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은 1년 만의 만남이었다. 전업주부인 경화와 나는 가끔 둘이서 만나곤 하는데..
셋이서 시간을 맞추는데, 늘 제약을 받는 이유는 싱글이지만 고등학교 교사인 미선 때문이었다.
학교생활, 신앙생활에 올인하느라 그녀는 늘 바빴다. 우리는 딱히 맘이 맞는 친구들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시간이 누적되어 적립되는 오랜 벗이라서 딱히 대화 없이
함께 밥 먹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사이였다.
마리오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고, 미선이 밥을 사겠다고 해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인지 홀 안은 한가했다.
경화와 나는 파스타나 먹을까 하고, 고르고 있는데, 미선이 종업원을 부르더니 덥석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 야 그냥 파스타나 먹자."
미선이 환하게 웃으며 와인까지 함께 주문했다.
" 내가 요즘 부업을 시작했잖아!"
교사가 무슨 부업이냐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있잖아 내가 동료 선생님한테 소개받은 일인데... 이게 아주 건전하고, 생산적이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줄 것 같아서 요즘 공부 많이 하고 있어. 교사 월급 뻔하잖아. 퇴직 후 연금이라고 해봐야 겨우 생활비정도밖에 안되고..."
전업주부인 경화가 흥분해서 물었다.
" 도대체 뭔데? 주식이 대박이라도 났어? 뭐가 그렇게 돈이 된다는 거야?"
나는 매사에 고지식하고, 신중하고, 노력형인 미선이의 뜻밖의 모습에 스테이크가 나왔는데도, 미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 너희들 xxx라고 들어봤어? 암웨이 같은 상품판매 방식인데, 이건 좀 많아 달라,
가입비도 없고, 일정액을 채우거나 하는 제한사항도 없고,......... 물건을 사면 적립되는 방식이라....."
본론을 꺼내기가 무섭게 나는 실망감이 밀려왔다. 경화는 열심히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그래봤자 다단계잖아. 아니 뭔 일이야 미선이가 이런 거에 다 혹해서
넘어가고....
스테이크가 속살을 드러내며, 잘리고, 육즙과 함께 목으로 넘어갈 즈음
스테이크가 공짜가 아니라는 불편함이 몰려왔다. 적당한때 화재를 돌려서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돌직구를 던졌다.
" 난 이런 거 관심 없는 거 알지..." 경화 너 관심 있으면 나중에 둘이 따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오늘은 다른 얘기 하면서 즐겁게 놀자. 우리 오랜만에 만났잖아."
몸몸 베베 꼬면서 어리광 부리듯이 내가 부탁했건만
미선이는 내 얘기에 꿈적하지 않았다.
"야 이건 그런 거 아니라니까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거 같으니까 관심을 갖고서
좀 들어 봐 봐"
내 친구 미선이가 누구인가 내가 애교를 부리고,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도 지할말은
꼭 하고야 마는 사람이다. 경화는 미선이 얘기에 거의 반쯤 설득당하고,
나는 몸을 비스듬히 하고, 딴청을 부리면서 하늘을 보고 주변은 보고,
핸드폰을 보면서, 이 미선이 얘기가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가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1라운드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1라운드의 상황은 이랬다.
완전히 눈을 내리깔고, 한숨을 쉬고 싸늘한 눈빛으로
몸을 뒤고 젖히고, 밥만 먹고 있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나고 와인을 마실 무렵
2라운드의 반전이 일어났다.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사업계획서를 짜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다단계에 끌어들일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 아 내가 조카만 14명이야. 고모가 지금까지 지들한테 해준 게 얼만데 일단 가입해 달라고 하면 바로 오케이지...; 좋은 물건 사는 건데 손해 날건 없다 이거야.
가족이란 게 뭐니 이럴 때 돕고 사는 거지 "
나는 어떤 맥락에서 미선의 설득에 넘어갔을까?
우선 시작은 이랬다.
"가입만 해줘 가입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경화는 미선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이 묘한 분위기에 왠지 나쁜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가 부탁하는데
이거 하나는 들어줘도 될 것 같은 갈등이 밀려왔다.
"그래 가입은 해줄게 그다음은 난 모른다
너 알지 나 이런 거 관심 없는 거"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단계에 빠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운명공동체의 결속력 때문이다.
비엔나소시지처럼 가입하면 밑으로 쭈욱 달리는 우리가 서로 돈을 나누어 먹는 것
난 가만히 있어도 밑에 사람이 달리면 달릴수록 사람들이 물건을
사주기만 하면 나한테 수당이 쌓인다는 구조.
하지만 가입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수당을 받는 조건이 있다.
생애 딱 한번 30만 포인트를 적립하는 조건인데
어쩌면 이게 가입비나 다름없다.
30만 포인트는 오육백만 원어치의 물건을 구입해야 한다.
이쯤 해서 다단계의 민낯이 드러나는데
내가 발목이 잡힌 건 바로 이 달콤한 유혹 때문이다.
이게 이 다단계의 숨은 트릭이며 나처럼 의심 많고 순진하며 난 관심 없어하면서 잘난척하는 사람들이 거의 넘어가는 수법이다.
미선의 먹잇감을 낚아채듯 확신에 차서 말한다.
"야 30만 포인트 이거 네가 쌓을 필요가 없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 포인트를 쌓은 사람들이야.
우리 이 줄 밑으로 포인트 몰아주기 하면 돼
나 좀 있다 에어컨 바꿀 텐데 일단 너한테 몰아주기 할게 5천 포인트 정도 돼 난 벌써 진즉에 30만 포인트 자격 받았으니 이제부터 물건 사는 거는 다 너한테 몰아줄게
너도 자격 갖추고 수당 받아야지"
여기서 아마 반쯤 넘어간다.
바보가 아닌 이상 머리가 굴러간다.
흠 가만히 있어도 윗대가리들이 포인트를 몰아주다는데 안 할 건 없지 수당을 받게 해 준다잖아. 포인트를 몰아주는 방법도 간단했다.
미선밑으로 달리는 회원은 모두 같은 비번을 공유하고, 서로의 포인트를 공유할 수가 있다.
나는 가만히 있고, 물건을 안 사도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데
이거 손 하나가 딱 안 하고 돈 버는 거네.....
그렇게 해서 비스듬히 앉아 무관심하던 나는 표정에 생기가 돌며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 우리는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헤어졌다.
다음날
미선이한테 아침부터 문자가 온다.
규정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앱이며 자질구레한 회원가입까지....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서 문자를 무시하고 출근을 했다.
점심때가 되니 또 미선에게 문자가 온다. 자신이 산 화장품포인트를
나에게 몰아주는 문자였다. 또한 포인트가 높은 순으로 물건 목록을 보낸다.
내 밑으로 가입한 경화가 또 문자를 보낸다.
동네 아주머니가 경화밑으로 가입해서 새끼를 쳤다는 문자였다.
나에게 얻는 포인트를 몰아주고, 그다음은 자신들 차례이니 나도
물건을 조금은 사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준다.
일하는 와중에도, 문자는 빽빽거린다.
돈은 쉽게 벌고 싶지만 이런 번거로움을 견딜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돈이 벌기 싫어서가 아니라 귀차니즘을 장착한 나에게 이 일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막상 조카나 가족들에게 권하려니
입이 떨어지지도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사이 미선이는 하루에 엄청난 문자세례를 퍼부었다.
차곡차고 쌓이는 문자들이 부답스럽기 시작했다.
경화밑으로 새끼를 친 아주머니가 또 동네아주머니를 가입시키고,
일주일 사이 다섯 명이 또 늘었다.
그사이 그녀들이 쌓은 포인트가 나에게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쌓이는 포인트는 공짜가 아니었다.
서서히 나에게도 물건을 강요하는 무언의 압력이 시작됐다.
이것은 직접적이지 않고, 은근하며 , 집요했다.
일주일 내내 이런 생각들과 포인트적립, 가입권유대상자들을
물색하면서, 일상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나도 한번 시도해 보아야 했다.
친한 선배를 점찍었다.
선배와 점심을 먹으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선배 일주일 전 친구가 소개해서 나도 가입했는데.
선배도 회원가입하나 만 해줄래요.?"
" 뭔데..."
"어 물건사서 포인트 쌓는 다단계인데... 그냥 선배는 아무것도 안 하고,
회원가입만 해줘요. 물건구입은 안 해도 상관없어요."
미선이 하던 말 그대로 선배에게 그대로 얘기했는데...
선배의 반응이 싸했다.
션배는 이야기 도중 자세를 바꾸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먼산을 바라보고,
고개를 돌리고, 이 익숙함 느낌은 나의 데자뷔였다.
나는 미선이처럼 뻔뻔하지 못하고,
선배는 나랑 미선이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다.
" 왜요? 가입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나도 친구가 부탁해서
한 거예요"
선배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 솔직히 얘기해 봐 너 지금 이런 거 권유하는 거 아무런 확신도 없고,
쪽팔리지?"
" 쪽팔리긴 뭐가 쪽팔린다고 그래요. 이건 선배가 생각하는 그런
다단계는 아니에요. 그냥 일상에서 필요한 물건들
가볍게 사고, 돈도 벌고, 하는 그런 건전한 다단계라고요."
선배의 침착한 눈빛에 일순간 내가 버벅거리고 있었다.
" 그래 너처럼 깨알재미와 소확행을 누리고, 의미를
찾기 좋아하는 애가 이런 거에 혹했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되네
난 난 너랑 가끔씩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이 늘 특별했거든.
왜냐하면 넌 좀 다른 얘기를 하거든 남들하고 다른
너만의 얘기들이 난 늘 신선해, 남들은 돈얘기 남들 험담
자식얘기 남편얘기 할 때 넌 언제나 니 얘기를 하잖아.
너의 세상으로 들어온 너만의 얘기. 네가 하는 얘기는
누구를 씹어도 좀 다르거든.... 근데 요 일주일 넌
좀 이상해졌어. 뭔가 쫓기는 거 같고, 불안정해 보여.
너 스스로 그런 거 못 느꼈지"
" 아니 내가 뭐 이상해 졌다고 그래요, 일이 좀 바빠서 그런 거지
가입 안 해 줄 거면 하지 마요, 해주고나 잔소리하던가요"
내가 얼굴을 붉히자. 선배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는 밥공기를 다 비웠기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를 피해
사무실로 왔다.
나의 다단계 권유 첫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입을 권유할 상대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또 실패할게 불 보듯 뻔했다. 내 주변에는 온통
시티컬하고, 의심 많은 인간들 밖에 없었다.
나처럼 조금은 맹한 인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분명 그럴 것이다. 이 일을 계속하면
사람들이 돈으로 보이고 가입대상자로 보일 것이다.
일상에서 깨알재미를 찾는 대신 목적을 가지게 되고,
이해관계를 더 따지고, 느리고 재미없는 것들은 시시해질 것이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될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산을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책을 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도 변할 것이다. 삶을 대하는 자세도 변할 것이다.
이렇게 아주 조금씩 나도 모르게 변할 것이다.
미선에게 문자를 보냈다.
" 미선아 미안 나 이거 못하겠다. 오늘 탈퇴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