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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완전 공짜다. 내 글도 공짜다.

비싼죽음

by 토끼


어떤 임금님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다가

모든 위대한 지식인들을 다 모아서 연구했다.

세상의 가장 진리인 단어를 한 구절만 선택한다면 무엇일까?

그때 모든 분야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드디어 진리에 가까운 한 구절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문구였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이 이야기를 절실하게 하는 아침이다.

작년 AI 동영상 만들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평생이용권이라고 해서 거의 공짜에 가까운 10만 원에

필모라 동영상 편집프로그램을 구입했다.

하지만 쓸만한 기능들은 다 유료였고, 그냥 아주 기본적인 그런 기능만

사용가능했다. 결국 더 많은 돈을 내야지만 내가 원하는

기능들을 쓸 수 있게 만들어서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공짜라서 혹했거나, 공짜로 혜택을 누린 후의 많은 것들 뒤에는

`

사기였거나,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거나 하는 숨어있는 트릭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관관계에 있어 이런 철칙은 하나의 공식처럼 맞아 떨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자식 간에도 공짜란 없다. 물질적인 공짜뒤에

정신적인 봉사와 강요가 반드시 따른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공짜로 평생 누릴 수 있는 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태양, 산소, 바람, 비, 눈, 이것 것들밖에 없다. 언젠가는 영화에서 처럼 이것도 지구가 병들어가면

부자들에 의해 제한될지도 모른다. 가난한 자들은 지하로 쫓겨나 바람도 들지 않는

곳에서 태양을 뺏기고,

대기오염이 심해진 곳으로 쫓겨나 방독면을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과 정성 노동력이 들어가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 조차도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해야지만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자기 수행을 해야지만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매일매일 수행해야지만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다.


그러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오래전에 읽었던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에서는 청소부가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으므로써

성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

이 세상의 집착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열반에 이르는 과정.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은 다른 의미일 테지만 결국은 바로 죽음을 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면 죽음이 찾아온다.

결국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 속에는 죽음이 포함된다.


태양, 산소, 바람, 비, 이것들처럼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 죽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공짜로 죽음이 찾아온다. 대신에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고통,

이것도 공짜다.


전 세계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된 스위스는 죽음에도 큰돈을 지불해야 한다.

고통 없이 한 번에 깨끗하게 돈을 내고 죽음으로 갈 수 있는 선택이다.


전 세계 모든 인간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병원에서 각종 약물로 비싼 값을 지불하고,

공짜인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돈이 들면 들수록 그 죽음은

고통 앞에서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짜인 죽음 앞에서는 돈으로 싸워야 한다.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기 때문에, 죽음이 공짜가 아니다.

죽음을 피하려다 보니 죽음이 점점 더 비싸진다.


이 세상에서 공짜인 것들을 즐기려면,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이 많다.

희생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공짜는 인간에게는 독이기도 하고 구원이기도 하다.


독이 된 공짜는 받으려고 한 공짜이고,

구원이 된 공짜는 주려고 한 공짜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공짜는 태양, 산소, 바람, 비. 죽음 이런 것들과 함께

인간을 구원하고 희망을 안게 만든다.


성자가 된 청소부는 그런 마음으로 죽음을 공짜로 받는다.


따스한 초원에서 부드럽게 부는 바람을

향해 병들고 늙은 사자가 편안히 누워있다. 이제 배고프지 않아도

되고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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