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세상

길고양이

by 토끼

길고양이 한 마리가 석양을 등지고 담버락 속에 서있는 광경을 마주 보았다.

찰나의 순간

노을 지는 지붕 위로 유유히 서 있던 녀석은 느린 시간 속에 잠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녀석만이 존재했던 시간 우리는 서로의 허무와 외로움을 보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무심히 내려 본다.

" 나비야, 어디 가니. 나도 좀 데려가"

" 야옹"

신이 이승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머무는 시간. 하나의 시간으로 머무는 그 시간.

아름다움으로 머무는 시간. 영원으로 머무는 시간.

그리움으로 머무는 시간. 갈망으로 머무는 시간.

영겁의 과업으로 머무는 시간.


허공을 향해 녀석은 꼬리를 몇 번 흔들더니 , 여유롭고

오만하며 완벽해 보이는 몸동작으로 몸을 잠시 비튼다.

시간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 현자처럼 고개를 들어 잠시 허공을 주시한다.

지금 세상이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듯, 어디라도 상관없다는 듯.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듯, 존재하지 않는 모습으로 천천히 뒤를 보이며

담버락을 넘어 지붕 위로 점프한 뒤 시야 속에서 멀어져 갔다.


고양이의 긴 그림자를 따라 지붕사이로 달려가 본다.

야옹야옹하면서 소리를 내면서 멈추어 선다.

눈앞에 분주히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

마음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바쁜 사람들.

저마다의 모양으로 그림자를 남기며 나를 스쳐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시간 나는 그들과 속도를 맞추려고, 발부둥치며 걸었을까!

그들과 같아지려고, 나의 뾰족한 모서리를 갈고 닦으며 달려왔을까!

뒤쳐져 걷다 보면 혼자였고, 열심히 달려가 보면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었고,

둥글고 동글하게 윤이 나게 모서리를 만들어도 거울 속 나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속도 나의 모양. 나는 지금

왜 이리 아등바등거리고 있는지....

소리새 한 마리가 나를 본채 만채 잡초에게만 눈길을 주면서 노을 속으로 느리게 날아간다.


나비야 나도 좀 데려가

네가 가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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