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트라우마가 가져온 것

by 시골남자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어렸을 때 저를 이유 없이 싫어하던 녀석이 있었어요. 제가 3, 4학년 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학교 명칭이 바뀌었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죠. 대략 제 나이가 가늠이 가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아무튼 그때는 지금처럼 오락거리가 별로 없어서 동네 오락실에 가서 펌프를 하거나 동전을 넣고 하는 게임이 전부였고, 스타크래프트가 6학년이 되던 해에 나왔으니 알만 하죠. 펌프가 오래된 오락실게임이라고 해도 약 한 달 반 전에 펌프를 하러 다녀온 기억이 있어요. 그러니 아직 펌프는 현재 진행형 게임인 거죠.


그 거짓말쟁이 친구를 K라고 부를게요. K군은 집에 펌프 기계가 두 대 있다면서 자랑을 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파트 고층 빌딩에 펌프 기계 두 대를 들여놓을 리가 없는데, 너무 순진해서 일까요, 믿는 친구들 절반, 안 믿는 친구들 절반이었어요. 직접 너네 집에 가서 확인해 보자며 말하는 녀석은 한 놈도 없고 그 말을 믿는 애는 두둔하고 믿지 않는 친구는 두둔하지 않더군요. 당, 연, 히. 거짓말이었죠. 사실 저는 관심도 없었어요. 그러려니 했고요. 못된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특히 사람을 괴롭힐 때요.


그건 바로 자신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을 반응할 때까지 괴롭힌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화를 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를 내게 만들어야 성미에 차서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아요. 그런데 그 타깃이 제가 될 줄은 몰랐죠. 제 성향은 타인이 뭘 하든 별로 관심 없고 제 자신에만 집중하는 타입이었거든요. 누군가의 눈에는 이기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그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제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것. 그래요, 개인주의입니다. 이기적이게 행동한 적도 물론 있었겠지만, 적어도 피해는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였어요.

어린아이들은 사실과 거짓을 잘 구분할 수 없기에 그 친구가 하는 말은 전부 믿더군요. K군은 제가 잘난 척을 한다며 소문을 냈죠. 하지만 그게 과연 제가 알고 한 걸까요? 언제부턴가 저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변했어요. 가까운 친구들은 그래도 세 명 정도 저를 끝까지 믿어줬지만, 오히려 모르는 친구들은 그 여세를 몰아 저와 말도 섞지 않더군요. 물론 억울하죠. 저는 친구들한테 피해를 끼친 것이 없거든요. 그냥 이유 없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 지금도 잘 알지만,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으니 마음이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눈치는 보지 않았어요. 문제는 그 괴롭힘이 초등학교에서만 끝나면 다행인데 K군은 저와 같은 보습 학원을 다녔다는 거죠. 집에 갈 때까지 그 친구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어요.


자기중심이 잘 서 있지 않은 시기에는 어떤 루머에도 쉽게 휘둘릴 수 있잖아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잘 모를 수 있죠. 사회 경험이 없으니까. 보습 학원에는 우리 학교 말고 타학교 학생들도 다녔는데 그 친구들은 다행히 그 세력에 합세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거의 1년을 왕따 당했어요. 싸워보지도 않고, "왕따 시키려면 왕따 시켜봐" 하는 마음으로요. 재밌는 건 이유 없이 안 좋은 짓을 하니까 친구들도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어느 날 저를 불러 친구 한 명이 물어보더군요 "네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K가 그러는 거냐?"라고요. 그래서 "난 모르지, 니들이 알겠지? 걔가 알겠고. 관심 없어" "얘는 잘못한 게 없잖아!" "맞아!" 지들끼리 일 저지르고 지들끼리 깨닫고 뭐 하는 짓인지.


그러고 나서 사필귀정이랄까, K군은 왕따를 당합니다. 왕따를 당하니 옆 반 왕따를 당하는 친구와 어울리더군요. 유유상종인가요. 옆 반에 있었던 친구도 질이 좋은 친구는 아니었죠 그때는. 평판이 별로 좋지 않달까요. 나이가 좀 들고 나서야 철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초등학교 유년 시절 누군가로부터 배제당해보는 경험은, 제 안에 깊은 뿌리를 내렸어요.


고등학교 축제였나. 중학교 때 혈기 왕성한 에너지로 여드름이 많이 났었어요. 피부 관리를 잘 못해서 피부가 썩 좋지 않았는데, 그때 흉터가 꽤 남아있었거든요. 키는 큰 편이지만 예민한 성격에 몸도 마른 편이라 해골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지금 몸무게에서 -26kg이었으니까요. 여하튼 제 단점이라면 단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노예 콘셉트로 고학년 선배들 시중을 드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저는 저를 알아서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명단에 제 이름을 올리고 하루 종일 저를 시중으로 부리는데 헐값으로 가격을 쳐 놓은 거예요. 쉽게 말해서 외적인 것만 보고 제 가치를 매겨서 시중에 내놓은 거라고 보면 돼요.


자존심이 상했고, 화가 났어요.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때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사람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는 게 싫지만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그런 감정. 사람들 앞에 서는데 자신감이 떨어지더군요. 그건 대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고요. 시골에만 살던 제가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갔을 때 처음에는 활발하게 잘 지냈지만, 점점 학년을 거듭하며 태생이 다른 친구들을 접하며 조금씩 기가 죽기 시작하더니 이내 끝에서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더군요. 그러고 보니, 처음 썼던 글 <1. 그 누구도>에도 담았던 내용인 것 같긴 하네요.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까, 제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걸 어려워했더군요. 당연히 어렵죠, 마음의 문을 닫았는데 누가 그 문을 뚫고 들어오려고 하겠어요. 굳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점점 혼자 고립되어 갔고, 폐쇄적인 생각에, 부정적인 기운이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그런 순간이 많이 없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사람이 점점 마이너 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사람들로부터, 설령 그들이 그럴 의도가 있든 없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원치 않는 상처를 입다 보니 사람이 어려워졌어요. 사람을 대하는 건 할 수 있어도 싫은 소리를 못해요. 눈치를 보면서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 잡히고, 할 말도 잘 못하는 그런 심리가 생겼어요.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그룹으로부터 배제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고 싶지 않아 그러는 걸까요. 나쁜 사람, 별로 호감가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하는 걸까요. 그나마 다행인 건, 내게 좋지 않다 판단되는 관계는 스스로 끊어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됐다는 거죠.


그럼에도 제일 큰 문제가 하나 있어요.

관계적으로 가깝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사람들에게도 은연중에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필요 이상으로 집착을 하거나 불안함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게 어찌 보면 다행이지만요. 저는 이런 제 안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잘 안 돼요. 겉으로는 쿨한 척, 남자다운 척, 척, 척, 척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항상 가슴을 졸이고, 소심한 구석을 숨기며, 버림받기 싫어하는 주인만을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살고 있다는 거죠. 그런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지만요. 이런 제가 너무 싫지만 언젠가는 극복하고 싶어요. 제가 어떻다 한들 저를 떠나지 않겠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제 옆에 있다면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잘 떠올리지 못하면 지금 자신에게 '평범하지 않다고 여겨질 만한' 형질에 대해서 그 근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는데 애를 먹는 것 같아요. 혹여나 자신이 이상하리만큼, 실제로는 큰 문제가 있지 않은데 문제가 있는 듯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고 들여다 보고 인정하고 극복하려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트라우마든 내가 두려워하는 무엇이든 이겨내기 위해서는요.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회복 단계에 있는 것 같아요. 불안이란 놈을 제게서 날려버리기 위한 여정은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 없다죠.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겠다 다짐하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 제가 읽었던 법륜스님의 말씀 중에 좋은 글귀가 있어, 이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것은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고

잘한다는 소리 듣고 싶은 바람은

나를 다른 사람 시선의 노예로 만들게 된다


그러니 칭찬을 하든 비난을 하든

그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그들의 인생이다


나는 내 인생이 있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같은 꽃을 보고서도

어떤 사람은 예쁘다 말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말없이 피어 있는

꽃을 보고서도

서로 다른 표현을 하는데


각자 자기 생각과 감정으로 하는 말에

내가 흔들릴 이유가 없다


한 포기의 들풀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아무 상관하지 않고


그냥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그 자리에 있는 거다


그러니 내 존재를 제대로 알면

칭찬에 우쭐댈 일도 없고

비난에 위축될 이유도 없다


어떤 칭찬이나 비난에도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자


그물에도 거미줄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과 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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