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은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생각이 지나가는 길목에 왠 녀석들이
기대고 서서
지나가는 녀석들을 툭툭치고 붙잡는다.
졸병이 선임병에게 주눅 들 듯이 하나의 생각이
스쳐갈 때 눈치를 살핀다.
생각이 나를 놓아주지 않으면 생각 속에 잡힌다.
그렇게 정체되는 생각들 속에서
상상력은 피
빈곤해지고 아름다움은 늘어져서 생기를 잃고 설렘은 방황한다.
글을 한 줄도 못 쓰는 날은 나를 가만히 놓아둔다.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슬픔과
허무와 결핍이 싸운다.
일상이란 무대에 작품을 올릴 의지가 조금도
없는데 다투고 있는 감정들은
각자의 본분도 잊는다.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만 있는 거야 라는
항의가 빛발 치는데도 손하나 까딱 할 수가 없다.
언어는
사방으로 새어 나와서
여기저기 흘러내리는 경험 해 보지 않은
빛깔의 감정들을 주워 담을
그릇을 도무지 찾지 못한다.
지금의 무력함은 우울도 아니고
권태도 아니고 무기력함도 아니다.
그리움이다.
그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라지자.
그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특별하다고 여겼던 마음까지
없어졌다. 내 글 속에서 새롭게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많은 글친구들은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하지만
글 속에서 하나의 영혼으로
와닿기도 한다.
언어가 가지는 모흐함속에서도
글은 솔직한 내면을 보여 줄 때
서로의 마음은
감정을 담아 각자의 고독을 감지하고 같은 결핍을
공유하면서 위로받고 성숙해진다.
텍스트는 그렇게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글을 읽고
사랑을 느끼고 감동받고 위로도 받지만
좌절도 한다.
내가 가지지 않은 그 세계가 부럽고.
표현할 수 있는 그 여유를 동경하고
섬세함과 부드러움에 뜻밖의
상처를 입는다.
그 어떤 어느 날 마음을 설레게 하던 글을 쓰던 글친구가 절필을 선언하고
사라 졌다. 그 친구에 대해 아는거라곤
고독에 사무친 글들 속 정체성 뿐이다.
나의 이야기를 더 이상 쓸 수가 없을 만큼
혹독한 계절인 인생의 겨울이 찾아오면
무엇을 부여잡고 견디어야 할까?
견디어 나갈 힘이 아무것도 없을 때는 글이라도 써야 한다.
어긋나는 부조리한 일상의 고통과 혼돈을
실존이라는 흰 천에 다가
의미라는 실타래를 풀어 언어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야 한다.
웃음도 즐거움도 없이 침묵하더라도
걸리적거리는 생각들은
발로 차 치우고 언어는 생각이 지나는 자리를 비우고 글은 혼자 묵묵히 가야 한다.
이것이 자기 자신이 되려는 의지를
가진 자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