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아주 작은 일이나 장면하나에서 인생을 바뀔만한 그
어떤 순간의 느낌이 찾아올 때가 있다.
오늘 아침도 어쩌면 그런 날이다. 새벽에 유튜브채널 알고리즘 요약 드라마를 하나 클릭했다.
어메이징스토리 같았다.
시간의 틈새로 과거에서 미래로 2차 세계대전중 비행기 조종사가 현재로 비행기를 타고 추락하는 장면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모자가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었기에 과거 자신이 살고 있던 옛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었는데... 90이 다 된
과거의 아내가 아직 살아 있었다.
80년 전의 집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는 20대에 멈추어 있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변해 버린 세상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집안의 가구들은 80년 전 그대로였다.
탁자 위의 사진들 서랍장들 낡은 소파와 장식장들.
그 장면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서도 작은 틈새가 스며들었다.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 작은 틈새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이상한 생각 하나 가 그다음 스토리를 멈추게 했다.
모니터 화면을 껐다. 드라마를 빠져나와
멍하니 앉아서 마음으로 스며든 생각들의 조각을 맞추고 있었다.
방안에 빼곡하게 정돈 돼 있는 물건들을 쳐다보았다.
이 물건들이 내 사후의 마지만 흔적들이구나!
내가 죽어도 남아있을 흔적들이구나.
너무나 당연해서 내 인생에 한 몸처럼 느껴지는 물건들이 가족처럼 느껴진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싶어서 몇 년 전에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조금 불편해도 물건을 더 이상 들이지 않기로 했다. 집안에 새로운 물건을 들일 때는 목록을 작성해서
서로 품평회를 하는 것이다. 즉 이 물건이 왜 갖고 싶은지를 서로 의논해서 정하는 것이다.
녹즙기를 하나 장만하려고 남편과 의논했다.
" 치아도 안 좋은데.. 건강을 생각해서 녹즙기를 하나 사야겠어"
" 그래, 그럼 매일 녹즙을 해서 마실자신이 있어?"
" 아마도. 그럴걸, "
" 몇 달이나 지속해서 해 먹을 거 같은데... 믹서기도 주방구석에서 먼지가 쌓여 있잖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길어야 한 달 열심히 먹다 말 것이다. 그래서 얻는 포기했다.
에어프라이도 한 달 열심히 쓰다가 베란다 뒤편에 처박아 두었다. 미니 오븐도 몇 년째 방치돼 있다. 가공식품을 끊은 뒤로
전자레인지를 언제 돌렸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장식용으로 진열돼 있다.
쓰지도 않는 물건인데. 버리지도 못한다. 이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인지 물건들이 사는 곳인지 가끔은
헷갈린다. 매일매일 장을 보고 나서 주워오는 일회용품들을 버리지 않으면 집안은
내가 발들일 공간이 없어진다. 집이란 청소나 정리정돈을 하지 않으면 그저 콘크리트 벽돌 안의 쓰레기장이 된다.
매일매일 쓸고 닦고, 매만져 주어야지 마이 홈이라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작년에 유럽의 오래된 성들이나 집을 소개하는 유튜브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마지막주인이 떠나고, 재산분쟁이나 제각각의 이유로 폐가가 되어가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집안구석구석을 소개하는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을 훌쩍 넘긴다. 거미줄이 끼고, 지붕이 내려앉고, 곰팡이가 천장 곧 곧을 덮고 있지만 옷장의 옷들과 책들 사진들, 주방에는 먹다 남은 쨈들이 빼곡하고, 화장실에는 반쯤 쓰다만 비누가 말라비틀어져 있다.
우편물들 빛바랜 편지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살아있는 나날의 흔적들을 상상하게 한다.
벽에는 살아생전 언제나 마주 보았던 그림들이 시간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런 집들을 보면서 그들의 행복했던 한때를 상상하고, 마지막 죽음을 떠 울렸다.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내 인생의 모든 서사를 담고 있지만 그 물건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만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다.
주인이 죽은 집의 그 소중한 물건들을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쓰레기라면 수거해 가기라도 할 텐데..
쓰레기축에도 못 끼는 물건들이 폐가 안에서 썩지도 못하고, 주인의 인생을 대변해 주고 있다.
책장에 빼곡히 정렬된 책들.
없으면 불편한 일상용품들.
집이라는 공간만이 나를 증명해 주는 어떤 장소처럼 느껴졌다.
평생 내 몸을 누이고 쉴 곳을 위해 일을 하고 그 집안에 들여놓을 물건들을 사기 위해 일을 하고,
그곳에서 자식들이 자라고 다 큰 자식들이 떠나면 혼자 덩그러니 그 집에 남아서
또 물건들과 함께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
이탈리아에서 어느 장인이 만들었다던 크리스털 인형에 먼지가 앉아 있다.
이제는 공예품 하나하나 닦는 것도 귀찮다. 이것들은 더 이상 광이 나지도 않는다.
장식장위에 놓인 인형이며, 프라하모델들. 목각인형들. 이젠 이쁘지도 않다.
이것들을 쓸데없이 왜 이렇게 많이 사들인 걸까.
언제부터 이것들은 내 마음에서 빛을 잃었을까.
그저 먼지를 닦아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됐을까
내가 게을러터 진 인간이 된 이유일까!
하지만 게으른 탓에
물건을 버리지도 못해서,
결혼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20년이 넘은 골동품 같은 가구들이
나처럼 이곳저곳이 삐걱거린 지 오래다.
문하나가 요즘은 나사가 느슨해져 삐걱거린다. 열 때마다. 괜히 욕만 해댄다.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도 않다.
나와 평생을 같이 한 물건들도 있다.
투탕카멘이 남긴 무덤의 물건처럼 나와 묻히진 않겠지만
이 물건들과 함께 마지막생이 끝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