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으세요?

고독

by 토끼

일 때문에 가끔 문자만 주고받던 사람과 오늘 전화

통화를 했다. 20분의 통화 중에 일이야기는 단 오분으로 끝내고,

나머지는 사적인 대화로 넘어갔는데.

그는 자신의 약력들을 알뜰하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여유로운 경제적 위치와 여건 경제적 상황도 빼놓지 않았다.


그를 인터뷰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통화 내내 이야기를 끝낼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우리의 일속에 그의 경제적 환경과 이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 홍보가 일의 성과에 영향을 미칠일도 없었는데.

궁금 하지도 않은 그의 인생사를 들어야만 했다.

다행히 얘기를 끊어야 할 타이밍을 잡아 우리의 얘기는 끝났다.


이력서 하나로 끝날일을 15분 동안 열심히 경청한 셈이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서도 아주 가끔씩 괜히 전화

통화를 했나 싶은 사람들이 있다.

전화라는 특성상 계속 대화가 이어져야 하는 경우가 힘들어서

전화통화에서는 늘 긴장상태가 된다. 왜냐하면

글로써 정말 꼭 한번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글과 사람들을 매치시켜서 내가 상상해 놓은 무형의 어떤 모습에서

실제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직관력이 강해서 첫 몇 마디에서 이 사람과 내가 어떤 필이 통할 지를

금방 몸이 감지해 낸다. 그럴 때는 오랫동안 그 사람과의 대화가

머릿속에 남아서 맴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을 길게 만났던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전화로 대화를 하지 않고, 밴드 초창기에 글로만 소통울 하던

나의 팬이라는 여자분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글도 잘 쓰시고, 아주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계신 분이셨기에 설렘도 있고

기대감도 있어 꼭 만나보고 싶었다.


밴드초기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녀를 만나 오후 내내 함께 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리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다.

긍정의 아이콘인 그녀의 이야기를 몇 시간째 들어주는 일은 힘들었다.

그녀를 위해 내 오후시간을 다 빼놓았고, 그녀가 내 온라인 첫

만남의 친구였고, 나에게 넘치리만큼의 애정을 주었고 그녀가 나와의 시간을

너무나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나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녀가 했던 이야기들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행복한 가정의 깨알 같은 즐거움의 퍼레이드였다.

고단한 시집살이였지만 그녀 특유의 긍정의 힘으로 시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고,

자신의 결점을 헤쳐 나와 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자상하고 잘난 남편덕에

자신은 지금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런 질문을 했다.

" 너도 님처럼 그런 글을 한번 써보고 싶은 데, 어떻게 하면 그런 글이 써지나요?"

라고 그녀가 질문했을 때 난 아주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 안 좋은 얘기를 쓰세요. 남편을 삐딱하게 보고 자신의 비참한 결혼생활을

상기시키고, 남편을 의심하고, 자식들의 이기적인 면을 보고,..."


그때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기억한다.


그녀는 삶이 행복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카카오 스토리에는 언제나 요리영상이 뜨고 요리레시피와 함께 요리이야기가

전부이다. 가끔은 그녀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면 아무런 즐거움이 없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 한 번으로 끝이 났고, 그녀와의 다음 약속을 차일피일

몇 번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관계가 떨어져 나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까?


밥 잘 사주는 사람이요.

유머감각이 좋아 재미있는 사람이요.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요.

아는 것이 많아 다양한 이야기의 경험을 해 주는 사람이요.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지금 당신에게 관심 있는 관심사가 무엇이며,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데,

그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그걸 질문해 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나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보다

지금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과몰입해서 내가 있는 것도 잊은 채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함께 대화하다가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면서 긴 시간 서로 없는 듯이 함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앞으로 무얼 할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보다.

지금 무얼 하며 놀지를 더 궁금해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한가정의 아내이며, 엄마이며, 딸이며, 형제가 아닌

그냥 나라는 한 사람의 실존으로 궁금해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이야기에 과몰입해서 들어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자신의 행복도 불행처럼 이야기하고

불행도 행복처럼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행복이 뭐고 불행도 뭔지

몰라 아리송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자신의 생각이 어떤지 꼬치꼬치 물어보는데... 내 대답이 맘에 들지 않지만

내가 어떤 답을 해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런 사람은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도 있고, 아마 과거에 이미 만났던 사람이기도 하고,

앞으로 영영 만나지 못할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나의 욕망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런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조난자가 배구공 위에 눈 코입을 그리고,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배구공과 대화를 나눈다.

" 우리 이제 무슨 얘기를 할까? 오늘은 하늘이 참 푸르다. 난 오늘 사랑하는 내 연인이 그립다.

오늘은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다. 난 앞으로 살아서 여길 나갈 수 있을까? 친구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다... 배구공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는

불행도 행복도 욕망도, 없다. 오로지 배구공 친구하나뿐이니 그 어떤 갈망도 없다.


그저 내 마음 하나만 툭 내어 놓으면 된다.


하지만 난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이렇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한정되어 있을까?

나라는 복잡한 한 사람이 스스로 나 다움을 찾아가면서

점점 더 사람들 속에서 고독해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만나고 싶은 사람의 범위를 줄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의 바람을 적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을 정하고,

나는 정말 사람을 만나고 싶고,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건 핑계일 뿐이고, 스스로 혼자가 되기 위해서 아니면 혼자가 더 편해서 점점 사람을 만나는 그 범위를 좁혀 간는 건 아닐까!

문득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은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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