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자

데브스

by 토끼

나는 운명론자다. 그러기에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서,

마음 안에서 새로운 운명을 재 창조한다.


드라마 데브스는 이런 나의 화두에 많은 질문과 해답을 반복하는 드라마였다.

지루한 전개라던가 주제의식의 한계 같은 단점이 존재하지만

킬링타임이상의 가치가 있는 드라마였다.



머릿속에서 가끔 드라마의 흔적이 맴돈다.

나의 덕후기질은 어쩌면 이렇게 늘 반복 재생되는지 모른다.

무언가 마음에 한번 들어오면 오래 반복해서 좋아하고, 그 본질을 들여 다 보게 된다.

사람도, 물건도, 음악도, 책도, 나라는 사람 자체도 말이다.

데브스는 이미 결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정론이라고 하면

바꿀 수 없는 숙명이고, 비극적인 결말 쪽에 더 가깝다.

왜냐면 행복을 숙명이라고 얘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데브스의 주인공 포리스트는 운전자이던 와이프에게 전화를 해서 부인을 재촉하다가,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게 된다.



그렇게 해서 드라마의 시작과 끝인 아마야의 데브스라는 회사가 만들어진다.

저세상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딸과 부인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그가

가진 모든 인생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재촉하는 성격 때문에 부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조급한 성격이 아닌 부인의 교통사고는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을까?

이런 질문에는 그 어떤 정답도 없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 우리가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가 아니라.

운명을 받아들이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주 작은 재촉으로 인생의 모든 걸 잃게 된 한 사람.

타임슬림 영화를 보면 하나의 사건을 바꾸면 또 다른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포레스트는 과거로 돌아가 그 사건을 바꾸게 되더라도, 자신의 그런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인이 죽음으로써 겪는 실제적인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이 존재하는 한 결과는 필연적이다. 피해 갈 수가 없다.


당신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그런 말이 있다.

인간에게 운명은 그 어떤 일이 있어 났을 때 결정된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이렇게 그 어떤 일을 수반한다.

원인을 찾아 아무리 고민하고, 그 원인을 제거한다고 해도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결정론은 그 원인을 찾는 오류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이 인과론적 결정론적이라면 포레스트의 성격적 트라우마에 따른

죄책감은 의미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책임소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인간은 진화한다. 만약 아무런

원인이 없는 결정론이라면 무슨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과연 그럴까!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우리는 원인에

질문을 할게 아니라.


결정론에 질문을 해야 한다.


결정되어 있더라도, 우리는 노력하고, 진화를 멈추지 않는 자유의지가

운명 안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물도 때맞춰 주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키웠는데도,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키우던 화초가 죽을 때가 있다.


정성 들여 키운 녀석인데 도대체 왜?.....

화초하나 시들어 죽는데도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을

키울 때의 책임감이다.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고 사랑과 정성을 들였는데,

하나의 생명이 죽어갈 때, 이유를 찾아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을 막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할 때는 결론을 낸다.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조차도

그저 운명겠지. 어쩌겠는가!

식물의 운명도 인간과 같은 처지다.

아마존 어느 열대우림지역에서 싹을 틔우던,

아파트 화단 안에서 자라던, 누구의 집 베란다 화분에서 자라던, 어느 들판에서 자라던지

모래시계의 양과 시간이 정해 져 있다.

부귀영화를 누릴 그 어떤 운을 어떤 사람은 운명에 포함시키는데.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단지 우연일 뿐이다. 운명이란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뀌어지지

않는 것,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로또에 당첨될 운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 로또에 당첨되고도 나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다. 당첨금을 모두 써 버릴 수도 거부해 버릴 수도 있다.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운명도 나의 선택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많은 댓가가 따른다.



생명을 내어 주어야 한다.

생명체들에게 있어, 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운명이란 카테고리 안에 갇힌다.

하지만 생명을 던져 버리면 하나의 생명 탄생도 하나의 우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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