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두려운건가요?.

어떤 두려움

by 토끼

검은 구슬 같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시츄 한 마리가 한의원 복도계단난간에 줄에 메여 있었다.


아마도 바로 옆 한의원 진료를 보러 간 분이 잠깐 묶어 놓은 것 같았다.

시츄는 꼬리를 흔들면서 날 반겼다.

사람을 좋아하는 순한 강아지였다.

나는 감기기운 때문에 진료를 받으러 한의원 맞은편 내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후 진료를 보고 감기약을 처방받고, 나오는데. 여전히 시츄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시츄 맞은편에 한 중년 여인이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발이 굳어버린 표정이었다.

시츄는 짖지도 않고,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광경을 뭐라 설명하기 어려워 계단을 내려가려다가 멈추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가 날 향해 울음을 터트릴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강아지가 무서워요. 좀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



여자는 떨고 있었다.


" 주인이 한의원 진료받는 거 같은데.

애가 아주 착하고, 짖지도 않는데... 괜찮아요. 제가 잡고 있을 테니

옆으로 살살 비켜서 걸어오세요"


나는 시츄 앞으로 몸을 병풍처럼 세우고 섰다.

하지만 여자는 쉬이 발을 떼지 못하고 서있다.


" 괜찮아요. 절 믿고 지나가셔도 돼요. 하나도 위험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한 발을 내디디다 말고 다시 선다.

결국 나는 한 팔에 쏙 들어오는 시츄를 안았다.


" 이제 괜찮아요. 지나가셔도 돼요."

안전을 확인한 그녀가 빠르게 계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계단밑에 서서 고개를 돌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팔에 안긴 시츄의 부드러운 배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어느새 녀석은 내 손을 핥고 있었다.


시츄를 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창가에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빌딩에서 나와 인파 속에 걸아가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구나.

어떤 트라우마가 있길래 남들은 물고 빨고, 죽고 못 사는

이 예쁜 생명체를 저렇게 무서워하게 됐을까?


강아지에 대한 단순한 공포스러운 경험 때문일까?


다른 공포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파생된 두려움의 한 종류일까?



아주머니를 쫓아가서 손이라도 잡아 줄걸 그랬나!


"저를 믿고 지나가셔도 돼요.

저를 믿으세요."


확신에 차서 했던 이 말이 아주머니에게 어떤 믿음으로 다가왔을까?

그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으면서 또

복기했을까?



시츄가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는 사실은



하지만 아주머니의 세상에서 시츄는 안전하지 않다.

사자나 상어만큼 위협적인 존재다.


꿈에 부풀어 해외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비행기 안이 공포그자체인 사람도

있고. 흥분과 열기 환상 그 자체인 콘서트장이 공포그자체인 사람도 있고.

아늑한 기차 안이 공포그자체인 사람도 있다.


환청이 들리고 귀신이 보이는 그런

세계에 사는 사람도 있다.


아스라한 저녁 해지는 풍경에 죽고 싶어 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괜찮으니 저를 한번 믿어 보실래요. 제가 있는 세상에서는

아무런 위험도 두려움도 없이 평온합니다.

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을까?


시츄는 사랑스럽고, 사자가 무서운 것이 당연한 세상인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강아지가 무서운 것이 당연한 그녀의

세계는

무엇이 다를까?

과연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를 믿고 이 세계로 오세요

라는 말은


강아지는 무섭지 않다는 정답을 그녀에게

강요하는 말과 행동이 아니었을까?



나는 먼저 그녀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를

만나는 게 우선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세계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며 그러기에 당연히

두려우며 두려워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당신은 강아지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가 아니라

먼저 강아지가 두려운 당신의 세상도 존재한다고

깊이 공감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그녀가 스스로 강아지를 두려워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게

잘난 척하면서 나를 믿고 오세요 하는 말보다 더 그녀를 위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사자는 당연히 무섭다고

인정했듯이

시츄를 마주 보고

아주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나도 강아지가 무서운

세계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나를 상상해 본다.


하지만 나는 무심하고, 바쁘며, 이타적이지 않다.

나는 겨우 이런 세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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