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뭐가 있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

by 토끼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도 모자란 판에 애써 시간을 내서 힐링을 하는 시간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전개들이 펼쳐지는 스토리를 봐야만 하는 가다.

저마다 힐링의 의미가 다르겠지만 힐링이란 아름다운 거, 재미난거,

좋은 거, 이쁜 거, 멋진 걸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앞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간이 가진 악의 본성은 선과 어떤 충돌을 일으키는지

보는 것이 흥미롭고 그생각 속에서 내 사유도

들어다보는 시간이 즐겁다.




슬픈영화를 보면서, 기쁨을 상기하고, 잔인한 영화를 보면서, 안전을 확인하고,

부조리가 가득한 억울한 영화를 보면서, 지금 현재의 삶을 사유하게 되는 건,

언제나 양가감정을 함께 느껴야지만 하나의 감정이 더 크게 와닿는 역설적인

감정의 상호작용 때문이다.



종말 이후를 다룬 영화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존을 건 스토리가 잔인하기 때문이다.


문명이 파괴된 인류에게 남은 건 동물적 원시성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문명 안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생존 앞에서는

동물보다 더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모습은

바로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보여주는 비인간적 모습이다.

더로드라는 영화에는 인육을 먹는 인간사냥꾼들이 등장한다.



인육을 먹는 인간사냥꾼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 어떤 다른 스토리장치가 없지 않으면

영화자체로써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좀비영화는 다르다.



좀비들도 똑같이 인간들을 사냥한다. 하지만 좀비는 좀비들에게 부여된

본성이 주어지기에 거부감 없이 본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일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기에 더 이상의 상상력을 죽여버린다.

동물들은 최후의 순간에도 처음과 끝을 변함없이 자신의 모습을 지키면서 죽어가지만

탐욕을 맛본 인간은 자신의 생존 앞에서, 얼마큼 더 잔인하고,

악랄해 질 수 있는지를 본다는 게 힘들다.



인류종말을 다룬 영화에서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은

인간이 사라진 지구, 활량 한 거리에 , 아무도 없는 거리에 고양이 한 마리가 서있거나

아니면 딱 한 명의 인간이 서 있는 장면이다.

영화 28일 후처럼 주인공이 인류가 명망 한 후 홀로 남은 도시를 걷고 있는 장면이다.

매드맥스나. 나는 전설이다. 데드워킹 같은 영화 모두 주인공이 홀로 도시를 걷는 장면들이 있다.

만약 당신이 어느 날 의식을 잃고 깨어났는데...... 거리로 나가보니 세상에 나 혼자 뿐이고,

그 어떤 인간들도 남아있지 않을 때 순간 무슨 생각이 들까?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란 영화는 그런 나의 생각들을 영화 속에 이입시켜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집이 가지는 상징성으로 인물들의 심리를

끌고 간다.

감독은 자신이 짜놓은 판을 움직일 장기말 하나를 선택한다.


바로 영탁이라는 인물이다.

구약성경에서 모세처럼 그는 선택받은 행운아다.




아파트사기로 전재산을 날림 주범인 황궁아파트 사람의

집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사기범을 죽였는데... 그 절망의 순간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지진이 나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영탁은 신분세탁을 하고, 자신이 황궁아파트 주민인 것처럼 행세하며

한 주민들을 화재의 순간 몸을 날려 살려준다.

그리고 주민대표로 선정되어 황궁아파트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얼마나 힘들게 장만한 아파트인데.. 이 아파트를 타인들에게

빼앗길 수가 없기 때문에 평범하디 평범한 아파트 주민들과

어리바리한 영탁은 처음에는 꽤나 훌륭하고 성공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을

이끌지만 서서히 광기를 띄면서 인간성을 잃어간다.



영화는 처음에 아포칼립스영화라는 걸 잊게 할 만큼, 현실 같은 재난영화라는 몰입감을 준다.

재난을 헤쳐나갈 아파트 주민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자가가 아닌 전세나 월세민에게도

후보자격을 주어야 하는지 묻는 주민들의 의사를 통해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계급구조를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결국은 아파트주민도 아닌 영탁이 지도자로 선정되는

반전을 보여 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유토피아는 없다.


선택받았지만, 먹이를 구하기 위해

매일 아파트밖 폐허 속에서 목숨을 걸고 생필품을 구해와야 하고,

언제 더 큰 힘을 가진 외부의 사람들에게 아파트를 뺏기지 않기 위해 불안감속에서

아파트를 지켜야 한다.




그들이 함께 똘똘 뭉쳐서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고,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주민이 아닌 자들을 바퀴벌레라 칭하며

그들을 지옥으로 내몬다.

인간은 연대라는 방식으로 문화를 만들고 진보해 왔다.

하지만 이연대는 인류를 파괴시키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아파트 중에 가로로 누워버린 아파트에서

서로 음식을 나눠주며 공존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인간성을 버리고 뭉치는 사람들이 아닌


폐허가 됐지만

자신의 것을 놓아버리고, 집단의 연대가 아닌

개개인의 연대를 통해 서로에게 따뜻한 곁을 나눌 수 사람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모든 건물들이 사라지고, 내가 살고 있는 황궁아파트만 덩그러니 세상에 남게 된다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 왜지? 왜 여기만 멀쩡한 거지....

먼저 두려움과 절망적인 생각이 들겠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거와는 상관없이

잠시 후 내가 선택됐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우월감도 들것이다.


세상이 사라졌는데. 우월감이 무슨 소용이며

계급이라는 게... 무슨 소용 일까? 인간의 생존하기 위한 환경이 사라졌을 때

생존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힘이 있는 자만이 자신을 지킬 수가 있다.



만약 신이 있다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마치 게임을 하듯.....

선택은 곧 행운이지만 세상의 종말 앞에서 아파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아파트는 마치 하나의 에덴동산처럼 욕망을 증폭시킨다.



내가 만일 황궁아파트 주민이라면 어떻게 할까?

종말 이후의 아파트는 힘의 상징이다.


모든 강한 자들이 쟁취하고자 달려들 것이다.

아파트를 지키느냐 모두 함께 공유하느냐?


결과는 마지막에는 둘 다 결국 강자들에 의해 빼앗길 것이다.



이쯤 되면 신은 흥미롭게 인간들을 내려다볼 것이다.

어차피 정답이 나와 있는 게임을 왜 시작한 것일까?



그래도 희망이라는 걸 인간들에게 보려고 한 것일까?


창의적이며 숭고한 인간본성을 최악의 순간에도

남아있다는 걸 보고 싶은 것일까!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흥미롭게 보려고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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