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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사과

by 토끼

거리에서 큰소리로 싸우는 두 남자를 목격했다.

무슨 이유로 시비가 붙었는지 궁금해서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들은 핏대를 높여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만 같다.

가까이 다가가 서로의 표정을 보았다.

이미 이성을 잃어 마치 짐승이 으르렁대는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왜 나를 툭 치고 지나가놓고서 사과를 안 하는 지나가느냐라고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그들의 싸움의 원인이 지극히

우발적이며 사소하지만 신경을 자극하는 원인임에 틀림없었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런 신체적 접촉으로 인한

수치심 내지는 모욕으로 인해 싸움이 난 경우는 대부분

격렬한 폭력사태로 이어질 수가 있다. 하지만 다행히 주변인들의 만류로 이

싸움 속 두 남자는 흥분상태에서 이성적으로 돌아오고 서로 사과를 하고 나서

각자 서로 등을 보이며 헤어졌다.


보통의 경우 신체적 접촉이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가 튀어나온다.

인파가 붐비는 인사동이나, 명동거리를 걷다 보면 외국인들이 많은데,

가끔씩 아주 작은 신체적스침만으로도 나지막하게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익스큐즈미" 그들은 마치 버튼을 누르듯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사과를 먼저 해서 손해 나는 일은 일상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사과는 사회생활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한 일종의 매너에 속하기도 한다.


부부싸움에 있어서의 사과는 가끔은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는

경우가 있어서, 남편은 언제나 나의 사과를 자신의 잔소리 성토장으로 만드는

습관이 있다. 내가 사과를 하고 자세를 숙이면, 기세가 당당해져서

잔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쏟아내거나,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는 걸 알고 나서부터, 나는 사과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침묵의 부작용은 불편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 시간은 어쩌면 서로가 생각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장점도 있었다.

침묵은 견딜 수 있는 인내만 있다면 사과보다 더 이상의 갈등으로 번지지도 않았고,

훨씬 결과가 좋았다.


부부싸움에서 한쪽이 침묵을 선택하면, 그때는 게임오버가 된다.

나의 마음은 참 이상해서, 상대의 진심을 담은 사과가 마음으로 느껴지는대도

그 사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때가 종종 있다. 아니 많이 있다.

그것은 나의 결핍이 봉함되지 않고, 계속 붉어져 있어서, 아무리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도 내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상대의 사과가 사과가 아닌

부담이나, 압박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모든 사과가 선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과도 타이밍이 중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한 것을 보면, 갈등의 맥락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어렵고, 힘들 때가 많다.

지난 시간을 회상해 보니 수십 번의 사과와 화해로 다져진 그런 사연 많던 오랜 관계도 결국

끝이 나고,

단 한 번도 갈등 없이 순탄하던 오랜 관계도 단 한 번의 말다툼으로 그 어떤 사과나 해명 없이도

끝이 나는 관계도 있었다.


진심을 다해서 사과한 다고 해서 갈등과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사과는 그 순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잠깐 잊고, 시간을 버는 것뿐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행위에 불과할 때도 있다. 그러니 못할 것도 없고, 안 할 일도 없다. 하지만 사과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믿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난 사과했으니까 더는 책임이 없다는 마음이 오히려 서로를 성찰할 많은 시간을 뺏어버리기

때문이다. 때로 사과보다는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폭력으로 끝이 나는 관계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사과는 분명 선한 영향력을 주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침묵이 서로의 마음 안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요즘 나는 다툼 후에 침묵한다.

진짜 잘못이 느껴지기까지.....

그 잘못이 나를 찌르는걸 알아야지만

사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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