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마음
몇 주 전 댓글 테러를 당했다. 상대는 반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에게는 엄연한 폭력이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많이 놀리고 당황했다. 인터넷 계정을 삭제하고 커뮤니티를 삭제했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러 알라딘을 서성이다가 제목에 꽂혀서 집으로 모셔온 책이다.
고맙게도 이 책이 잠시 소방수 역할을 해주었다.
이기는 마음이 아니라
지지 않는 마음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었다.
첫 장에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바꾸는 능력!으로 시작한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 사건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즉 우리 내면에 크게 죄우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의 감정적 반응들을 통제하기 힘들다.
감정이 상처를 입으면 먼저 감정이 이성을 이겨버린다.
온라인 상에 떠도는 악플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왜 신경 쓰지 그냥 무시하면 되는 일 아닌가!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면서 지나쳤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역시나, 나 또한 같은 패턴으로 상처 입는구나! 머리는 훈련이 잘돼서 이성적으로 대응하면서 상대의 공격에 꽤나 이성적으로 대응하며 결과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걸 얻어냈지만. 처음부터 상대의 공격은 내 자존심을 건드는 것이었고 내가 반론을 열심히 함으로써 상대가 원하는 대로 나를 내어주고 말았다. 결국 마음은 평정심을 잃고 방망이질 쳤다. 결과와 상관없이 일상이 흔들렸고. 후폭풍에 오래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실체가 없는 분노! 하지만 흔들리서 붕괴되는 내면!
인터넷에 떠도는 별의별 사람들,
교묘하게 사람을 공격하면서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구축한 온라인상의 미미지는 이러했다. 난 샤 유하는 사람이며 난 나의 이야기를 쓰는 행위가 나의 치유임과동시에 타인을 위한 봉사이다. 또한 난 글을 통해 나날이 성숙해지고 있는 좋은 사람이다. 또한 나는 언제나 글을 통해 나를 성찰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이미지를 가차 없이 깨부수는 댓들 하나!
이성적으로 흠잡을 때 없는 글이면서 다분히 모욕적인 뉘앙스를 깔고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고자 하는 댓글이었다.. 말이 안 되는 반론이라도 교묘하게 뒤집으면 글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진다.
Sns를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이 채 안되었다. 유리 멘틀은 산산이 부숴 지고. 자존심은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경우를 투영시키는 글귀가 있었다.
추상화의 비극이라는 이야기였다.
저자는 자신을 재료로 삼은 이야기로 '추상화의 비극'을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을 인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역할이나 그 사람에게 붙은 꼬리표로 바라보는 성향이 있다(242쪽)
이것이 '추상화하려는 태도'라 한단다. 저자는 아이와 산책을 갔다가 돈을 구걸하는 여성을 못 본 척하고 지나쳤을 때 '그녀의 요청을 거절해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무시했기 때문에 밀려든 후회(241쪽)'에 대해 고백한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자기를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로 여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후회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 탈의실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젖가슴이 자라나 있던 한 사내아이를 놀려대던 친구들을 보며 방관자로 남았던 기억이다. 그는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 헸다. 친구들의 악의적인 관심이 자신에게로 쏠릴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쁘리엘 마르셀은 이것을 추상화하려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즉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비극이 이러한 추상화의 태도에서 비롯된 예가 있다.
남북전쟁 당시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노예라는 한 단어로 싸잡아 정의함으로써 그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고 그들을 소유물로 대했던 것이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독일 국민으로 하여금 비열한 존재로 믿게 만들어 600만 명을 살육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만든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분노하고 두려웠던 것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부정당하고 나에게 붙은 꼬리표가 아니었을까!
예를 들면,
상대가 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쓰레기라고 공격했다.
군중의 심리는 나의 지금껏 만들어 놓은 깨끗한 이미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쓰레기가 된 나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런 이야기를 반론으로 싸운다면 난 결국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그저 한 쓰레기의 절규일 뿐이다.
온라인에서 상대는 먼저 나에 대해서 아무런 호의가 없다. 날 잘 알지 못하므로 먼저 날 깔아뭉개는 게 먼저이다. 진실과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개쓰레기가 중요한 것이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이성적으로 반론을 벌여서 내가 개쓰레기가 아님을 반론의 대상이 아닌 타인들을 위해서 내가 구축해 놓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증명하려는 노력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처 입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논리가 약하고 감성이 먼저 반응하면서 감정적으로 매우 취약한 나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상황을 파악해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이성적 논리가 나에게는 먹히지를 않는다.
먼저 이런 일이 있으면 나의 성향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 어떤 상대의 공격에도 우선은 마음이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은 저항하면 먼저 무너져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침묵하는 것이다. 무시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더 좋은 방법은 그냥 내가 개쓰레기가 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오케 너를 존중한다. 네가 날 개쓰레기라고 생각했다면 너에게 난 이미 개쓰레기인 것이다. 인정해버린다. 개쓰레기를 받아들이면 더 이상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노력할 필요도 없고 , 더 이상의 추락도 없다. 상처도 없다.
좋은 사람이라는 틀에서 이미 벗어났기에 마음은 덜 흔들린다.
그럴 때는 분노도 없다. 개쓰레기가 되어보는 것도 나쁠 것 없다.
나의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쓰레기가 되었다고 내가 진짜 개쓰레기가 되는 건 아니다. 내가 날 지지해 줄 수 있다면, 개쓰레기를 받아들이는 건. 누군가에게 난 개쓰레기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떤 일도 당할 수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은 똑같다.
나라고 다를 수가 없다. 그러니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을 접자.
나 또한 그들을 공격할 수 있고 또 어느 순간 공격했을 수도 있다.
은연중에 누군가를 상처 주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모르고 , 아니라고 확신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언제든 이러한 사실은 명심해 야한다. 누군가 어떤 식으로 공격해도 충분히 받아들이자. 설사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음모와 모함이라고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늘 굶주린 사자처럼 먹이를 포획하러 다니는 곳!
일단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모든 것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볼 일이 아니다. 경계해야 한다. 마냥 좋아요 좋아요만 있는 게ㅡ아니다.
또한 공격을 받으면 혼자 고립된다. 군중심리는 지켜보면서 즐기는 방관자가 되려 하지 누군가를 편들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흥미거리를 찾아서 즐기는 본성이 있으니까!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싸우든 무시를 하든 먼저 받아들이고. 내 안의 틈을 만들어 다름으로 안착해야지만 그다음 단계인 발톱을 드러내면서 싸울 수도 있는 여유가 생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강함은 자신 안에 분노나 불안을 만들지 않고 다름으로 변화시키는 내면의 힘이다.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자.
나만의 노하우는 여기서 출발한다.
값진 경험을 했다. 역시 임팩트가 강할수록 사건의 깨달음도 크다.
고맙지 않은가!
개쓰레기가 된다는 거 그건
개쓰레기여도 괜찮고,
언제든 개쓰레기가 될 준비를 하고
산다는 것!
그래서 자유롭다는 거 아닌가!
지지 않는 마음은 승리한다.
나 스스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