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시절

by 토끼

도를 아십니까?

점심 혼밥을 하고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구로 사거리를 지나가는데 인파들 속 한 빌딩 앞에서 어딘지 모르게 초조하고, 조금은 애틋한 표정의

젊은 남자와 중년의 여자가 50미터 간격으로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저기요"


그들은 번번이 말을 섞어보지도 못하고 외면당한다.


저기요 인상이 좋아 보이시네요. 말도 꺼내기가 무섭게

개무시를 당한다.



내 앞의 한 무리가 빠르게 지나쳐가면서 그들은 한 사람도 발길을 세우지 못한다.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본다.


조금 왜소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젊은 남자는

표정이 단순하며 강해 보이고.



40대 중반의 여자는 조금 권위주의적이며

야무진 입매를 가졌다.


그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한 번도 그들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측은함이 밀려와 걸음을 늦춘다.


잠깐 눈을 마주치고 몇 마디라도 들어주자고 맘먹고

그들의 표적 안으로 천천히 먹이가 되어줄 만반의 준비를 하며

그들과 가까워 지자 슬로 모션으로 걸었다.



어라 이게 웬일

줘도 안 먹는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를 무시한다.


사무실 쪽으로 직진해서 걷다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묘한 승부욕이 발동했다.


옆건물 모퉁이를 돌아 다시 내가 왔던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들을 다시 마주하고, 천천히 걷는다.


한번 더 시도하자.

다시 리플레이를 한다.



인파들 속에 끼어 다시 걸음을 늦추고

그들 사이로 바싹 붙는다.


바로 옆까지 중년의 여자옆을 지나친다.


투명인간 처럼.


통과.


젊은 남자 옆에서 이번에는 멈추듯이 걷는다.

이번에도 거들 떠도 안 본다.



청년과 여자는 그사이도 열심히 사람들에게 입질을 한다. 하지만 또 번번이 무시당한다.


와 이게 뭐지 자존심 뭉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일찍이 4차원 이란 소리를 가끔 듣는 이유는 이상한데 발동이

걸리면 일을 크게 만드는 엉뚱함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나를 태우지 않고 가는 버스에 너무 화가 나서 택시를 잡아타고 버스를 20분이나 추격해서 기어이 그 버스를 탄 적이 있을 만큼 뭔가 하나에 발동이 걸리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그들에게 연달아 까이고 다시 가던 길을 멈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거 늘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의 표적이 됐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그런 기억이 없다.

이건 뭐지 싶다가 무릎을 탁 쳤다.


아!


내가 이제 늙어서 더 이상 그들의 포섭대상이 아니구나....


이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그들에게 다가가 한번 따질까 생각하다.

씁쓸하게 잠시 웃었다.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쓸모없음의 미학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들은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


일이 하기 싫어져서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여까지가 논픽션이다.


나머지 이야기를 하나 상상해 낸다.

쫌 유치하지만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 지금 꺼낼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다.


아!


내가 이제 늙어서 더 이상 그들의 포섭대상이 아니구나....

이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그들에게 다가가 한번 따질까 생각하다.

멈춘다.


요기까지가 같은 얘기.

그래서 나머지 유치한 얘기를 쓴다.


사무실로 가려다가 다시 그들을 본다.

서툰 거야 멍청한 거야? 어째 단 한 명도

말 붙이는데 실패하는 거지.

그래 한 번이라도 성공하는 꼴이라도 보고 가자.



세상인심도 참. 이대로 못 가지.

나는 이상한 내기를 하나 한다.


남자가 행인을 붙들고 3분 이라도 이야기하는 데 성공하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리라 맘먹고


젊은 남자 뒤에 섰다.



"저기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아저씨를 붙잡으려 했지만 거절당한다.


모두 젊은 사람들이다.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다. 난 나이에세 제외된 거다.



그때

30대로 보이는 여자를

잡는 데 성공했다.


"저기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여자가 멈추어 선다.


"정말 인상이 좋으시네요.

혹시 혈액형이 어떻게 되시죠?"



이건 뭐지 혈액형이라니

도를 아십니까 가 아닌가?

신종 수법인가?

이거 완전 반전이네


그들에게 바짝 다가가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하다가 침착하게 대답한다.

"오형인데요"


"아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요

이제 가셔도 됩니다."

남자가 정중하게 여자 인사를 하고 시선을 거두자

뒤돌아서려던 여자가 남자에게 다시 묻는다.



"혹시 무슨 이유로 물으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들이 잠시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 50미터 떨어져 있던 중년의 여자가 갑자기

상기된 표정으로 남자에게 달려온다.


"혈액형을 찾은 거야? 이분이 RH마이너스 혈액형이야. 헌혈해 주신다니.... 아이고 네 동생 이제 살았다.?"


"아냐 엄마 이분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젊은 여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환한 미소를 띤다.

아! 제가 아는 친구 중에 RH마이너스피가

있어요.

한번 전화해 볼까요?"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일순간 환호를 질렀다.

여자가 친구에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리고

뒤에 서 있는던 나는

눈시울이 불거진채 사무실로

향했다.



어린시절

Tv를 보다보면

가끔 자막으로

피를 구한다는

방송이 생각난다


그 시절 피는 사람을 살리는 구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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