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을 치료하려면

먼저 감정을 알아가는 법부터

by 토끼

8년 전 사고 후 생긴 외상 후 스트레스로 공황장애와 강박장애, 불안장애에 시달리던 나는 최악의 상태를 경험하면서도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


처음 겪는 증상이 괴롭기도 했지만 마음에서 오는 괴로움이라면

마음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종교적 믿음에 의지해 교회도 다니고, 불교철학에

심취하기도 했었다. 명상을 하고, 생활습관을 바꾸고,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몸은 서서히 좋아졌고, 또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이제는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증상들이 생각이 만들어낸 일종의 생각병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한다. 하지만 생각병을 무시할 수는 없다. 허상이라고, 흘려보낼 수도 없다.


내 생각을 이해하기 전까지 생각은 절대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생각이 어떻게 마음을 조종하는지 어떤 패턴으로 나를 잠식하는지 온몸의 증상으로

매일매일 겪으면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무리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절에서 백팔배를 하고, 계룡산에서 명상수련을 해도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모두 헛수고로 끝날 수도 있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마음이 터득하고 나면

그다음 과정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러고 나면 이제는 삶의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진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자리 잡고, 매 순간 감사하고,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이해되고, 그다음 일까지도, 예측가능 하다.


예측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일어날 일들을 대하는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예측하게 되는 걸 의미한다.


왜냐하면 습관과 생각에 의해 나의 행동과 사고는 패턴대로 움직인다.


이 패턴에 따라 생겨나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실상 아무런 문제도 없이

내면의 평온이 찾아오고, 평온한 감정이 언제나 공기처럼 호흡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들과 소통하게 된다는 사실은 가끔은 흥분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면을 느끼는 순간이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혼자 이런 내면에 접속하는 순간을 즐기러

설레는 마음으로 혼자가 되는 시간을

기다린 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미소를 부른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감정.

몸이 좀 안 좋거나 힘들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감정.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결핍이 심화되면 올라오는 감정.

삶이 불안해져서 올라오는 감정.

이런 부정적 요소의 감정들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올라오는 벅찬 감정.

감사와 사랑으로 올라오는 따스한 감정.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평온해질 때 올라오는 감정.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느낄 때 올라오는 감정.

이 우주가 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느낄 때 올라오는 감정.

여행을 즐기면서,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올라오는 감정,

이런 긍정적인 요소들의 감정들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요소의 감정들은 내 안에서 모두 같은 감정들이다.


감정들과 소통하려면 이런 감정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차별 없이 느껴야 한다.

감정들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괴로운 감정뒤에 행복한 감정이 오고,

행복한 감정뒤에 괴로운 감정이 온다.

이 감정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하나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일 때 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극도로 예민해진 불안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면 평온함이라는 감정이

두배로 찾아온다. 평온함이라는 감정이 계속되면 뭔가 또 불안한 감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감정이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계절의 변화처럼 반복된다.

자연스럽게 올라오고 사라진다. 여기에 무슨 괴로움이라는 게 있을까?

단지 그 감정이 괴롭다고 여기고, 좋다고 여겨서, 집착하고, 분별하고,저항하는 생각과 마음이 있을 뿐이다.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생각일까?

아니면 생각이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인간은 언어를 이해하기 이전부터 감정이라는 걸 느꼈다. 어린아이는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감정을 몸으로 표현한다.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웃는다. 아이가 울면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여기지만 아이는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런 감정의 변화를 표현한다.

감정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자신의 생존을 방어하는 수단이다.


어떤 불편한 상황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

두려운 감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호르몬을 내뿜는다. 그때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은 어떻게 마음이 알아차리는 것을 인지할까?

아이들은 그저 단순하게 운다. 왜냐하면 엄마가 와서 해결해 줄 거라는 본능적 믿음 때문이다.

성인들은 어떤가? 누가 나를 도와주러 올 사람이 있을까?

아이처럼 마냥 울 수가 없다. 운다는 건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방어기제나 편견이 없어야지만 울 수가 있다.


두려움이 잠식하면 눈물샘은 말라버린다. 눈물은 감정이 풍부하고, 자유로울 때 흘러내린다.

슬픔은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두려울 때 눈물이 흐르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오래전 골절사고로 수술을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같은 병실에는 나와 같은 증상으로 입원한 중학생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수술을 받기 전 무섭다고,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고요했고, 그녀는 단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수술 전 마취를 위해 옮겨질 때, 난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올라왔고 그 감정에 휩싸이자 생각이 넌 죽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설득했고, 그때 심장은 펌프질 하듯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두려움은 눈물샘을 터트리게 하고,

또 누군가는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몸은 다양하게 반응한다. 나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느껴서는 안 될 몹쓸 놈이었다.

왜냐하면 생각이 죽음이라는 공포를 감정 속에 심어 넣어서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발동하는데... 아이처럼 울어야 하는 그때 나는 눈물도 말라버렸고, 나를 도와주러 올 엄마라는 구원자도 없었다.


나를 지키러 온 구원자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인데, 그 감정에게 칼을 휘두르고, 함께 죽자고 위협을 하고,

달려들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느껴주어 야 할 내가 내 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 내가 쓰는 한마디의 언어, 일상에서의 모든 행위뒤에는 감정들이 일어난다.


마치 정전기가 일어나듯 자연스럽게 에너지처럼 생기는 감정들.

조금만 불편하고, 위험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안이라는 감정은 사실

평온한 감정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장인지 모른다.


평온하게 유지되는 감정들은 불안이라는 배터리가 충전되어야지 새롭게 에너지를 받는지 모른다.

마음은 이런 에너지 같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차별 없이 느껴 줄 때 지금 이 순간 속에 머물 수가 있다.

감사와 사랑은 이렇게 감정의 흐름이 순환되어야지만 충만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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