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자살

by 토끼

그 어떤 공포영화도, 귀신영화도, 끔찍한 살인사건도 이보다 더

공포스러울 순 없다.

바로 진실이라는 탈을 쓴 살아있는 언론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측성 기사들의 범람.


나의 아저씨 이선균은 이렇게 언론과 공권력에 의해서 조리돌림을 하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자신의 잘못이 정말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억울함을 호소하며, 마지막 생을 스스로 끊어냈다.


막대한 위약금과, 추락한 도덕적 이미지. 사회나 대중으로부터 받은

지탄과, 모욕, 수치심으로부터 도망치는 데는

죽음이란 방법이 그에게 제일 쉬웠다.

노무현 , 반원순, 노회찬의 이름이 지나쳐 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사과정과 보도행태가 매우 이상하고, 잔인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그의 죽음에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 죄가 있으니.. 부끄러워서 죽었겠지..

죄가 없으면 억울할게 뭐 있어! 떳떳한데 왜 죽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연예인은 이미지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돼버렸다.


유며인으로서 산다는 건 무엇일까?

자신의 삶이 노출되어서

인기를 얻으면 더 많은 돈을 벌고,

유명해지지만 그만큼 타인들의 먹잇감이 되어 얻은 만큼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서는 선진국들에 비해 , 마약이나, 불륜에는 관대하지 않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죄를 짓는다. 한순간의 판단미스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한순간의 달콤함을 위해,

잠깐의 절실함 때문에, 잠깐 마음의 일탈을 위해

했던 행위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이 했던 행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스스로의 성찰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의

죄가 아닌 다른 부풀려져 버린 죄까지 한꺼번에 씌워져

알몸으로 단두대 위에

올려진다면 누군들 억울하지 않을까?

자기 혼자면 괜찮지만 제일 무서운 건 가족들이

함께 엮인다는 사실이다.


나만 사라지면 모두가 안전해진다는 단순한 결론은

결국 유명인들에게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공인으로서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거나 존경받는다는 건

어떤 노력 없이는 힘든 일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언제나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정해놓고 그 틀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산다.

명예를 잃어서 자신의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자신이 짜놓은 틀속에서만 살아온 슬픈 인생이고

연약함은 곧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 틀 안에는 많은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


그 틀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망각하게 만들고

타인의 시선은 늘 언제나 허상의 나를 만들어

허상의 나로 살도록 강요한다.

들키지 말아야 할 나는 실제로 웅크리고 있으면서 내면을 꾹꾹 누르고 있다.


지금 내가 되고자 하는 나는 누군가?


아는 것이 많아서 막힘이 없는 대화를 하는나.

유머 있는 사람이라서 타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나.

권력이라는 자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타인을 지배하는 나.

돈이 많아서 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인사를 받는나.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나.

외모만으로도 타인의 시선을 온몸에 받는 나.

감정 조절이 질 돼서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를 잘하는 나.

일처리를 잘해서 어디서나 빛나는 나.


모든 나의 공통점은 결국 타인들로부터 인정받는 나로 통일 된다.


아마도 이중 한 가지쯤에는 속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계발을 하고, 일을 하고 노력하며 산다.


모든 걸 다 잃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아도 버틸 수 있는

나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뻔뻔하고 이기적으로 살면 되는 걸까?


아무리 언론이 물어뜯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고 해도,

나를 지키는 방법은 딱 하나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 따위는 버리고,

타인들에게 난 인간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인간 말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한테 만큼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그 어떤 하찮은 인간이라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지금 내가 죽을 만큼 궁지에 몰려 힘들더라도, 조금만

버티면 된다.

내일은 조금 다른 생각이 올라오고, 어제보다 조금은 버틸만해진다.

그렇게 좀 버티다 보면


세상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시간과 만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억울함과 싸우면 된다.

결국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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