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 Apr 13. 2024

고백한 사랑은  애틋하다

고백

작년 연말 지금은 유령회원으로 가입만 돼 있는 나의 첫 밴드의 리더에게서 뜬금없는 문자가 왔었다.

" 언니 저 새벽이에요. 제가 사정상 밴드를 없애기로 했는데.. 마지막으로 모임을 한번 가질까 해서요"

라는 문자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밴드활동을 언제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날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이 밴드로 없애겠다는 이야기보다 더  귀가 번쩍 뜨였다.


" 왜 회원이 5천 명이나 되는 밴드를 폭파해, 그냥 리더만 잠시 쉬면 되는 거 아냐? "

" 그냥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요."


내 첫 밴드에서 활동을 쉰 지가 5년 정도 됐다. 중간에 아주 잠깐씩 포스팅만 던지고 댓글을커녕 글도

잘 읽지 않았기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나는 이곳 첫 밴드에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글을 손에 놓지 않고 있다.

작년에 연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고 오프 나갈 생각이 별로 없었기에  송별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며칠 후 밴드에 희소식이 날아왔다.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만류로 밴드를 없애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반갑고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몰려왔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 언니 서울에서 몇몇 분들과 모이기로 했는데.. 시간 되면 오세요. 부담가지시지는 말고요. 편하게 결정하세요."라는 문자를 받고

드디어 오프 나갈 결심을 했다.  아 내가 드디어 오프를 나가는구나! 진짜 6년 만에 처음으로 오프를 나가게 됐다.

오프모임에는  6명의 사람이 나왔다.


최근 6년간 온라인을 활동을 하면서 지인들과 함께하는 모임 외에는 오프를 한 적이 없는데...

 정말 이 이상하고도, 특이했던 이 모임 후 며칠이 지났는데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날 모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충격적이거나 마치 무슨 고백 같은 이야기들이라서,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던 처음 본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개인사를 솔직하게 꺼낼 수 있었는지는

아마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진심 어린 눈빛과, 공감 이라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누구 사연 없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는  말이 이토록 실감 날 수가 없었다.

해맑게 인사를   서로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마치고, 그렇게 어색하게 시작 한 자리였는데...

가장 어리고 예쁜

구김살이 라고 하나 없는 친구가

"전 지금 암투병 중이예요 라며 자기  얘기를 꺼냈다."

 자신의 불행했던 개인사를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하면서, 카페 안이 무슨 고백의 성토장이 돼버린 것이다.


바람난 부인의 이야기, 이혼한 이야기, 고부갈등으로 자살직전까지 간 이야기. 시한부 암선고를 받고 아직도

투병 중인 이야기..

와 이런 센 이야기 앞에 난 명함도 못 내밀고,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야 했다.


이 사람들은 오늘 무슨 고백 같은 걸 하려고 이 모임에 나온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민낯을  그대로 내보이며 이야기에 모두 집중하게 만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전개에 6명 모두 놀라고 있었지만 이야기는 점점 더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무려 6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헤어지면서 서로 아무도 다음만남을 약속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인지 모른다.


다시 밴드라는 온라인에서 볼 테지만,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그런 사람으로만 기억될지 모른다.


자신의 치부나 상처가 서로 아무에게도 약점이 될 수없다는 신뢰가 서로에게 생겼던 이상한 만남이었다.

무슨 인간시장 같은 다큐를 찍으러 나온 것도 아닌데..

아무 기대도 없었고, 단지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던 옛 친구를 만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나갔다가 망망대해 바다 위에서

모두 함께 풍랑을 만나 헤엄쳐 나온 기분을 안고 집으로 왔다.


며칠간 6명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이야기하고, 평안해졌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자신을 불행한 스토리 속의 주인공으로 자신이 이야기되었을까?

매일 글 속에서, 이야기되는 나의 이야기만큼 그들도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나의 고백은 자신의 선택적 책임을 전재로 한다. 내  이야기가  내입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의 마음에

안착을 하고, 어떤 결과로 돌아오더라도 나는 그 책임을 질 것이다라는. 온전한 자기 수용이다.


올 한 해는 정말 나에게 특별한 한 해다. 나도 고백이라는 걸 제법 했던 것 같다.

지금껏 내가 고수해 오던  견고해져 있던  룰들을 많이 깼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못했을 일들을 많이 시도했다.  내 감정의 주인이 되기 위해 빗장에 가두어 두었던  감정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실행하고,  구체적인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마음을

먼저 표현하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순수하게 다가오는 것들에게

마음의 문을 먼저 열기.  후회가 뻔히 보이는 일을 뒤에 일어날 후유 중을 알면서도 실행하기.  최고로 기쁜 순간에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  두 배의 고통을 감수하고 그 어떤 하나를 지켜내기.   내 일상을 뒤흔드는 것들과 거리두기.

나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나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몰입하기.

 어쩌면 내 인생에 화양연화 같은 감정을 즐겼다.

그만큼 후유증도 컸다. 아마도 올 한 해는 긴 한 해가 될 것만 같다. 이제 봄의 문턱인데.. 난 벌써 겨울을 맞이하는

느낌만큼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그것은 일상에 있어 어디를 다녀오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런 경험이 아니라. 내가 주도하는 그런 시간의 향유에서 비롯된 일상이라 더 큰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운명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선택했던 일중에 가장 두렵고, 설레는 일중하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하는 일이다.

" 나는 네가 맘에 든다. 우리 친구 할래"

"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군요 당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데 나를 받아줄 수 있나요?"

" 우리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습니다."

" 당신의 삶 속에서 내가 조금은 우선순위가 되고 싶습니다."

"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고백의 단어는 무궁무진 하지만 본질은 언제나 지금 나의 관심을 온통 당신뿐입니다라고 시작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다수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고백을 애타게 기다리며 연애를 하고 있다.

 이것은  남녀가 연애를 함에 있어  하나의 완성된 주기율표 같은 룰이었다.

자기를 많이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야지 여자는 행복할 수가 있다.라는 얘기는 실패하지 않는 연애관 같았다.

 하지만  남자의 끊질긴 구애 끝에  여자를 진짜로 많이 좋아해 주었던 남자와 헤어질 때  여자의 이별의 상처는 두 배는 더 크다.  다시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난다는 고통과 함께, 그것은 마치

지구상에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하나가 사라져 없어지는 상실감이 함께 온다.  내가 선택받았던 사람이 나를 거부했다는 노여움까지 한몫한다.


나는 너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네가 나를 끊질기게 쫓아다녀서 그냥 사람하나 살리는 셈 치고, 못 이겨 연애를 시작했는데....

이별의 순간이 오면 주객이 전도된 연애도 주변에 많이 보게 된다.  아무런 감정이 없던 사람의 넘치는 사랑에 감동받아 결혼했는데..

막상 사랑에 골인하고, 결혼하고, 보니 남자가 더 이상 각별한 사랑은 주지 않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주만 하고 있을 때.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온도차가 너무 크고, 어장 안의 물고기가 되면,   사랑이라는 덧에 갇힌 신세가 되어 있다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수동적인 사랑은 상대의 마음에 따라 언제나 이리저리 흔들리고, 조바심을 내게 하고, 밀당을 하게 하고, 에너지를 많이 쏟게 된다.

물론 능동적인 사랑도 결국 사랑에 골인하고 나서부터는 똑같은 사랑의 레이스를 밟아가게 되지만   하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이별 후에

미지가 조금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내가 선택한 사랑은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불태우고, 한순간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고,

몰입했기 때문에,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는다. 어쩌면 스스로 더 깊이 빠지는 게 두려워 내가 살기 위해

이별을 택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모든 걸 불태웠던 사랑 후에 오는 상실의 아픔은 조금 농도가 다르다.

후회도 없고, 그 사랑의 상흔은   불완전 연소가 아니었기에.. 숫검탱이가 된다고 해도.  미움이나 노여움 따위가 없다.

그저 그립고,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갈망만의 가득 남는다.  이런 갈망은 나를 상처 입히지 않는다.  

능동적인 사랑의 끝은 서로의 사랑의 온도차를 선명하게 느낄 때이다.

사랑을 향해 돗을 올리고, 선장이 되어 남태평양 한가운데로, 항해를 떠났지만,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는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걸 선명하게 느낄 때.   이 사랑의 레이스는 불행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계속되는 폭풍우를 만나고, 배가 하나둘 부서지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 항해를 할 수는 없다.

배와 함께 침몰되기 전 배를 버려야 한다.  아니면 배를 버리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선택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바닷속으로 뛰어든다고, 죽지는 않는다. 무사히 헤엄쳐 나오다 보면 이별의 아픔 따위는 잊는다.

오히려 하나의 긴 오지를 탐험하고 온 원정대만큼 오지 경험이 늘어난다. 아 찬란하고, 아름다운 미지의 땅을 끝내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하나의 모험처럼 아름답게 남아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깃발을 꽂을 수가 없다.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깃발을 꽂았다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인간은 없다.  하나의 마음에 가 닿으려고, 먼저 고백하고,

손잡아 주고,

노력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같이 느껴주고, 아파해주었던  기특했던 내가 남는다.

뼈만 앙상한 청새치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사랑도 하나의  열정과 모험의 여정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빈손이다. 차라리 소설백경의 외다리 선장 에이허브처럼  고독한 인생 외로운 죽음을 가장 깊은 슬픔 안에서

가장 큰 위대함을  느끼며,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그런 자연과, 정복되지 않은 사랑의 실체. 고래를 향해

 그런 선택된 사랑 속에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것이 진짜 사랑인지 모른다.

이런 능동적인 사랑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인생을 사랑하기 위한 풍요로움이다.


짝사랑보다는 고백한 사랑이 더 애틋하고, 고백한 사랑보다 , 실패한 사랑이 더 애틋하지만.

애틋한 만큼 더 아름답다. 실패한 사랑의 끝에는 또 무엇이 기다릴지 모른다.

마음속에 간절한 고백이든 가벼운 산들바람 같은 고백이든  그 어떤 고백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 닿으면

 하나의 새싹기 파릇하게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채 자라지도 못한 어린 나무는 애정이 식어버리면,

소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예 뽑아버리거나, 썩어가게 만들어 버리고,  돌보지 않는다.


그 어떤 모진 이별의 아픔을 남긴 사랑이라도 그 새싹은 나의  것으로 남겨두고 간다.

내 영토의 지분은 나에게 있고, 내 나무들이다. 굳이 뽑고 씨를 말릴 이유가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 침묵을 이해해 주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