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잊는지도 모른다.

믿음은 강요가 아니다

by 토끼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몇년 만의 재회였다.. 2년 정도 함께 일하면서 나름 친하게 지냈는데 서로 일터를 옮기고 소식이 끊겨버렸다. 중간중간에 그녀의 소식을 접하곤 했다., 이혼의 아픔을

겪으며 이단종교에 빠져 종교밖에 모르며 산다는 이야기 등등, 반가운 마음에 차 한잔을 하면서, 모르는척하기에 조금 머쓱해서 "너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며"라고 말문을 꺼내본다.

"나도 사고 때문에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어" 라며 슬쩍 내이야기도 밀어 넣으며, 차 한 모금을 마셨다.

하지만 그녀는 밝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답한다."응 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잖아 , 하나님이 있는데 뭐가 힘들어 하나님 이외에 나한테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 "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만 했고. 내얘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괜찮아 보여 안심이었고.그녀의 믿음을 존중하기에 범신론자인 나는 하나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녀 옆에 견고하게 앉아 있는 교주가 그녀 옆구리를 자꾸 찌르는 걸까!

몇 년 만에 만난 그녀는 나라는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에게 나는 친구가 아닌 단지 그녀의 단체로부터 구원해야 할 나약한 영혼이었다.

함께 집회를 가자는 권유를 사양했지만 집요한 그녀의 설득에 점점 경청이 힘들 무렵, 다행스럽게도 책상 위의 나의 핸드폰 진동이 울려 그녀에게서 자유로워졌다.


그녀와 헤어진 내내 많은 생각에 빠졌다. 그녀와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려다가 괜스레 곤욕을 치른 느낌이었다.

한 개인의 아픔과 고민을 단지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또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 내 마음대로 그녀를

재단해 버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스스로의 성찰과 함께 다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방식의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서 또 내 안의 다름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했다. 각자 아픔을 다스리는 방식이 다르듯이... 감정이라는 정서를 다룰 줄 알아야 건강하게 아플 수 있음을 배운다.

어쩌면 난,

그저 그녀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내 안에서 울컥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올라왔는지 모른다. 힘든 시간 터널을 그녀의 방식대로 무사히 건너온 건 같아 부럽기도 하고 , 다행이기도 했지만.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않으려는 그녀를 보며,

왠지 그녀의 하나님은 슬픔을 허용하지 않은 듯했다. 아프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하나님 품으로 숨어버린 어린아이처럼 , 그녀는 상처의 응시없이

애도의 기간도 거치지않고 죄인이 되버린걸까!

그녀의 맹목적 믿음이 폭력 처럼 불편하게 다가왔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자연 그대로의 모든 감정들이 있다. 그녀는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을 자신의 믿음으로 묻고서.

슬퍼할 감정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와의 대화가 계기가 돼서 내 안의 감정의 흐름을 또 내면에서 꺼내어본다. 내가 저항하며 거부했던 부정적인 감정들....


상실의 아픔은 떠나버린 사랑을 되돌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그 대상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르는 것, 즉 슬픔의 시간을 거칠 때 그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 된다. 애도의 시간을 거치지 않은 감정은 언젠가는 나를 공격하는 감정이 될 수 있고. 나의 성숙을 가로막는 감정이 될 수 있다. 우울증이란 떠나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거나 원망하거나 자아의 한가운데 완전히 애도로써 풀어내지 못한 타자나 자신의 마음의 응어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증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은 고통조차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는 걸 요즘 느낀다.

일상 속에서 음식을 먹고 위가 소화작용을 하듯

마음도 무수한 감정들을 소화하면서 즐거움 , 불안 , 무료함, 조급함, 평온함 등을

배설하고 있다. 오늘 하루 나의 감정 여행은 어떠했는가!

아침에 출근길 "너 오늘 옷이 정말 잘 어울린다."라는 누군가의 한마디에

우쭐했던 기분! 늘 웃으면서 아침인사를 건네던 동료가 인사를 건네지 않았을 때

걱정되면서도 , 나한테 기분 나쁜 게 있나 하는 불쾌한 기분,

굽 높은 구두를 신고 화장실을 가다 살짝 삐끗해서 오싹했던 기분

저녁 약속에 뭘 먹을까 상상하다가

살짝 설레는 기분, 이런 모든 감정들을 느끼고 다스리며 또 흘러가게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불안한 기분 또한 피할 필요가 없다. 불안해서 계속해서 그 일이 떠오르는 것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를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이다. 기분 나쁜 일이 계속 떠오르면 생각이 떠오르는 데로 지켜보면 된다.

이런 생각은 나한테 해로워라고 생각이 저항하거나 아 어쩌면 이 기분으로 난 병이 날 거야 하며 앞서 나가서 소설을 쓰지 않는 한 생각은 그저 흘러간다.

생각이 흐르기 위해서는 먼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느껴주어야 한다.

저항 없이........

아주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고 해도 저항하지 말고 고통도 아픔도 느껴주어야

마음은 슬퍼하고 아파하면서 애도의 시간을 거치게 된다.

애도는 정신적 의례이다. 상처의 응시이다. 마음의 허용이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완전히 받아들이는 수용이다.


그녀는 내내 웃고 있었고, 건강해 보였지만. 자신을 내보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건 아닌지, 상대의 마음도 보지 않으려 했고,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했으며, 감정을 소통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은 나누며 성장하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늘 새로운 면을 경험하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존을 같이 경험한다.


감정의 강물은 오늘 하루 스쳐 지나가는 작은 감정부터

상실과 고통이라는 큰 감정들까지 애도라는 큰 물줄기를 따라 늘 흐른다.

오늘도 무수한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흐르고 또 새로운 물줄기를 내어

많은 감정들은 나의 사유가 된다.

건강한 물줄기가 된다.


공감할 줄 알아서 눈물도 흐르고

받아들일 줄 알아서 포기도 하고

이해할 줄 알아서 마음도 아프고

미워할 줄 살아서 상처도 받고

용서할 줄 알아서 사랑도 배우고

따뜻한 사람이 된다. 나를 표현하고

사랑줄 아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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