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곧 등산이라
11월이면 추워서 옷을 여미고 다녔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추위는 덜해지고 더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 것은 북쪽 산지로 둘러싸인 지역에 평생을 살아 그런 걸까, 그런 연유로 웬만해서는 춥다고 말하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이맘때쯤, 쌀쌀한 시기가 되면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오늘 11월은, 형형색색으로 물이 든 나뭇잎과 노란 은행나무가 길가를 훤히 비추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감탄하며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그런 광경이었다.
"가을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진 건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너를 보며 나도 내심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산을 오르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등산 시에 고도가 높아지면 산소가 부족해지고 심장이 약한 사람은 호흡곤란이 오거나 심장 마비가 걸릴 수 있다. 바람은 더 거세지기에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몸살이 날 수도 있고. 기초 체력이 좋지만 추위를 잘 타는 너였기에 은근히 걱정이 됐다. 그럼에도 강행한 건, 내가 곁에서 잘 이끌어주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따뜻한 날씨 때문이었다.
공복으로 산에 오르면 내려올 힘이 부족할지 몰라 아침에 빵과 커피 한 잔을 나눠 먹고 출발했다. 정상에 올라서는 김밥 두 줄을 먹을 생각으로 등산 베이스 매점에 들러 생수 두 통과 김밥을 샀다. 주말에는 산을 오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고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행인들로 동선이 꼬이곤 했는데, 평일이라 사람도 없었고 조용히 등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우리는 그렇게 등산로에 발을 디뎠다.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운대를 선택해 오르기로 했다. 봉우리에 가까워질수록 암반, 암릉 구간이 있어 걱정이 조금 됐지만 내가 아는 너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는 초급자들도 많이 오르는 등산로니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점점 경사가 가파르게 변하기 시작했고 길이 어렵다고 느껴졌다. 그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솔직히 말해. 여기 초급자 코스 맞아?" "응, 맞아" "나를 걸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라는 물음에 "음.. 사실 중 상급 코스로 여겨지긴 해. 난이도가 조금 있는 편이야"라고 말하니 속았다! 하는 표정으로, 그래도 웃으면서 산을 오르는 너를 보며 나는 조금 안심했다. 뛰어 올라가려는 널 보며 "처음부터 힘 빼면 안 돼. 정상 가서 그렇게 올라갈 수가 없어"라고 말했지만 너는 페이스를 알아서 잘 조절했다.
법당을 지나치려던 찰나, 두 손을 모아 "불상에 절 올리고 가야 하는 것 아니야?" 하며 묻고, 사람들이 쌓아 놓은 낮은 돌탑 위로 돌멩이를 얹혀보려고 잠시 멈춰 서고, 좀처럼 힘이 들어도 강박에 가깝게 계속 올라가야겠다 생각하는 나와 달리, 너는 힘들면 쉬어 갈 줄 알았다. 숨을 고르며 정좌를 틀고 명상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꼭 잡고 음미하며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힘이 조금 부칠 때,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더니 산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을 느끼자고, 또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자 음악을 끄자는 네 말에 전원을 껐다. 나중에 <내게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것이, 타인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앞으로는 스피커 자체를 들고 오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네 말대로, 음악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들을 수 있지만, 산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스치는 소리와 바닥에 놓인 단풍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그 고요함 속에 아무 때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해가 짧아져 오후 5시만 넘어도 어두워지기에 서둘러 올라가야 했다. 오르는 길에는 평지가 있어 숨을 고르기 좋았다. 백운대는 적당한 경사에 평지가 조금씩 이어지다,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1.3km가 남았을 때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 오르는 구간마다 큰 돌이 계단처럼 놓여있지만 오르기가 쉽지 않다. 길을 따라 놓인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지 않으면 힘이 곱절로 들어 자주 쉬어주며 올라가야 한다. 높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어렵고 험난했다. 나는 과거에 몇 번 올라본 경험이 있어 괜찮았지만, 첫 등산을 백운대로 오르는 네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군소리 않고 숨을 고르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 너를 보며 마음 깊이 응원했다.
"어? 저것 봐" "산고양이네" 꼬리를 몸에 휘감고 푸른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우리 둘을 무표정으로 바라본다. 어떤 것으로부터 해탈한 듯, 그런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고양이였다. 한 5분쯤 지났을까, "이제 갈까?"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열 걸음 내지, 스무 걸음을 올라 고개를 잠시 숙여 숨을 고르고 이내 다시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굳게 다물고 다시 오르는 그런 너를, 나는 위에서 지켜보고 아래서 밀어주기도 하며 도왔다. 중간마다 괜찮냐는 말에 힘들다는 말은 좀처럼 입 밖으로 내뱉지도, 그런 티를 내지도 않는 너. 앉아 있더라도 "잠시 1분만" 그게 전부였다. 무너질 법도 한데 힘을 내는 너를 보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나도 힘이 났다.
"여기는요.. 아니 무슨 대회를 나갈 것도 아니고, 조금 올라가다 쉬어주고, 또 조금 올라갔다 쉬어주고, 그렇게 올라가야 한다니까요, 안 그럼 지쳐요" 노란 형광빛의 투명 선글라스를 낀 하얀색 난닝구 차림의 아저씨가 등산객 아주머니 세 명과 이야기하는 것이 보인다. "아, 오호, 어머 그래요" 대답하는 아주머니들. 그쪽을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너를 바라봤다. 난 너와 함께 정상에 오르고 말 거야, 하는 생각으로. 그것만 생각하며 올라갔다. 그런데 벤치가 보일 때마다 그 아저씨가 보였고, 항상 먼저 앉아 있었다. 바람이 제법 거세져 추위가 느껴질 때쯤, 아저씨는 하산하는 사람들을 향해 "제가 돈이 없어, 옷을 이런 것만 입고 다녀요"라고 연거푸 이야기했다. 내려가는 사람들은 살짝 웃으며 그 아저씨를 향해 "아 그래요" 하고 지나쳤다. 신기하게도 노란 선글라스 아저씨는 백운대 정상에서 또 마주쳤는데, 사람들이 바위에 이름을 새겨 넣는 것에 대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었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아 연신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예! 물론이죠" 재밌는 건, 그 아저씨가 우리 사진을 찍어줬다는 사실. 그 아저씨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 같았다.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더라도 한 번 미끄러지면 추락할 위험이 있는 암벽, 의지할 것이라고는 자신의 팔과 다리 힘. 발을 잘 딛고 천천히 한 동작씩 나눠 움직이면 올라갈 수 있지만, 공포심에 사로잡혀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뇌는 몸을 마비시킨다. 쉽게 말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가파른 바위를 난간에 의지해 위로 올라가자니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겁이 났을 것이고, 뒤를 돌아보면 또 절벽이니 얼마나 가슴이 떨렸을까. 앞으로 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그런 순간에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익숙하지 않은 네가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네게 뻗은 내 손을 꼭 잡은 건 아마 너의 강한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나는 앞에서 올라갈 때 딛어야 할 곳을 하나씩 알려줬고, 너는 감정을 추스르며 내 발길을 따라 잘 올라왔다.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고 무서워하는 너란 걸 알았지만, 나는 너라면, 이런 순간도 나와 함께라면 너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뒤로 너는 내 손을 잡지 않고도, 혼자 차가운 난간을 잡으며 씩씩하게 기어코 올라갔다.
"올라가는 건, 그래도 어떻게 갈 수 있겠어. 그런데 내려가는 건 혼자 절대 내려오지 못할 것 같아"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 나랑 같이 올라가잖아. 내가 뒤에서 버티고 있어. 걱정하지 마"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는 네 뒤에 바짝 붙어 혹시나 미끄러질 것 같은 위치에 발을 딛고, 네 몸에 내 몸을 밀착해 함께 올랐다. 나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너를 이렇게 뒤에서 지켜줄 수 있는 강인함을 갖춰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던 것도 누군가 옆에 있다면 가능할 수 있겠구나. 내가 네 옆에서 이렇게 받쳐줄 때 네가 정상을 올라갈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없을 거라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네가 있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처음 갔던 경주 여행에서 "둘이 있을 때, 비로소 기능하는 것들"이 이런 것은 아닌가 하는 기억을 떠올리며.
높은 정상에 단시간에 오르는 건 힘들고 어렵다. 그 길은 고되기에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게 높은 목표가 있으면 그만큼 그 길은 힘들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일 가능성이 높다. 목표를 이루려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올라가야 한다. 지치지 않게 잘 쉬어가면서. 인생의 목표가 어떤 것이 됐든, 중간에 멈춰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그 홀로 가는 고독함을 온 몸으로 힘껏 끌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상에 올라 김밥과 남은 생수 한 통을 꺼내 먹었는데, 누렁이 두 마리가 산 정상에서 방황하다 김밥을 보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걸 알아차렸고 김밥 몇 점과 물을 나눠 줬다. 보아하니 잘 먹지 못한것 같았고, 작은 것에도 쉽게 놀라는 것이 애처로워 보였다.
점점 바람이 거세졌다. 꽁꽁 껴 입은 바람막이는 네가 느끼는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읏.... 너무 추워. 흑.... 너무 추워!" "내 조끼라도 입어" 나는 가방에서 조끼를 꺼내 네게 건네주었고 이제 그만 내려가자 말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날이 저물면 저체온증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등산로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갔겠지, 동선이 더 길지만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우리는 주차장을 향해 내려가야 했기에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갔다. 해가 저물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고 공기는 스산해졌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산길을 따라 걸으며,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올라온 걸까, 하고 생각했다. 네가 "도대체 길이 언제 끝나는 거야.. 정말 너무 힘들어" 라고 말할 때면 나는 가서 안아주고 달래며, "괜찮아. (거짓말 조금 보태서)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무로 된 계단과, 철 길을 따라, 또 수많은 바윗 돌을 밟고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산 길은 살짝 스치는 낙엽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너를 계속 신경 쓰면서 내려갔다. 내가 뭐 하나라도 놀라게 할 만한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생각하며, 네 옆에 내가 있다는 것을 주기적으로 상기시켜 줬다.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옆에 있다고. 속으로는 나 역시 똑같았다. (진짜, 지겹게도 이어진다 길이. 도대체 얼마나 올라온 걸까 우리는? 언제쯤 이 길은 끝이 나는 걸까? 다 왔다고 이야기했는데, 또 길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매 번 거짓말 섞인 '다 왔어'를 남발하면서 나 자신한테는 무안했고 네게는 너무 미안했다. 길을 내려가고 내려가도 끝이 나질 않으니 "도대체 언제 끝이 나는 거야.. 힝.. " 그러고는 털썩 앉는 너였다. 주저앉은 네게 다가가 토닥거리고 너를 등에 업고 계단을 내려가기도 했다. 이따금씩 초입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질 때 네가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오르막 길에서는 "우리 또, 다시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거 아니지.." 걱정 섞인 말을 했다. 그때마다 "여기 아까 초입 올라올 때 지나왔던 길이야, 걱정 마"하며 다시 너를 안심시켰다.
나는 산짐승이 나타나도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지키고 끝까지 싸우며 네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줄 심산으로 네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마음을 굳게 먹으며 너를 계속 부축하며 산길을 내려갔다. 무슨 말인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네겐 들려올 리 만무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배가 고픈지, "배고파.. 너무 배고파"하며 수차례 말을 하는 너를 보며, 아까 올라올 때 먹자고 이야기한 가야밀면을 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저 아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불빛이 보이네, 다 왔어. 이젠 정말 다 왔어, 조금만 힘내" "응!" 또 금세 씩씩해진 너를 보며 참 장하다, 기특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리디 여린 네가 저 험준한 산등성이를 오르고, 추위를 견뎌내고, 후들거리는 발로 내리막길을 내려오고, 벌레 한 마리에도 크게 놀라는 네가 어둑어둑한 산 길을 따라 등산을 성공적으로 마치다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네가 한 층 강해졌을 거라는 생각이 그리고 인내심이 자라났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고, 예뻐라. 잘했어요. 아주 기특해! 너무 잘해줬어,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어" "응! 나도 고마워." 네가 그렇게 순수한 얼굴로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세상 그 무엇도 필요 없는 듯 느껴지곤 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인생도 이렇게 서로 믿고, 밀어주고 당겨주며 살아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가야 밀면에 도착해 따뜻하게 옷을 입고 있는데도 춥다고 말하는 너를 보며, 서둘러 집으로 향해야겠다 생각했다. 차에 미리 시동을 걸었고 식후 집으로 향하는 동안 너는 노곤한 몸을 조수석에 기댄 채 한동안 잠에 들었다.
내가 옆에 있어도 처음에는 잠에 잘 들지 않던 네가 이젠 잘 자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젠 내가 옆에 있으면 안심하고 잠도 자는구나, 하는 생각. 어쩌면 정말 너무 피곤해서 잠에 든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행복했다. 오직 나는 그녀가 충분히 쉬고 빨리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나는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