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3학년 3반으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었다.
"혹시 예주 학교 왔어?"
"오늘 예주 안 왔는데"
"아.. 어제 괜찮아졌다고 해서 나는 등교한 줄 알았는데"
"넌 몇 반인데?"
"나 3학년 1반"
"이름은?"
"초각이라고 해"
"응, 나는 선희"
"아.. 어, 그래"
선희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할 말이 있는 듯, 이걸 말할까 말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몸을 이리 꼬았다 저리 꼬았다 했다.
"무슨 할 말 있어?"
"예주는..."
"....?"
"예주는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애가 아니야"
내 예상이 적중한 것 같았다. 예주는 왕따를 당하는 걸까? 인동초가 있던 화단에서 혼자 꿀을 빨아먹고 있던 예주가 생각났다.
"왜?"
"예주는 곁을 잘 주지 않아. 그래서 친해지기 어려워. 어떻게 하면 예주하고 친해질 수 있는지 아이들은 알고 싶어 해. 가끔 이기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예주는 털털해서 여자 아이들도, 남자아이들도 좋아해. 한 번은 남자아이들이 예주한테 장난쳤다가 반대로 큰코다친 애들이 많아. 예주는 달리기를 잘해, 그리고 또..."
"그래, 무슨 말인 줄 알겠어. 그래서 결론이 뭔데?"
"결론.. 결론은 없어. 그냥 예주는 그런 애라고.."
"난 다른 애들 관계는 별로 안 궁금해. 지금 당장 내 눈에 안 보이니까 찾는 것뿐이야"
"너는 왜 자꾸 예주를 찾는 거야?"
"나도 몰라. 아무튼 알겠어, 고마워"
"응"
선희는 말이 많은 아이 같았다. 나는 예주만 찾으러 갔을 뿐인데, 자기 이름을 말하고 예주는 어떤 애인지 학급 애들하고는 관계가 어떤지, 그런 거 내가 알게 뭐람.
그 뒤로 며칠 동안 예주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명식이나 혁진이에게 본 적이 있냐 물었지만 고향 친구인 명식이도, 한밤중에 멍하니 서있는 것을 봤다고 말하던 혁진이도 예주가 안 보인다고 했다. 나는 등교하며 화단 옆을 지나거나 창가 쪽에 앉아 동인초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 바닥에 예주가 아른거렸다. 몸이 다 낫지 않았는데 괜찮다고 말하고 집으로 간 건지, 아니면 집으로 가니까 몸이 회복되질 않아서 낫질 않은 건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에 가서 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밥상머리에 앉아 있는 걸 보더니,
"여보, 애가 왜 저래? 학교에서 뭐 무슨 일 있던 거 아니야?"
"글쎄요.. 초각이 너 어디 아프니?"
"형 괜찮아? 눈이 풀려 있어 형"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괜찮아요"
"공부하기 힘들지.. 아이고.. 밥 먹고 얼른 가서 일찍 자"
"네, 네. 그럴게요"
"저 녀석 학교에서 무슨 일이 또 있었구먼!"
"아 그런 거 아니라고요. 괜찮아요"
나는 그럴 때면 방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천장을 보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예주.. 예주.. 예주야 넌 어디에 있는 거야 도대체, 왜 안 나타나는 거야'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5학년 혁승이 형을 태권도장에서 만났다.
"어이~ 초각이! 니 그때 겨루기 하자니까 도망갔지. 어? 니 4시에 왔다 갔다는 소문이 있어"
혁승이 형 얼굴은 꼭 눈이 옆으로 크게 찢어진 개구리 같이 생겼다. 혀가 짧아서 발음도 안 좋은데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초각이 아니라 '촥' '촥'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더 개구리 같았다. 꽥, 꽥, 울어대는 것처럼 들렸으니까. 그 형은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당하는 사람이었는데, 무시는 당할 대로 당하면서 자기보다 어린 학년들과 겨루기를 하고 이기면서 자신감을 키워가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나쁜 건 아니지만 나는 그 형이 말을 걸 때마다 미간을 찡그리면서 조금 툴툴거리거나 짜증을 냈다.
"내가 언제요. 형이 5시까지 오라고 하면 내가 가야 돼요? 형 괴롭힌다고 사범님한테 다 이를 거예요"
"에... 에.. 아니. 야, 장난.. 장난"
꼭 그랬다. 그 형은 겁이 많은데 이른다고 하면 금세 꼬리를 내리고 태세전환을 했다. 바보 멍청이 같은 혁승이 형. 그런데도 밉지 않은 건, 천성이 못 돼먹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개구리 같은 눈이지만 선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형이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측은한 마음에 그렇게라도 자신감을 채울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놔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각! 혁승! 너희 오늘 겨루기 파트너다"
"에....? 네? 뭐라고요?"
"각자 몸 풀고 겨루기 할 테니까, 매트 발로 차는 거 번갈아 연습하고 준비해"
"어휴....."
한숨 쉬는 나를 보며 혁승이 형은 헤헤 웃었다. 멍청한 형 같으니라고.
기태사범님은 우리 둘을 앞에 세워 놓고 앉아있는 수련생들 앞에서 몸을 풀게 하셨다. 사범님은 양손에 쥔 매트를 박수를 치듯 빵빵 소리가 나게 번갈아 가면서 교차시켰고, 이에 맞춰 나와 혁승이 형은 오른발, 왼발로 돌려차기 앞차기 뒷차기 옆차기 등 다양한 발차기를 했다.
"촤! - 뻥!"
"촤! - 뻥!"
"그렇지! - 뻥!"
"촤! - 뻥!"
"반대로! - 뻥!"
"잘한다! 자 다음!"
발로 매트를 걷어찰 때마다 나는 예주가 생각났다. 왜 계속 안 나타나는 거냐고, 왜!라고 속으로 되뇌며 매트를 발로 걷어찼다. 발로 걷어차면 찰수록 원망하는 마음 때문인지 발차기 강도가 세졌다.
"뻥! 뻥! 뻥!"
혁승이 형은 내가 화가 나서 그러는 줄 알았을 거다. 내 순서가 끝나고 혁승이 형도 몸을 다 풀었을 때, 사범님에게 혁승이 형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나를 힐끗 보더니 귓속말로 뭐라고 하는데 잘 들리진 않았다.
"어.. 어어, 그래"
"관장님 무슨 일이에요?"
"혁승이가 발목이 안 좋아서, 겨루기를 다음에 해야겠다고 하네"
관장님은 왜 그런지 알 것 같다면서 웃었다.
"네?"
"그래, 혁승이가 발목이 안 좋으니까 다음에 하는 걸로 하고, 전부 일어 섯!"
수련생들은 아까만 하더라도 멀쩡하게 잘 뛰어다녔는데 무슨 소리냐며 야유를 보냈고 혁승이 형은 연기를 하는 건지 진짠지 모를 표정을 짓고 한쪽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는 태권도장을 다닐 때 항상 형들과 함께 수련을 했다. 형들이 태권도장에서 씩씩하게 하는 모습이 남자답고 멋있어 보여서였다. 괜히 말을 걸면 혼이 날 것 같았지만, 형들은 잘해줬고 학교에서 만나면 가끔씩 먹을 것도 사주고 심지어 잘 몰라도, 자신이 다니는 태권도장 동생이라며 보이지 않는 방패막 같은 것을 수련생들 주변에 둘러줬다. 나도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태권도장을 다녔고, 연각이도 다녔다.
아빠는 연각이가 조금 더 강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관장님에게 무조건 형들하고만 겨루기를 시키라고 했다가 동생이 그 사실을 알고는 바로 그만뒀다. 더 다닐 수도 있었지만 동생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관장님은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고 아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장을 나오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품띠로 도복을 돌돌 감아 어깨에 둘러메고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집에 빨리 가서 동생이 보고 싶었다. 연각이. 연각이는 초등학교 1학년인데 목에 큰 점이 있다. 그게 바퀴벌렌 줄 알고 맨날 지우려고 없애려고 발버둥을 치다 최근 포기했다. 조금 더 크면 없애주겠다고 몇 번이고 말하면서도, 아빠는 그 목에 있는 점을 건포도인냥 꼬집었다가 입으로 가져간 뒤에 허허 웃으시며 먹는 척을 하신다. 동생은 아빠의 그런 짓궂은 장난을 싫어해서 인상을 쓰곤 했는데 그런 동생의 볼에 바짝 깎은 아빠의 수염을 수차례 비비면 동생은 소리를 지르곤 했다.
무슨 이유인지 재미가 없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동네 친구들이 떠들어대도 장난을 쳐도 아무 감흥도 없었다. 나는 예주가 보고 싶은 걸까. 아마 그런 거겠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바로 그때,
"야! 초각!"
"아니 너희 둘.."
"깜짝 놀랐지!"
"너네가 왜 여기 같이 있어?"
"널 기다렸지 인마"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 우 씨... 난 사라져 버린 줄 알았잖아!"
"그래, 예주도 나도 너하고 좀 할 말이 있어. 너도 할 말이 많을 텐데? 내가 사실 네가 물어볼 때마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미칠 지경이었거든"
"....그래 어디 얘기나 한 번 들어보자,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 둘은, 예주와 명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