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 눈을 뜨면 정신이 아주 맑다. 뒤척임도 없이 바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즘 수면의 질이 아주 좋아져서 중간에 한번 깨더라도, 다시 꿀잠을 잔다.
아무리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도 모른 채 잔다.
수면의 패턴이 20대의 해맑던 아침의 기억을 선물해 주는 아침도 있었다.
9시에 취침해서 새벽 4시에 눈을 뜨면 먼저 가슴이 뭉클하다. 감사하는 마음이
벅차서, 아침부터 원치 않는 눈물을 쏟아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가끔 내 안에서 욕지기가 튀어나온다.
"염병, 이게 그렇게 감사할 일이야. 그냥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잖아. 나한테 무슨
행운이 당첨된 것도, 좋은 일이 생긴 것도, 인생이 술술 잘 풀린 것도, 아니잖아, 그냥
긴 밤 잠을 잔 것뿐이잖아. 남들처럼 그냥 잠을 잔 것뿐이라고..... 근데 이게 눈물을
흘릴 만큼 감사할 일이냐고?"
하지만 불면증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안다. 이 단 하루의 꿀잠이 당연한 것도, 소박한 것도 아닌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 대단한 일들이 매일매일 기적처럼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예전에는 감사라는 단어에 이렇게 깊게 반응하지 않았다.
감사하는 마음이 정신건강에 좋고,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이왕이면 감사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다.
언제였던가! 감사를 늘 연습하고, 억지로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감사를 습관처럼 몸에 익히려고, 의식적으로 감사를 반복했다.
내면에서 감사라는 단어의 느낌은 전해 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감사라는 단어가 이렇게 내면에서 주책맞게 눈물샘을 자극하기 시작했을까?
나라는 인간의 본성에 완전히 순응하기 시작했던 그때부터일까?
에고라는 자아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나의 존재자체로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나서부터 일까?
아니면 감정수업에 충실해서,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일까?
감사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눈을 감으면, 어느 지중해의 어떤 해변에서 바다를 보며 모히또를 마시는
즐거움과 같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서서 석양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감정이 든다.
인간에게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사랑스러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연인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지 않아도,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아
동경의 시선을 한 몸에 받지 않아도,
감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눈을 감으면 그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내면에서 이유없는 감사하는 감정이 진짜가 되고 일상에서 느끼기 시작하니, 외부에서 욕망하는 이유있는 것들의 갈증이 줄어들었다.
먼산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들, 다양한 감정의 바다를 흘러가는 듯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단지 그냥 머무르고 있어서 좋고,
애쓰지 않는데 자연스레 느껴져서 좋다.
지금 나는 감정여행 중이고,
감사라는 섬에서 머무르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