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는것과 얻는것
어릴 적 뜨거운 국솥에 빠져 두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 된 지인은
목발을 짚고, 작고 큰 후유증을 겪으며 힘들지만 비 장애인인 언니와 함께 둘이 살고 있다. 그녀는
일정금액의 수입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 보조금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힘들게 사는 그녀를 보면서,
많이 벌지도 못하면서 차라리 장애인 보조금을 받고서
좀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설득하지만
일 때문에 밤낮이 바뀌어 불면증을 겪으면서도 일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 일이 자신을 훨씬 편안하고 당당하며 건강하게 만든다는 이유를 든다.
또 다른 지인은 아주 건강하고 능력도 있지만 일은 용돈 수준으로만 벌고,
생활보호대상자 보조금을 받으면서 즐기면서 편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서, 타인의 명으로 돈을 빼돌리거나
급여를 신청하고, 밴츠를 끌고 다니면서도 정부보조금을
받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그 또한 능력이라면 능력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엄연히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면서
어쩔 수없다거나,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동정을 받으려는 사람도 있다.
부조리로 가득한 이 세상은 법을 지키면서 요령도 못 피우고, 힘들게 사는 사람을 자기 것 못 챙기는
바보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 경제는 각자도생이란 명목아래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점점 불평등을 넘어 부조리 불합리, 인지부조화로 정말 어떤
공정과 정의 인권 양심을 찾기 힘든 경우도 종종 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보면서도 나는 가끔 이 세상은 참으로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개별화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시대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사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시스템 안에서 만든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산다. 무수한 자아들이 겹겹이 또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주고, 하나가 모자라면 또 다른 그 무엇으로 채워야지만 그 시스템이
돌아가게 된다. 양심을 내어주고, 부를 쌓고, 안락한 삶을 얻고, 양심을 지키면서
불편하고, 힘든 고단한 삶을 살고, 가난에 허덕이면서 살기도 한다.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만족감으로 살기도 하고,
언제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모든 사람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면서 사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철저히 혼자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들을 이용하고 배신하면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 무엇을 선택하는 인생이더라도, 그 선택이 나에게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이 공평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얻은 게 있다면 잃는 것 또한 반드시 있다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 시스템의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노숙자가 된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정신이 망가지고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몸과 마음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이 작동한다. 생각을 바꾸고 거리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사고체계를 만든다.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감정은 둔화되고, 오직 생존에 필요한 감정으로 전환된다.
몸은 세균과 추위 굶주림에 강해진다. 자신만의 세계로 재탄생한다.
인도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이런 평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다. 계급제도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런 불평등에 반기를 들지 않고, 거지들은 오히려
구걸을 하나의 자선행위로 생각하는 사고의 당당함을 보인다. 정신적인 깨달음이 부를 멀리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부자들은 더 더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더더 가난해지는 나라지만
인간의 행복의 조건과 만족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모호하다. 요가와 명상 수행이라는 단어들 앞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경제적 풍요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가 정책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대신에 정신승리에 자신인생을 걸고,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구조를 평화적으로 바꾸려면 개혁이 필요하고, 무력으로 바꾸려면 혁명이 필요하지만
국민개개인의 사고를 바꾸려면 교육과 문화의 다양성이 필요한데, 인도라는 나라는 그 다양성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 힘든 나라 중 하나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는 사회질서니 정의를 부르짖지만
뼛속깊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거짓을 꾸미고, 스스로도 그 거짓을 믿고서 사는 사람이 있다.
힘든 일은 하기 싫고,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것들은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고상하고 지적인 이미지까지 욕심내면서, 무리한 거짓말들을 꾸며내면서 무엇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게 된다.
하나의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만든다. 그 거짓을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포장하기에는 진실이 드러날 때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을 가지기 위해서 무엇을 버리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삶.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당당하지 못하게 선택하는 그것 때문에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의 권태 때문에 선택하는 불륜,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거짓으로 포장해서 파는 물건들. 조건이 좋은 배우자를 얻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는 행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모든 이런 행위들이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지를 모른다.
자신이 하는 거짓된 행위들이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리화하고, 당당하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성공하고, 권력을 잡고, 정치를 하고, 회사의 오너가 되어 국민을 지배하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 부조리함을 견딜 수 있는 건,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주 사적인 내밀한 정신적 영역을 섬세함 속에서의
균열을 감지하고, 발견하고, 깨달음 속에서 모든 공평한 마음의 본질을 이해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내면을 공부하다 보면 타인들이 내면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말과 행동을 깊이 보다 보면
이 사람의 진정성과 진심을 몇 시간 이야기해 보면 느낄 수가 있다.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헐벗음이 느껴지는 사람, 아무런 깊이가 없이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사람.
사랑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 돈냄새 밖에 안나는 사람. 자신의 이익만 충족되면 모든 게 오케이인 사람.
그래서 신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 나의 시각은 언제나 보는 시선을 나에게 집중시켜 준다.
내가 버린 것들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내 정신을 굳세게 하고, 강인하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공부하게 하는지
내가 겪은 것들과 지금도 겪고 있는 것들이 나의 능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 있는 것들로 인해
지금 마음의 연금술사가 되어가는 걸 느낀다.
자기도취 나르시시즘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건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견뎌서 얻어지는
것들이기에 아름답고, 가치 있다. 타인들이 움켜잡고, 목숨처럼 믿고 있는 것들을
놓아버림으로써 자유를 얻기도 한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동경하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가지면 잃게 되는 것들을
너무나 충분히 경험했고,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다. 마음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세상의 공평함을 느낀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서로 엇갈려진 길들을 걷는 사람들을 본다.
그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어떤 속도로 걷든 우리의 목적지는 같다.
결국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서 만난다.
모두 다 아등바등 참 힘들게도 걸어온다. 결국은 여기서 만나게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