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을 하면 집중력이 생겨 시험성적이 오릅니다.
사물을 통찰하는 능력이 생겨 성공의 괘도에 오릅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건강이 좋아집니다.
내면을 다스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받으며, 대인관계가 좋아집니다.
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서 행복한 상태을 유지합니다.
방배동에서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어느 마음수련원 앞에 쓰인 팻말 앞에 멈춰 섰다.
100평대의 고급빌라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동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세련된 마음수련원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지만
문 앞에 커다랗게 쓰인 팻말의 문구들에 더 시선이 꽂혔다.
여느 광고에서 볼듯한 흔한 문구인데,
이 동네에서 만나니 느낌이 묘했다.
마음수련을 하면 성적도 오르고 건강도 좋아지고, 성공하고,
인정받고, 행복해지고, 인기 있는 사람이 되는구나!
건물도 세련되고 인테리어도 약간 신비주의 색감으로 우아하게 꾸며져 있는데,
문구는 뭐랄까! 양아치 느낌이 난다고 할까?
마음수련을 하면 잘 먹고 잘 산다라는
문구의 진위여부는 사실 맞는 말이었지만,
마음수련이 저렇게 단순한 목적의 욕망충족의 결과로 이어진다면
참 저 수련원 원장은 신통방통한 능력자 임이 틀림없다.
하느님을 믿으면 성공하고, 건강해지고, 부를 얻으며, 행복해지는
원리랑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어떤 명상을 하고, 어떤 걸 가르치는지 궁금해서, 한번 다녀 볼까 하는 생각이
솟구쳤지만. 뻔하디 뻔한 걸 가르칠 거라는 결론을 들었다.
마음수련이든 마음공부든 해탈이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다 한 갈래에서 만나기 때문에
배움에는 모두 같은 줄기일 뿐이다.
하지만 받아들임의 길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의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들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 창의적인 방법들은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마음수련원의 팻말은 아무런 창의적인 접근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돈 많은 동내의 지갑도 이런 진부한 방식으로 열려지는구나 싶었다.
어쩌면 문구만 속물적이고, 막상 수업을 시작하면, 반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 보았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 당신은 왜 마음수련을 하려고 왔습니까?
성공을 하고, 인정받고, 몸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오는 이곳에 오셨다면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팻말에 쓰인 그런 바람이 이뤄지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정반대로 어긋나는 곳입니다. 마음수련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타인들로부터 고립되어야 하고, 좌절과 두려움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하며,
불안감속에 있어야 하고,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과해야 이제 걸음마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장담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 자신이 찾은 길만이 당신이 마음수련에서 얻은 결과물입니다.
그걸 얻어갈 수 있다면 마음수련은 제대로 된 겁니다."
100평대 빌라들의 불 켜진 창문들을 하나둘씩 올려다보았다.
세련된 인테리어, 넓고 깨끗한 공간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자신의 손으로 쌀한 톨도 씻어보지 않고, 식사 한번 스스로 만들어 보지 않고,
내일의 의식주를 한 번도 걱정해 보지 않고, 화장실 타일의 검은 때를 벗겨 본 적도 없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맨 적도 없고, 손때 묻은 물건들에 한 번도 집착해 본 적 없는 사람들.
부유한 자들은 돈으로 노동을 사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무지할 것이라는 건 편견일까?
가난하고 못 사는 동네에 마음수련원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먹고살기 바쁜데 마음수련 따위가 무슨 필요 인가!
그들에게는 매일매일의 삶이 마음수련과 같다.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갑들의 횡포를
견뎌야 하고, 세상의 부조리와 싸워야 한다.
부유한 자들에게 마음수련은 자신이 가진걸 더 잃지 않고, 지키거나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는 놈 위에 걷는 놈,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상대적인 세상을 사는 인간들에게 욕망이란 다 비슷해서
절대로 채워지는 법이 없으니 자신이 가진한도 내에서
또 모두 같은 종류의 걱정거리를 달고 산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지켜야 할 것이 많고, 유지해야 할 것이 많고, 감내해야 할 것이 많고,
적들이 많으니 걱정거리가 많을 것 같지만
가진 것이 없어도 걱정거리는 많다.
단, 그 걱정의 유형과 스케일이 다를 뿐이다.
결국 그 걱정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니 모든 인간의 공통된 욕심이 하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며,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다.
그 욕심을 채워 줄 수 있는 게,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은
더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더 더 많은 것들을 자신만이 가지려고,
부자들을 가난한 자들의 밥그릇마저 빼앗아 간다.
마음수련원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만나서 각자 무엇을
수련할까?
또다시 성공과 부를 가지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다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도 돈을 벌게 될까?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과 같이 똑같은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면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성공한 부자들이 자신들이 유리하게 짜 놓은 판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
가난한 자들은 다른 형태의 성공을 해야 한다. 부자들이 짜 놓은 판을 나와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며 정책이며, 연대며, 혁명이며, 개혁이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가난을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소비만으로도 삶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존감을 회복하면
부자들이 만든 소비중심의 패턴에서 벗어난 삶을 배울 수 있다.
결국 소비의 문화가 형태가 바뀔 수가 있을 것이다.
재별들이 마음 수련을 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서, 회사의 이익을 늘이고, 권력을 더 강화시키고,
자신의 건강과 부를 위해 더 더 똑똑해지고 현명해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마음수련을 제대로 하고 나서 제대로 된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어떨까?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은 모든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 아닌 단지 가난한 자들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톨스토이가 회심했던 것처럼, 노비들을 다 풀어주고, 부를 재분배해주고,
이런 일들이 생겨나면 어쩌면 다른 재벌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시스템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마음수련으로 깨달아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마음수련을 제대로 가르쳐서도, 제대로 배워서도 안된다.
마음수련은 단지 자신의 안위가 지켜지는 딱 그 수준에서
알듯 말 듯 될 듯 말 듯 그렇게 혼란만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고, 팻말을 보니
마음수련을 하면 집중력이 생겨 시험성적이 오릅니다.
사물을 통찰하는 능력이 생겨 성공의 괘도에 오릅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건강이 좋아집니다.
내면을 다스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받으며, 대인관계가 좋아집니다.
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서 행복한 상태을 유지합니다.
아주 영악하고, 똑똑한 영업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악마가 이 팻말을 본다면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