다 보면 명상도 진화한다. 최근에는

언어의 문을 닫고, 가만히 있는 명상이 잠을 유도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잠에 실패한 날에는 얻는 것도 있다. 잠이 드려는 램수면으로 넘어갈 때 아주 잠깐 정신이 선명해지는데....

이 최고의 선명함을 느낄 때는 희비가 교차한다. 이 선명함은 오랜 경험으로 잠이 실패했다는 신호였다.

처음에는 이 선명함에 좌절하고, 아주 더러운 기분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이 선명함은 정신을 맑게 해서 밤새도록 각성시키게 만들었다. 결국은 밤을 새우고야 마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토대로 언제부턴가 이때를 이용해서 하나의 시간을 만들어 냈다.

이때 사유를 하게 되면 그 어떤 깨달음이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각인된다.

이때 어떤 생각을 잡으면 완전히 내 것이 된다. 대부분의 생각들은 깨달음이 된다.

이 생각들은 완전히 이해되며, 이해된 생각은 나를 놓아준다. 이때

한없는 평온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이런 경험 이후로, 이 선명한 시간은 공포가 아니라, 하나의 얻음의 시간이 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런 선명함 이후에는 깊은 숙면을 가져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선명함은

잠의 문턱에서 숙면으로 가느냐

불면으로 가느냐의 문을 만든다. 두 개의 문 앞에서 그 어떤 문도 두드리지 않고, 눈을 감은채 오늘 내가

선택한 명상의 문을 연다. 잠은 이제 나에게 명상이다.

명상을 하려고 누웠는데, 채 10분도 못하고, 잠으로 빠지거나, 한 시간의 명상 후에 잠에 빠지거나

밤새도록 명상의 세계로 빠지거나, 이런 시간들이 있을 뿐이다.

잠을 못 잔 것이 아니라, 밤새 명상을 한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명상을 한다면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명상이라는 단어에 집착만을 낳을 것이다.

명상이라는 본질은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명상은 불안과 고통이라는 재료를 만나면 멋진 예술품이 만들어진다.


불면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언어이다.

잠이라는 언어를 둘러싼 모든 언어들은 이제 내가 새롭게 마음 안에 세팅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들이 주어진다.


지금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불면이라는 언어가 나에게 고통을 준다면 변화시키면 된다.

한번 온 불면은 사라지지 않는다. 평생을 애정하면서 소중하게 다루고, 불면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야 한다.

불면이 없었다면 나는 사유하는 삶도, 나 자신의 삶을 사는 삶도,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삶도 몰랐을 것이다.

명상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