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한번 정해지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시간여행을 떠나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그런 스토리들이 많다.
하지만 기억 속 운명을 바꾸긴 했는데, 나중에 결국 그 운명처럼 다시 돌아가는 결말들이 있다.
특히나 죽음이나 사고들은 절대 피해 갈 수가 없다.
나도 가끔은 9년 전을 떠 올 린다. 그때 그 사고가 없었다면 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만약 나에게도 그런 운명을 바꿀 시간여행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할까?
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겠지만.,
만약 지금의 기억이 없는 채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운명을 택할까라고 질문한다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사고를 택하고, 지금 현재의 내 삶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사고도 고통도 없던 과거의 삶은 평온함의 나날일지는 모르나,
지금은 그런 무지한 시간들이 나에게는 더 고통일 수도 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내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이 그저 욕망만을 쫒아서 주어진 습관대로만 살아가는
과거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가까운 지인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내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얘기한다.
단지 하나 변한 것이 있다면 좀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는 것 하나뿐이라고 한다.
좀 다르게 생각하는 이런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인지 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이라고 여긴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나는 단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들을
생각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생각을 믿지 않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나 편하게 하고,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집착이 없는 생각은 무의식을 변화, 시킨다.
의미가 꽉 채워진 촘촘한 생각들은 복잡하게 사유들을 끌어내지만 머물지 않고 금방 비워진다.
수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이 밀려오지만 이렇게 정리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무의식은 안다. 내가 치열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이런 생각들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걸.
과거에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내면과의 대화에서 나를 느낀다.
겉으로 보이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가 원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본다.
운명은 어쩌면 진짜 나를 만나서 내 삶을 살도록 설계돼 있었다. 많은 고통의 시간은 어쩌면
지금의 시간을 얻는 대가 일지도 모른다. 고통만 받다가 폐인이 되거나 약에 의존해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난 그 어떤 상태가 된다 해도 기꺼이 내 운명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어떤 선택도 내게는 최선이었다는 걸 안다. 늘 언제나 지금은 옳다. 앞으로의 인생에
또 어떤 사건과 사고, 새로운 운명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운명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운명이란 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지한 상태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사람들이 쓰는 언어이다.
앞으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두려움 고통이라는 감정들은 모두 내편이다. 내가 그 감정들의 주인이고,
그 감정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순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깨어있기만 한다면
기꺼이 그 감정들에게 내맡기기만 한다면 그 감정들은 나를 지키는 에너지원들이다.
이 에너지를 경험하고 나면 안다. 내가 이 모든 것들은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구나.
그러니까 앞으로 나에게 일어나는 미래는 새로운 나를 경험하는 시간들이구나.
지금까지는 세상 속에서 나를 만난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내 안에서 세상을 만나고 있다.
특별할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 반응하는 생생한 나를 보면서,
내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내 삶에 정해진 죽음과 사건 사고들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정해진 시간들은 이제는 받아들이는 방법이 달라졌다. 두려움 없이 직면하는 순간 새로움이 된다.
두려움이 와도 괜찮다. 어차피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늘 그렇듯이 또 무너져도,
바닥을 뚫고, 다시 새로운 바닥을 다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