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감정은 나를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감정

by 토끼

스트레스로 올라오는 부정적 감정을 내면의 에너지로 씁니다.

그때 마음이 따뜻하고, 평온해집니다.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오래전 처음 공황장애를 느꼈을 때의 상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고 후 몸이 약한 상태에서 고관절 골절범위를 확인하려고 병원에서 mri 찍으려고

누워있는데... 채 10분도 되지 않아 숨이 막히고, 심장이 빨리 뛰어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식은땀이 물흐듯 흐르고, 죽을만큼 힘들고 나서야 서서히 진정되었다.

영화를 보러 가도, 지하철을 타고 있어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기차를 타고 있을 때도,

그때 이후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증상이 반복되며 찾아 왔다.

그때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 불안한 감정들은 일상이 돼버니까.

심장은 아주 작은 일에도 벌렁거렸다.

심지어는 악몽을 꾼 것도 아닌데. 멀쩡하게 단잠을 자다가 심장이 빨리 뛰어서 잠을 깼던 것이

매일 반복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 7년이란 시간 동안 반복된 일상이었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약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확신했었다.

뭔가 새로운 마음을 찾는다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약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마음공부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2년 전 과로와 스트레스로 어느 날 갑자기 온갖 근육들이 마치 틱장애처럼 움직이는 증상이

새롭게 생겼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증상 앞에서 너무 놀랐는지 지독한 불면증이 왔다.

잠 자체를 아예 잘수가 없었다.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리보트릴이라는 분홍색 신경안정제는 그 모든 증상을 한 번에 가라앉혀 주었다.

그때 알았다. 왜 사람들이 약을 먹는지.... 왜 약에 의존하는지. 한알의 알약의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아무리 불안해도, 잠들 수 있었고, 아무리 심장이 날뛰어도 바로 진정되었다.

하지만 이게 진짜 나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 달간 약을 먹으니 증상은 약해졌고, 그때 서서히 약을 끊었다. 의사는 계속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약이 해결해 줄 일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약은 단지 마음이 해결해 줄 시간을 벌어주는 수단일 뿐이다. 나에게는 마음공부가 더 나를 치유해 주는

치료제였다.

약을 먹지 않은 덕분에 나는 공황발작, 불안장애, 강박증, 우울증, 에서 오는 모든 다양한 증상들을

다 생으로 생생하게 느꼈다. 내 고통의 댓가는 나에게 감사라는

께달음을 매일 선물로 안겨 주었다.

그 깨달음 덕분에 증상들이 찾아올 때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고 감정들의

세세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모두 디테일하게 이름을 지어주고,

어린아이가 인형놀이를 하듯 역할극을 하면서 놀았다.


공황장애나 불안감 우울증 이런 감정을 느끼는 상황이나 사건들을 피하려고, 한때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환경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더한 일들이 기다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런 고난들은 극복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의 삶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힘들고, 위험한 상태를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감정들의 본질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난 뒤.

그 감정들은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나 천사처럼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정들이 올라올 때 아주 세세하게 느껴 준다.

감정을 느껴줄 때 과거에는 똑같은 상황에서 두려움이던 감정이 이제는

따스한 에너지로 느껴졌다. 몸 안에서 에너지로 퍼져나가면 심장은 반응하지 않는다.

심장과 세포들은 감정들과 상관없이 내가 두려움이라는 생각을 할 때 그때 반응한다.

일상에서 올라오는 스트레스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스트레스상황에서 기억하는 감정들은 고요하게 느껴주면 에너지가 된다.

몸 안에서 통증이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다.

감기에 걸리고, 식중독에 걸렸을 때 통증과 함께 늘 감정이 올라온다.


그때 통증이 아니라 감정을 온전하게 느껴 주면 통증은 아주 강도가 약해진다.

통증은 저 혼자 아프지 않다. 언제나 감정을 실과 바늘처럼 달고 온다.

통증도 괴로운데, 감정까지 괴롭다면 이중고로 힘들다. 하지만 통증과 감정을 분리해서

느낄 수도 있다. 감정수업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야지만 가능하다.

마음공부는 이렇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들을 객관화하고, 그 과정 속에서 모든 감정을 사랑하게 된다.

감정을 사랑하려면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모두 생생하게 느껴주어햐 한다.

숨이 턱턱 하게 막히는 감정이라도 온전하게 느껴 준다면 감정의 시작은 고통일지라도,

마지막은 따스한 에너지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과의 대화는 내면의 섬세한 감정을 알아차려서 함께 파동해 주는 시간이다.

양자역학의 우주의 에너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눈을 감고, 내면 속으로 들어가 감정이 느끼는 무한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에너지의 파장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텅 빈 공간뿐이다.

고맙다 내 안의 감정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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