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고 바꾸는 훈련
이순신 장군
ㅣ암막커튼은 치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던 과거, 아니 몇 달 전 까지도 암막커튼을 치고 잤다.
하지만 지금은 온방에 빛이 쏟아지게 하고 잔다. 암막커튼을 치면 방안의 작은 불빛들이 문제가 되는데,
예를 들면 보일러 전원의 빨간 빛이 신경 쓰일 때면 거기에도 미니커튼 같은 걸 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불빛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지는 어둠 속의 불빛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그 불빛을 내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간 암막커튼에 의지해 잠을 잤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빛과 친해지게 됐을까?
" 저 빛들은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야! 난 저 빛이 있어야지만 잠들 수 있어,
저 빛은 밤새 잠의 나라로 가는 이정표가 될꺼야"
라며 눈을 감고, 주문을 걸었다.
이런 주문을 과거에도 수만번 걸어 봤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무의식은 끊질긴 설득과 훈련앞에 결국 마음의 마법에 걸리고 말았다. 포기하지 않고
무의식에게 대화를 걸고 무의식이 그것이
받아들일때 변화는 어느날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
수호천사, 약간의 기시감이 드는 단어이다. 부정적 감정도,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라고 생각했었다. 부정적 감정에만 쓰란 법은 없다.
아무것에나 갖다 붙여도 상관없었다. 이성적 자아는 늘 이렇게 독백한다.
"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이제 아주 미쳤구나"
하지만 난 내 사고의 주인이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란 없다. 난 언제나 모든 걸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란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스스로가 만든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그 많은 스토리와 상상력에 감탄하지만
그 경험을 왜 스스로에게는 적용시키지 않는 걸까? 내 삶 속에서,
나만의 스토리텔링으로 내면 드라마를 써야 하는데.... 내면의 드라마는 판타지라도 좋고, 리얼리티라도 좋다.
단 언제난 엔딩을 내가 내편인 스토리를 써 내려간다.
나라는 오리월드에는 부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나라가 있다. 그 영토는 기름지고 비옥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그 영토를 통치하는 통치자는 이순신장군일 때도 있고, 계백장군일 때도 있고, 전봉준일 때도 있다.
내 감정선이 건드려져서 위험해질 때 이순신장군은 짠하고 나타나 나를 안심시켜 준다.
이 두려운 감정은 널 지켜주는 강인한 담력 같은 감정이니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뭐 그런 상상을 한다.
아니 소리가 들린다 믿는다,
처음 이런 스토리 텔링을 할 때는 너무 오글거리고, 황당했지만, 무의식에서 이런 스토리가 아주 잘 먹힌다는 걸
알았을 때, 인간의 두뇌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실에 반응하는지는 몰라도,
무의식은 정반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안에서 더 세밀한 스토리를 짜면 짤 수록 무의식은 설득력이 커진다.
인류가 단순히 유일신인 하느님을 믿다가,
예수라는 구원자를 탄생시키고 거기에 우리를 대신해 희생했다는 신약성경이라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자. 사람들은 진짜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감동과 믿음이 신의 존재를
드라마틱하게 인간의 마음을 뼈속까지 움직이게 했다.
무의식은 상상력을 좋아하고, 아이 같은 단순함을 더 빨리 인지한다.
그래서 단 하루 만에 암막커튼은
온전한 믿음 앞에 무의식이 빛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내 안에는 무수한 존재들이 존재해서 그 존재들과 대화하는 시간들도 있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내면에서 느낄 때는 모두 같은 빛깔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할 때는 상대에게 내 감정의 상태를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에,
기쁨은 기쁨으로 분노는 분노처럼 표현해야 한다.
나에게 무례한 인간에게 분노라는 단호한 표현으로 나를 지킬 필요가 있을 때,
우리는 격하게 분노해서, 폭력에 버금갈 정도의 위력으로, 상대가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경고의 표시를 해야 한다.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분노가 내 안에서 화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부정적 감정을 날 위해 커버해 주고 있으니 이번에는 장군님의 검을
받아 아주 멋지게 한번 휘둘러 보는 것이다.
내면은 분노하지 않고, 잔잔하면서, 멋지게 분노하는 연기를 펼쳐 본다.
이처럼 오리 월드에는 내 부정적 감정을 다루어주는 다양한 뮤즈 같은 존재들이 탄생하고, 사라진다.
무의식 속에서 뿌리깊이 박힌 습관적인 두려움과 불안감들은 이제 무엇이 현실인지 상상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말랑말랑해진다.
과거에 스릴러를 찍고 있었다면 지금은 시트콤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모든 생각과 상상, 사고는 내 안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버라어티 한 내면을 구경하고 있을 때면
그 어떤 영화를 볼 때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이 훈련은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대단한 일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밖으로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려면 내면에서 먼저, 시트콤을 찍는 난장판이 만들어져 한다.
일단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어지면
그때 모든 상상력이 동원될 시간이다. 그리고 그 부정적 감정은 내편이 된다.
수호천사를 만드는 비법은 이렇게 어렵지가 않다.
한 명의 수호천사로 시작해서
오리월드가 점점 더 커져 간다면
수십 명의 수호천사를 만들어도 되고 수백 명의 수호천사를 만들어도 된다.
내 안에서 이렇게 멋지게 조련된 감정이 현실밖으로 나올 때는 좀 더 창의적인 방법이 되고,
멋진 모습이 된다.
나는 기쁠 때 분노하고, 슬플 때 웃고, 두려울 때 미소 짓는 이런 감정의 반어적 표현이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감정의 앞과 뒷면을 알고, 감정을 하나의 정답으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정답을 찾아 본다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은 먼저 내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답이
아닐 때도 많다. 그러면 새로운 답을 찾아내면 된다.
감성이 풍부해진다고,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건 아니다.
감성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상력은 내면은 아름답게 풍부하게 한다.
그떼 이성적 사고는 힘을 받는다.
건강한 이성적 사고는 유연해야 한다. 쉽게 부러지기도 하면서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정답이 없는 혼란 속에서도 여유로워야 한다.
이성이 묻는다.
" 이런 생각들 좀 우습지 않니 바보 같아?"
그때 감성이 웃으며 말한다.
" 다 널 위한 거야 난 늘 네 편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