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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Apr 23. 2024

기생수 참 심플한 이야기

나의 정체성

지구는 모기의 번식을 위한 서식지이다.

바퀴벌레의 서식지이다.

개미들의 서식지이다. 아니 만물의 영장 인간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다스리라고 하나님이

준 영토이다. 이렇게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지구는 지금 위험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식량난에 처하게 되고, 지구의 물도 바닥이 날지 모른다.


자연이 황폐화되고 공기는 오염돼서,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이 살지 못하는

행성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지구를 소멸시키는 바이러스가 되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숲이 되살아 나고,  지구의 다른 생명체가

다시 늘어나 지구는 다시 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타노스는 그렇게 지구의 생존을 위한

균형을 위해 인간을 학살한다.


인간은 지구에 독이 되고, 중화제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인간사냥이다.

어느 날 지구에 떨어진 정체불명의 기생 생물들. 그들은 이렇게

인간의 개체수를 줄여 나가게 된다. 마치 신이 이것을 의도한 것처럼.......

주말에 넷플릭스 한국판  기생수를 정주행 했다.


20세기말 등장한  만화책 기생수는 잔인하기도 했지만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와 인간의 뇌를 먹고,  인간을 포식한다는 내용이었다.


만화 기생수가 수작인 이유는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 기생 생물과

기생생물의 시각에서 바라본 바라본 인간을 동시에 다루고 있으면서

자신의 몸으로 들어과 뇌를 파먹는 기생생물과의 사투에서 인간의 뇌를

점령하지 못한 기생생물은 인간의 손에서만 기생하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능력을 반반씩 나누어가지게 되면서,

기생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주인공을 통해 과연 존재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과연 생명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은 아니다. 우주에서 하나의 생명체가 내려와서 인간의 모습을 살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들의 다른 모습이라면, 그들은 괴물이 된다.

왜 인간의 모습을 해야지만 인간과 공존이 가능한가!

개 돼지의 모습이라면 안된단 말인가!  결국 작가의 상상력은

그러면 인간의 뇌를 파먹고, 인간의 행세를 하면서 사는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었다.

기생생물과 인간은 서로의 생존을 걸고, 싸운다.

그 과정에서, 기생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주인공은 당연히 인간 편에서 싸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 생명의 무게는 누가 정하나" 기생생물은 인간에게 적이지만 지구에 태어난

또 다른 생명체이다. 곰과 돼지처럼 그들도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인간에게 사육당할 이유는 없다.

기생생물은 말한다.

인간은 원래 서로 죽여야 하는데 그런 본능을 억누르고 있으며, 본능대로 서로 죽여야지만

균형이 유지되고, 인류가 살고, 지구가 산다고 이야기한다.

기생생물은 억눌린 인간의 본능을 일깨워주기 위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기생생물과 인간 중에 누가 기생생물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

한국드라마 기생수는 원작을 관통했던 철학적 물음을 전달하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

기생수들의 본질은 인간들을 사냥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에 있다.


드라마와 원작이 다른 점은 원작은 많은 주제를 담고 있는데 비해

 드라마는 개인의 존재이유에 대한 주제의식이 강하다.  

어쩌면 이것이 K 드라마의 강점인지 모른다. 원작과 차별성을 둔 점은

바로 주인공의 강한 대비이다.

만화 주인공 신이치는 기생생물과의 동기화로 인해  초인적  능력을 가지게 되고

 인간의 감정에 둔감해지고, 울고 싶은데 눈물도 안나는 인간성이 약해지지만.


드라마 정수인은 기생생물로 인해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해지고

무서워지며, 더더욱 나약하고, 스스로를 비하하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불안에 더 취약한 존재가 된다.


만화의 신이치는 평범한 가정의 소년이지만

정수인은 학대받고, 버림받은 가정의 소녀이다. 그녀는 자신이 불행을 몰고 오는 비극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마트에서 실랑이를 벌인 범죄자의 표적이 되어 집에 밤길에서 황량한 벌판에서

칼에 질리고 죽어가는 와중에,  기생생물이 그녀의 몸에 들어온다.


기생생물의 이름은 하이디다.  하이디는 그녀의 뇌를 먹어야 하는데, 그녀의 신체가 죽어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세포를 수인이를 살리는데 집중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만다. 그러는 과정에서 수인이의 신체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수인이가 위험할 때는 아주 잠깐씩 기생생물인 자신이 된다.

기생생물이 인간 속에 살면서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시작된다.

신이치는 자신의 손에 기생하는 기생생물과 대화도 가능하지만,

수인이는 자신이 깨어있을 때는 하이디를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편지로만 소통이 가능하다. 하이디가 나타나면 수인이는 사라진다.


이런 차별성이 드라마를 더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서로의 자아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만날 수가 없는 이 로맨틱한 관계설정이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받지 못해서 타인들에게 아무 관심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수인이는 자신이 괴물이지만 자신을 믿고 지켜주려는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고, 그런 수인의 몸에서 기생하는

기생생물은 수인의 이런 변화에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수인이는 겁 많고, 냐약하며, 소심하고, 세상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다.

이런

수인이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죽을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자 하이디는

수인이를 도와 기생생물과 맞서는 인간에게 말한다.


" 지금 이 여자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의 생존이 먼저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무모하단 말인가"


그러자 수인과 함께 싸우는 남자가 말한다.

" 수인이가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야,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야지만 그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거든. "


드라마 기생수는 참 심플한 내용으로 다가왔다.

 세상과 자신을 혐오하는 한 여자가  기생생물과의

공존으로 인해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기생생물이 인간을 사냥하는 잔인함이 내게는 가볍고,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와 하이디의 동거가 매력적이고 짜릿했다.


너라는 인간의 몸에 들어와서 난 정말 행운이야.

넌 혼자가 아니야 라는 따뜻한 위로를

기생생물이 편지로 수인에게

전한다.

인간사냥이라는 무섭고 잔인한

장면들이  이런 주제속에 가볍게

지나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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