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벌 침

아픔은 곧 가까워지는 길

by 시골남자

담임선생님의 말은 귀에 들려오지도 않았다.


예주가 내게 건넨 말이 너무 궁금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별 이유가 없을 수도 있는 거잖아..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이건 대체 무슨 감정일까'

그날 인동초 앞에 앉아 있던 예주의 모습은 한시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을 기다리면서 화단에 핀 빨간 인동초를 바라봤다.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고 창문만 바라보고 있는데,

"초각!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 아 네. 선생님, 저 쪽에 헬기가 날아가는 게 신기해서.."

"헬기? 헬기가 이 주변을 왜 날아다닐까?"

"아, 새가 날아다녀서요. 새가요"

아이들은 내 말에 웃음을 터트렸고, 선생님은 입을 꾹 다물더니

"저 뒤로 나가서 서 있어! 집중 안 하지, 응? 초각이 집중을 안 해 요즘. 딴생각만 하고 있어, 어?"

"....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뒤로 가서 서 있으니 창문 밖이 더 잘 보였다. 계속 한 곳을 집중하고 있는데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있으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휘청.

우당탕.

나는 오른쪽 무릎 한쪽을 교실 바닥에 딛으며 넘어졌고, 왼 손은 무릎에, 오른손은 바닥을 짚으며 한 동안 가만히 그 자세를 유지했다.

'아.. 또 한소리 듣겠다..'

다행히 선생님은 내가 딴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고,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괜찮냐고 물어봐주셨다.

"네, 네.. 괜찮아요. 조금 어지러워서"

"그냥 자리에 좀 앉아 있어"

"네"


그러고 십 분 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화단으로 가면서 예주가 있는지 살폈다.

'단발머리.. 단발머리, 단발머리... 엇.. 저기 있다'

예주는 여전히 인동초 화단에서 꿀을 빨아먹고 있었다.

"예주.. 예주야!"

흠칫.

"너.. 그렇게 부르지 마"

나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야'라고 부르기가 싫었다.

"그냥 '야'라고 불러"

"정나미 떨어지게 '야'가 뭐야, '야'가"

"너 지금 나 본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예주야? 그럼 난 초각아~ 이렇게 불러줘?"

막상 들어보니까 조금 간지러워서,

"아니, 그냥 야라고 불러. 상관없어"


나는 대가족에서 자라 조금 애늙은이 같은 성향이 있었는데, 예주도 왠지 나이에 비해서 말하는 투나 성격이 털털한 게 꼭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굴었다. 평소 생각이 많아서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고, 입 밖으로 말을 잘 뱉지 않는 편이라 저렇게 속 시원하게 자기 할 말 다 하는 예주를 보면서 대리만족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다. 내 생각을 저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예주를 보며 생각했다.

"넌 근데 왜 또 여기 왔어? 꿀도 안 먹으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아, 난.. 난 꽃등애 잡으려고"

"잉? 꽃등애?"

"응 꽃등애 잡으려고 왔어"

"그거 잡아서 뭐 하려고?"

"..... 잡았다 그냥 놓아줄 거야. 그냥 심심해서 나왔어."

"너... 너 설마?"

"설마?"

"우리 반 남자애들 보니까 꽃등애 잡아다가 날개 양쪽 다 뜯고 날지도 못하게 해 놓은 다음에, 지들 필통 속에 넣어놨다가 심심풀이로 가지고 놀다가는 또 꽃등애가 힘이 없어지니 나중에는 그냥 버리던데. 화단에 있는 꽃 위에 놓아주면 뭐 하냐고! 날지를 못하는데. 너 혹시 그런 짓거리하려고 지금 꽃등애 잡으러 왔다고 하는 거야?"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너 꽃등애 잡으러 왔다 그랬지. 여기 지금 꽃등애랑 꿀벌이 날아다니는데 너 그 차이는 알고 있는 거야?"

"그냥 좀 뚱뚱하면 꽃등애고 날씬하면 꿀벌 아니야"

"너 솔직히 말해. 잡아 본 적 없지?"

"........"

"말하라고"

"응...."

"꽃등애랑 꿀벌은 등 위에 있는 가로무늬가 떨어져 있는지, 붙어 있는지를 보고 알 수 있어. 꽃등애가 붙어 있고, 꿀벌은 떨어져 있지. 보니까 지금 꽃등애 때문에 온 건 아닌 것 같고.. 대체 여기 왜 온 거야?"

"..... 사실 묻고 싶은 게 있어"

"?"

"그게 그러니까..."

"뭔데?"

"네가 아침에 학교 늦는 이유가 있다고 했잖아.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 그게 왜 알고 싶은 건데?"

"모르겠어. 그냥.. 궁금해서,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야"

"말 안 해줄 거야"

"아니 좀 알려주면 안 돼?"

"조금 더 친해지면 알려줄게. 지금은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아"

"그래, 알았어"

나는 예주에 대해 알고 싶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서 서서히 차오르는 걸 느꼈다. 나중에는 인동초가 피어있는 화단만 바라보고 있어도 예주가 계속 생각났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인동초 화단이 잘 보이는 위치에, 그것도 창가에 앉아 있으니 예주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을 수밖에. 이게 좋아하는 감정일까? 생각만 하고 있어도 좋고, 이유 없이 하루 종일 생각나고, 이젠 비슷한 머리를 하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도 예주를 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까. 이게 좋아하는 감정이면, 대체 사랑하는 감정은 뭘까? 대체 그건 어떤 감정일까? 사랑? 내가 사랑이란 걸 이제 해보는 건가?

"앗 따가워! 흐앙아아앙..."

갑자기 예주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예주에게 달려갔다.

"... 무... 무슨 일이야!"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가는데,

"벌... 벌이 날 쐈어. 벌... 흐에에엥... 우아앙.. 우아아앙..."

지금 학교수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인동초 화단에 날아다니는 꿀벌이 웬만해서는 잘 쏘지 않는데, 꿀을 먹고 있던 벌을 예주가 건드린 것 같았다. 그래도 꿀벌은 많이 따갑지 않은 걸 알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 옷소매를 걷어봤다.

"헉!"

예주의 팔에는 아직 침을 쏘고 날아가지 않은 말벌이 앉아 있었다. 오른손으로 예주 오른팔에 앉아 둥그런 눈알과 주황색 더듬이를 움직이고 있는 말벌을 손등으로 퍼올리듯 날려버렸다. 말벌이 날아간 자리에는 검은색 점 같은 것이 있었는데, 벌 침 같았다. 침을 깊게 박아놓은 것이 예주가 많이 아플 것 같았다. 주변을 지나가던 아이들은 놀라서 우리 주변을 에워쌌고 아이들이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

2학년 교실이 있는 1층 창문으로 2-1반 장 선생님이 잠시 멈춰 쳐다보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간호실! 얘들아, 간호실로 데려가!"

3층에 위치한 간호실로 예주를 부축해 올라갔다. 예주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닭똥 같은 눈물이 눈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눈물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원래 눈물이 이렇게 많은 아이일까, 싶은 것이 평소 보여주던 털털한 성격과 다른 모습에 예주가 조금 낯설었다. 3학년 2반 반장인 명식이가 예주를 함께 부축해서 간호실로 갔을 무렵, 예주의 팔은 크게 부어오른 상태였고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이 가빠져 있었다. 간호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건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무슨 일이니? 어서 빨리 이쪽으로"

"네! 선생님 예주가, 예주가 벌에 쏘였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보건선생님은 예주를 침대에 눕히고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에 쏘인 거니?"

"소매 걷으면 바로 보이실 거예요. 팔에 쏘였어요"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더니 예주의 얼굴 상태를 확인하고 호흡이 안정적인지 살폈다. 그 뒤로는 소매를 걷어 벌 침을 보시더니 제거해야겠다고 말했다. 소독용 물티슈로 벌에 쏘인 부위를 몇 번 문지르더니 핀 셋으로 벌침을 뽑아냈고, 그 위로 얼음팩 찜질을 했다.

"예주야, 괜찮니?"

"..... 흐아아앙....... 어지러워.. 어지러워요.."

"음.. 움직이지 말고, 다리 잠깐 들어볼래?"

선생님은 예주 다리 밑으로 담요를 집어넣었다.

"혈압이 낮아져 어지러운 걸 수도 있단다. 알레르기 일지도 모르고.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하니, 담임 선생님께 가서 이야기하렴. 너희 둘이 수업 늦은 건 내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

"네 선생님"

명식이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 뒤 각자 교실로 향했다. 이미 반으로 향한 친구들이 진 선생님께 말을 해놓은 터라, 혼나진 않을 것 같았다. 교실로 들어서는데,

"초각아, 그 여자 아이는 괜찮다니?"

"예주예요, 예주"

"예주? 그 여자 아이 이름이 예주구나, 그래 괜찮다고 해?"

"아직 몰라요. 간호선생님이 조금 지켜봐야 한다고 했어요. 예주가 계속 어지럽다고 말했어요"

"그래, 일단 알겠다. 잘했어. 자, 그럼 책 펴라"

아이들은 예주가 말 벌에 쏘인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듯 연신 웃어댔고, 예주와 그곳에 함께 있던 나를 바라보며 이따금씩 킥킥 거리는 것이 나를 비웃는 듯 느껴졌다. 선생님의 수업준비하라는 소리를 뒤로 하고 책을 펴려는데,

"야"

혁진이었다.

"응?"

혁진이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더니 이어 말했다.

"그 단발머리 여자애, 3학년 3반이지?"

"응 맞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좀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평소에 말도 별로 없고 음악만 듣던 녀석이 내게 그렇게 말을 걸어오니 조금 낯설었지만 그게 싫진 않았다.

"뭐가 특이한데?"


"야, 거기 조용히 안 해!"

진 선생님은 웅성거리는 친구들 소리에서 유독 우리 둘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오니, 니들이 대표로 한 소리 듣거라, 하는 식으로 우리를 향해 호통을 쳤다.

"이따가 쉬는 시간에 얘기하자. 내가 말해줄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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