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은 병이 아니다.

해석

by 토끼

"요즘 다시 불면증 생겼어"

퀭한 얼굴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마디씩 조언을 한다.

" 산에 다녀보지 그래"

" 요가를 해"

" 재미없는 책을 읽어"

" 눈을 감고 시를 외워봐"

아주 약한 불면을 겪어 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조언들을 이제는 고맙게 듣는다.


모두가 자신들의 방법으로 효과를 봤으니 그들의 조언은 자신한테는 특효약이 분명하다.

8년 동안 불면증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한번 오면 길게는 한 달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불면증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몸의 변화를 경험할까?

약에 의존한다면 아마도 불면증은 나의 안방을 점령하고,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약 없이 불면과 잘 지내려면 우선 불면증을 해석하고 대하는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

불면증이라는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불면증은 잠을 못 자는 병이나 증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태에 가깝다.

머리들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넘치고, 몸은 뻣뻣하고, 심장박동은 안정되지 않고, 몸곳곳은 통증이

남아 있다. 이것은

나의 뇌가 처리하지 못한 위험요소 꺼리나, 아직 위험에 대비해서 외부의 적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신체의 방어상태이다.

나는 이런 증상 앞에서

지금 상태는 비상사태가 아니라 안정적인 상태라고 인식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명상을 해 왔었다.


명상은 마음이 평온할 때는 두 배의 효과가 있지만 이런 불면 앞에서는 효과가 미미할 때가 많았다.

진짜 명상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마음 훈련인데... 아무리 깊은 명상을 해도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불편하니 그 불안감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상 말고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내가 훈련한 명상으로 억지로라도 긴 밤을 누워서

명상을 하는 방법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명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어느 날 지금 이 순간 명상을 했는데.. 잠을 잘 잤다면 한동안은

그 명상에 집중하고, 효과가 없으면 또 다른 명상법을 시도하고, 언어를 모르는 명상법이 있는데

언어를 망각하면 평온해지는 명상법인데... 그 명상이 효과가 있으면 한동안은 그 명상법을 시도하며

또 몇 주 혹은 몇 달을 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명상법은 수십 가지가 된다.

하지만 이 모든 명상법은 아주 잠깐의 효과가 있다가 또 사라지고, 또 적용되고, 돌고 돈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단지 내 마음이 그것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선택했을 뿐이다.


이것 또한 일체유심조. 내 마음이 만들어내고, 정한다.

내 마음은 내 것인데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처음 불면증의 시작은 정확한 이유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그 이유들은 모호해지고,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하루가 정말 재미있고, 평온했는데도,

어떤 날은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다. 이제 잠을 못 자는 데는 이유도 없다.

심지어는 몸이 편안하게 이완되어 아무 문제가 없는 날에도 날을 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제 불면은 그냥 내 몸이 그러기를 선택하는 것과도 같다.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순응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재깍재깍 자야 할 시간이 지나고도 정신이 말똥 말똥 하면

" 아 내 몸이 오늘 잠을 자고 싶지 않구나. 그럼 뭘 하지? 내일 일을 해야 하니 잠을 잔 효과가 반이라도

있으려면 그냥 밤새 누워 있기라도 하자. 이렇게 누워서 가만히 있으면 잠을 잔 50프로의 효과는 있다고

했다."

올해에는 유독 불면증이 자주 찾아왔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현상은 올해 찾아온 불면증은

좀 특이했다. 한 번의 심한 불면증을 겪고 나면 수면의 질이 아주 좋아졌다. 정말 통으로 꿀잠을 잔다.

평소 잠을 잘 잘 때는 늘 두세 번을 자다 깨다 하는데... 한 번도 깨지 않고, 통잠을 잤다.

달라진 불명증의 변화를 나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는데..

이유는 딱 하나였다. 불면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조금 더 변했기 때문이다.

갖가지 새로운 명상법으로 긴 밤을 보내던 어느 날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 왜 억지로 명상을 시키지... 난 명상이 하고 싶지 않다고, 왜 명상이 좋다고만 생각하지?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고"

" 하고 싶지 않다고? 에고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는 게 참나가 할 일이야. 넌 늘 날 힘들게 하는 일만 골라서 하잖아"

난 에고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데... 그날은 달랐다. 왜 내가 꼭 명상만을 고집했던 거지...

모든 방법에서 실패를 하고 그나마 제일 효과가 좋았던 것이 명상이었기에 나는 명상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때 내 마음이 이런 말을 했다

" 난 너와 대화하고 싶어. 나를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진짜 대화를 해줘"

그래서 잠 오는 밤이면 명상도 하지만 이제는 대화를 하기로 했다.


내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기억 속의 자아들과 경험 속의 자아들... 그리고 지금 현재 나와 함께 있는 자아들까지

모두 모여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왕이면 상상력은 동원해서 카페도 여는 게 좋았다.

음 어디에다가 카페를 열까? 우주 한가운데 안드로메다 행성에다가 카페를 열어서 모든 자아들을 초대했다.

카페 주인은 참나가 하기로 했다. 우리는 잠 안 오는 밤 우주곳곳에 카페를 열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잠 오는 밤 대화가 잘되는 날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곤 한다.

다행히 나는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으니 대화내용도 많고 풍성하다.

우리는 과거 얘기도 하고, 지금 현재의 이야기도 한다.

요즘은 그래서 현재 아니 지금이 순간의 자아들이 튀어나와서 과거의 자아들이 발언권을 많이 잃었다.

지금 이 순간 명상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된다.

결국 내가 시도했던 모든 명상과 모든 깨달음의 과정들이 만들어낸 내 세계 속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정상적인 순간들을 정해놓고, 그 상태에 있지 못할 때

우울이라고 이야기하고, 불면이라고 이야기하고, 불안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정상적인 상태는 누가 정하는가! 모두의 공통된 다수의 상태가 정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것은 내가 정한다.

나에게 지금 우울이 지배하고, 통증이 지배하고, 불면이 지배하고 있다면

나의 정상적인 상태는 우울이며 통증이고, 불면이 되는 것이다. 지금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이다. 누가 우울이 나쁘고, 행복이 좋다고 정했는가! 정말 나쁘고 좋은 게 절대적으로 있는가?

아니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맞는 건 없다.


그 좋고 나쁨은 내가 정한다. 나는 좋고 나쁨을 규정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순간의 느낌을 인정할 뿐이다. 현재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하나의 경험이 된다.

나는 우울을 경험하고, 불면을 경험하고, 그때의 감정을 경험한다. 그 경험 안에서

나의 새로운 재해석이 탄생한다. 나만의 해석은 그 어떤 비교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때문에 고통이 통증이 괴로움일 수 없다. 통증은 어쩌면 신이 나에게 몸으로 건네는 대화일 수도 있다.

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서 해석하려 드는가!

내가 나로서 산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나의 세계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내가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면도 내 안에서는 나만의 해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 병이 찾아오고, 인생의 고난이 찾아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기회가 나에게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늘 똑 같이 해 오던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는 자본주의는 언제나 이런 사람들을 하나의 매뉴얼 속에 가두어 돈장사를 하려고 든다.

개개인의 창의성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메뉴얼 안에 넣어서

환자라는 이름 하나로 통제 하려 든다.


우리가 기존 의료시스템을 신뢰하지만

이런 의심을 한 번쯤은 해 보아야 한다.

주도권은 언제나 나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일보다, 병의 원인을 찾아서 평생을 병원만

전전긍긍하다 죽을 수도 있다.

우리의 정신세계는 그렇게 허접하지가 않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신을 창조하는 일은

이런 고난의 문 앞에서 빛을 밝히고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자신에게 찾아온 병이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 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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