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불륜 중에서....... 파올로 코엘료
코엘류는 분명 매력적인 작가이다. 불륜은 재미있는 책이다.
말초신경도 적당히 자극하고 인간의 본질 속 허무를 건드리면서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과 모든 게 갖추어진 완벽한 삶을 사는 주인공의 결핍을 잘 드러내 준다.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 사랑 안에 열정과 설렘 간절함이 빠진 안정감은
어느 날 주인공을 권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감금시키면서 우울증에 걸리게 한다.
그렇게 전반을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하지만,
공기가 빠지는 풍선 같은 결말에 팽팽한 기대감으로 팽창했던 나의 뇌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코엘료라는 사람 지독한 이상주의자인가! 어쩜 결말을 이렇게 유치 찬란하고 진부하게 낼 수 있단 말인가!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 너무 뻔해서 인가!
불륜의
첫 시작은 풍선에 오염된 공기를 넣듯 질문과 허무 염세주의로 꽉꽉 채우더니
마지막엔 끝없는 환희로 차서 하늘을 나르는 여의주를 품은 용처럼 아름다움으로 꽉 채운 다움 사랑으로 폭죽을 터트린다. 하지만 주인공의 환희에 찬 마음에 동참할 수가 없다. 억지로 끼워 맞춘 티가 너무 난다.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엉뚱한 동화 같은 앤딩 이라니... 앞과 뒤가 너무 불협화음이 아닌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온도차가 너무 심해서 오한 이들 지경이다.
주인공의 성격이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다. 사랑의 세레나데를 느끼면서 사랑을 깨우치기에는 개연성이 좀 부족하다.
아마도 몇 년 전 이 책을 읽었다면 해피엔딩의 아름다운 결말에 감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해피엔딩의 결말이 조금은 새롭기를 원했다. 굳이 아름다운 세상을 펼쳐 보이며 설명하기보다 나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길 원했나 보다.
진부하지 않은 뭔가 새로운 해피엔딩!
친절하지 않은 못된 남자 쿤데라에 길들여진 모양이다. 쿤데라가 꿈꾸는 환희는
불협화 음속에서도 느낄 수 있고 슬픔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파올로 코엘류는 결이 곱고 밋밋하다 입체적이지 못하다.
아이스크림을 좀 힘들게 먹은듯한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주인공 린다는 서른하나 완벽한 외모 완벽한 가정 속에 아이들은 건강하며,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최상류 층의 여자이다. 그녀의 직업은 명망 있는 인정받는 기자.
그녀의 인생이 흔들린 건 바로 그 전날 인터뷰한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삷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질문한다.
"고작 이게 다야"
그녀가 행복에 겨워 누리는 모든 것들이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전날과 다를 바 없는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 자신에게 애정을 쏟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자신이 누리는 이 모든 것이 권태로워진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삶의 , 권태. 더욱이 모든 것이 , 완벽한 삶이라면 더더욱 참기 힘들 것이다.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 안에서 내 삶에 열정이라는 단어로 마음을 흔드는 일이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 본다. 주인공 린다는 열정이란 가슴 떨리는 새로운
사랑으로 위험하고 달콤한 과실을 따먹기 위해 손을 뻗는다.
모든 걸 다 가져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사랑이라서 일까!
우리는 때로 삶의 권태를 사람으로 채우려 한다.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또 다른 이성의 사랑으로 채우려 한다.
욕망은 채우고 나면 갈증이 생겨나서 더자극적인걸 찾게 되고 권태만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맛있는 음식을 매일 찾아 나서면 처음에는 더 맛있는 음식이 나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시작되지만 이런 시간이 지속되면 맛없는 음식이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그 어떤 음식에도 행복한 맛을 잃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는 스스로 잘못된 걸 알면서도 선택을 하는 순간이 있다. 맛있는 과실이 탐스럽게 나를 유혹하고
위험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그 과실을 먹어야지만 행복해지는 때가 있다. 그래서 기꺼이 과실을 맛보는 스릴을 경험하고자 한다. 과실이 더 이상 달콤한 맛이 아닐 때까지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손을 뻗는다. 치명적이 독이 있는 과실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먹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맛이 없어 스스로 뒤돌아서거나 치명적 독에 중독되어 파멸을 하거나.
달콤하지만 더 이상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포기하거나, 결국은 위험한 과실은 탐내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위험한 과실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의 과실인지 모른다.
우리가 어느 날 문득 이게 다야 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삶의 열정을 채울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 자신이 언제나 그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열정은 행복과 즐거움 과는 별개의 의미인 것 같다. 열정이란 답을 찾는 과정인 것 같다.
하지만 인생에 답이 있는 질문이란 없다.
열정이란 단어가 멀고도 낯설다. 성실하고 진실된 마음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면 지금 권태가 찾아온 것인가! 열정이 있어야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살 수가 있을까!
아니면 내가
남의 것을 탐내고 있는 순간인가!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때로 나를 파괴해서라도 열정을 채워야 하는가!
모르겠다. 나에게 지금 열정이란 비우고 비워야지만 채워지는 텅 빈 공간 같아서.......
인생의 반이상을 살고 나니 이제는 위험한 과실을 관찰하고 싶지 따먹고 싶지는 않다.
맛보지 않고 관찰하는 것만으로 열정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