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의 여행으로도 충전은 충분하다.

자극

by 토끼

나는 정말 변했을까?

마음공부를 해서 진짜 조금이라도 변한 것일까?

아니면 일상이 평온하고, 잠잘 자고, 잘 먹고, 잘 지내니까 변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변하고 안 변하고 가 중요한 건 분명 아니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내면이 변화하고 있다는 확신이 가끔은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어떻게 느낄 수가 있단 말인가!

결국 힘든 시간에 직면하면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 난 그대로구나 하나도 변한 게 없구나.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신의 안위가 지켜지고 있을 때 그때만 인간은 신에게 감사하고, 신을 찬양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욥이라는 남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걸 잃고 나서도 하느님에게 감사했다. 이런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남에는 대형교회들이 많고, 부자들 중에는 기독교 신자들이 많다.

부자들은 신이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지켜주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자신의 재물을 교회에 헌납한다. 이런 기복신앙을 이용해서 교회는

더 많은 헌금목록을 만들어서 헌금을 거두어들인다.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하느님의 도움이 그들에게는 필요하다.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 많이 하고, 죄를 회개만 하면 모든 걸 이루어주시는 분이

그들이 믿는 하느님의 실체이다.


몸이 아프고, 하는 일이 잘되지 않으면 헌금이 적고, 믿음이 모자라서라고

직간접적으로 그들은 설교한다.

고통과 고난이 하느님의 상이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고통과 고난을 받으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과 비교해 보면

나의 고통과 고난은 이해불가이며, 재앙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괜찮은 사업아이템으로 사업이 대박 나고,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을 벌게 해 주는 행운은 도대체 어떤

복 받은 사람들에게 굴러 떨어지는 건지 가끔 하느님에게 묻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하느님은 한결같이 얘기하시는 것만 같다.

고통과 고난이 진정 하느님의 상이라고,

하느님은 언제나 하나를 넉넉하게 안겨주고는 다른 하나를 매몰차게 뺏어가셨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게 함으로써,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뼈 때리게 가르치셨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하느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나 좋은 일이 벌어지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 또 뭘 가져가시려고, 이런 걸 주시나.......

순수하게 좋아하지 못하는 불순한 마음이 복을 차버린다고 얘기할 줄 모르지만

고통과 고난이 하느님의 상이라고, 여기는 나에게 행운은 늘 맛없는 음식만 먹던 쥐새끼가 어느 날 덧에 설치된

맛있는 음식같이 생각된다.


요즘 주식으로 떼돈을 번 절친은 몇 달 치 월급을 벌었다고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다.

그에게서 밥을 얻어먹지만, 그가 부럽지는 않다. 나라는 사람에게 행운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행운은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면 언제나 그 만큼의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이나 충전은 여행이 가장 가성비가 좋다.

여행의 의미는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곳을 가는 게 아니라 일상의 변화이다.

여행자체는 불확실성과 변화, 고난을 포함하고 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 힘듦을 감수하면서

산을 오르고, 이름 모를 거리를 걷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낯선 곳으로 우리는 떠난다.

어쩌면 고통과 고난을 몸소 겪으러 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진정한 충전은 바로 자극이다.

평온한 일상에 자극을 주어서 힘을 얻는 것이 바로 여행과. 취미, 힐링의 진정한 의미이다.

마음공부를 책으로만 한다면 그저 공부에 끝나겠지만 일상의 사건 사고의 충돌로 무너지고 부서지고,

아프면서 늘 다른 방법으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른 시선으로 사건 사고를 바라보고,

그런 나를 다시 객관화시켜서 보면서, 마음이 경험하는 고통뿐 아니라,

내 몸의 고통 또한 함께 겪는다.


이런 경험은 어쩌면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마음의 충전이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재앙이지만 받아들이고 원한다면 나의 트라우마로 겪는

몸과 마음의 고통은 어쩌면 평온을 위한 충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런 충전이 있기 때문에, 성숙해지는 시간이 쌓이고, 나는 변하고 있다는 확신이

현실이 되고, 아무 일 없는 무료한 일상을 조금은 설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고난과 고통이 하느님의 상이라는 그 말을 이제는 온전히 믿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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