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모른 채로 누군가에게 삭제당하기도 하고,
이유를 모른 채로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했던 과거.
이유를 찾기 위해 상대를 괴롭히고, 누군가를 수소문하고, 그 이유를 찾아 고군분투한 시간들은
그 이유 속에 먹혀버린 시간들이다.
이유를 안다고 나에게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의 문을 열 수는 없었을 테고,
이유를 안다고 떠나버린 사람이 돌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마음으로부터 거부하는 것은 이유를 모르기에 더욱 괴롭고, 이유를 안다면 더 괴롭다.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은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이 저당 잡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면 그 이유를 찾아 헤매다 오히려 지금의 현재를 만끽하지 못하고,
노이로제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이유를 찾아서 올바른 치료를 받는다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은 의지력이 아니다. 집착이다.
오히려 지금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몸을 더 악화시킨다. 하지만 이유 없는 병은 없고, 이유 없는 행위는 없다.
반드시 이유는 있다. 이유가 있어서 병이 생기고,
이유가 있어 그 사람이 나를 떠나고 나를 거부했다고. 하지만 여기서 이유는
운명론적인 이유이다. 이유를 찾아서 해결할 필요도 해결되지도 않는 바로 그런 이유가 우리의
인생에는 많이 있다.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마음의 형태와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이유 없이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의 잔상들이다.
과거의 감정들이 만들어 놓은 습관이 나를 지배한다.
아니 왜 그 사람 요즘 안 보이는 거야?
너 몰랐니 그 사람 남편이 암에 걸렸데...
아니 왜 연락을 해도 전화도 안 받는 거야.
와이프가 자살을 했다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지 왜 나한테만 쌀쌀맞은 거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아야겠어.
라고 따져 물으면 해결되는 일은 이유 없음이 아니다.
이유 없음은 상대의 행동과 태도가 아니다.. 바로 내 안에서의 힘듬이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감당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타인들을 마주할 힘조차
소진해 버린다.
우리의 몸이 이유 없이 아픈 이유조차도, 그렇다. 몸이 아프면 몸은 치열하게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자가치료 시스템을 가동할 것이다. 세포들은 심지어 자살까지 하면서 하나의 세포들을
살리고, 균형을 맞추면서 면역체계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마음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못하게 될까 봐, 빨리 낮고 싶고, 불안해서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면서 몸을 재촉한다.
기다려 주지 않고 온갖 검사를 하고,, 약을 투입하고, 찢고, 도려내고, 불안초조하게 몸을 괴롭힌다.
8년 전 나를 거부하고, 상처 주고, 마음을 닫아버린 그 사람은 그동안 평안하게 잘 살고 있었을까?
그녀는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을 감수하고 라도 그녀는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것은 내가 싫은 이유중 단점도 있겠지만
나의 장점이 더 크게 자신의 결핍을
건드리는 무기가 되었다.
오랜 시간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는 자책에 시달리면서 그 이유를 찾지 못해 괴로웠다.
하지만 그 이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존재자체의 이유였다.
그녀는 내 존재자체가 스스로에게
힘듬이었다.
이유를 찾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라는 존재가 지구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안 되는 거 나도 알기 때문에, 난 너로부터 마음을 닫고 나를 삭제하기로 했어."
나에게 힘든 계절 겨울이 찾아오면,
나 또한 나를 타인들로부터 삭제시킬 것이다.
내가 버티는 힘이 그것밖에 없는 최선의 선택이다.
아주 가끔씩 나를 아프게 했던 그녀를 떠올릴 때면 스스로를 삭제시켜,
견디었을 시간들을 생각한다.
나는 이유를 찾아 내가 편해지려고 했다.
단지 그것뿐이다. 내가 이유를 찾은 이유는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이유는 그렇게 이기적이다.
그래서 이유를 이유 없음으로 끌어안는다.
스스로에게도 이유 없음으로 무심해져서 조금은 편안해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