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정훈이
그 뒤로 정훈이는 다른 사람이 됐어. 선생님에게 반항하거나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이 줄었지. 생전 집중하지 않던 수업에도 집중하려 노력했어. 그런데 난 그게 너무 이상했어. 위화감이 들었지. 어떻게 그렇게 180도 달라질 수 있는 건지. 담임 선생님은 내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만, 집에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긴 했어. 말 못 할 사정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이해하라는 듯 이야기를 하셨지. 쫙 찢어진 눈에 짧은 머리를 한 6학년 선배가 아니었다면 정훈이는 순순히 잡혔을까. 나는 의문이 들었어. 어쩔 수 없는 힘에 굴복해서 달라진 척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달라진 건지.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그 아이의 행동을 계속 눈여겨봤어. 이따금씩 나와 마주칠 때면 긴장을 한 모습이 역력했지.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건가 싶어서 명식이의 얘기를 더 이상은 하지 않았어.
그런 시간은 줄 곧 이어졌고 정훈이는 계속 착한 아이처럼 지냈어. 그렇게 몇 주쯤 지났을까, 정훈이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봐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기 시작했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주변 친구들 대하듯 그렇게. 그런데 난 그런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물론 내게 용서를 구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볼 때마다 깨어나지 못하는 명식이를 떠올리며 조금은 괴로워하길 바랐어.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깨어난 명식이니까.
내가 명식이를 다치게 한 건 아니지만, 정훈이가 나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명식이가 다친 거야.
명식이가 일어나면 나도 용서를 구하고 싶었어.
점심시간이었어.
급식소로 향하고 있는데 친구들과 소리를 지르며 옆을 지나치는 정훈이가 보였어.
나는 아직 활짝 웃을 수 없는데 웃고 있는 정훈이를 바라보니 화가 났어.
"..... 너는 웃음이 나오나 보네"
"... 왜? 웃으면 안 돼?"
"명식이는 아직도 너 때문에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어"
".... 미,, 미안해. 그렇지만 계속 그렇게 죽상을 하고 지낼 순 없잖아"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내는 거... 솔직히 못 봐주겠어. 너는 착해진 거야, 착해진 척하는 거야?"
"나쁜 행동은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네가 웃고 떠들면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모습. 명식이는 보지 못해"
"....."
"미안하지도 않아?"
"....."
"적어도 내 앞에선 웃는 얼굴 하지 마. 난 널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했으니까.."
"그래.. 그럴게"
"만약에라도 명식이가 일어나지 못한다면? 명식이는 그렇게 누워 있다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치만 아직 죽지 않았어.."
"....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나냐고.. 너는 그때 왜 나를 그렇게 밀어버린 거야? 네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면 명식이는 지금 그렇게 누워 있진 않았을 거야"
"난... 네가 부러웠어"
"뭐가?"
"..... 그냥 모든 것이 전부 다. 부러웠어"
"알아듣게 얘기해"
"네가 전학 온 날부터, 네가 입고 있던 비싼 옷, 그리고 네 모든 것이"
"그런 게 부러웠다고?"
"솔직히 아니라고 못하겠어. 부러운 건 사실이야"
"그게 그냥 괴롭힌 이유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너를 괴롭히고 싶었어. 우리 학교에 있는 애들 중에서 너 같은 애는 없었거든. 나는 네가 전학 온 날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모습도 부러웠어. 우리 아빠는 매일 술을 드셔, 그리고 항상 툭툭 건드렸어. 난 가끔 술도 마셨어. 나는 그걸 보고 배운 것뿐이야.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잘못된 건지 몰랐어. 그냥 생각없이 행동한 거야."
"... 그건 핑계야"
".... 그렇겠지"
"......"
"......"
"차라리 저기 누워 있는 게 너였으면 어땠을까, 매일 그렇게 생각해"
"...... 진심이야?"
"응, 진심이야. 너는 명식이 대신 누워 있어야 했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마지막 말 한마디와 함께 정훈이를 지나쳤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진 않더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알아도, 아이들은 늘 그렇듯, 쉽게 잊어버렸어. 큰일이 있다한들 내 일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잖아. 그건 애들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야. 정훈이는 내가 지나가고 나서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내가 있던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어.
"내가.. 내가....."
그날 밤, 나는 예주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저기 누워 있는 게 너였으면 어땠을까, 저기 누워 있는 게 너였으면 어땠을까.....'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린 채 며칠을 지냈다. 예주에게 용서를 구하고 나름 잘 지내보려 노력했지만, 예주를 마주칠 때마다 죄의식은 계속 따라다녔다. 기억이 희미해질 때면 예주는 내 앞을 늘 지나쳤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명식이와 뒤로 넘어질 때 나를 노려보던 예주가 생각났다. 나는 잠을 자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안아줬다. 아빠는 일어나 내게 꼭 한 마디를 하고 주무셨다. 술을 드신 날이면 나는 강아지 마냥 눈치를 보며 자는 척을 했다.
아빠의 몸에서 풍기는 개냄새는 법실에 향을 피워 놓아서 덕분에 집안에 옅게 흩어지곤 했다.
향을 계속 피워 놓아도 아예 없어지진 않았다. 아빠의 몸에서 나는 개냄새는 내가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명식과 예주의 기억처럼 짙었다. 이미 그날의 기억은 내게 흉터처럼 남아버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내겐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그 방법 밖에...
나는 그때부터 정훈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듯이 행동했어. 없는 사람 취급했다고 봐야지. 투명인간인 것처럼, 마치 너란 존재는 이제 내게 없다는 듯이 말이야.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난 후로부터,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더라고. 웃는 얼굴이 막상 안 보이니 내심 미안했어. 내가 혹시 더 나쁜 짓을 하게 된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치르는 건 맞는데,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괴로웠어. 그렇게 미웠는데, 또 이렇게 다시 마음이 누그러지려는 걸 보면서 나는 원래부터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였어. 이제 2교시가 끝나면 곧 집에 갈 예정이었지. 5교시가 시작할 무렵, 선생님이 물어보셨어.
"정훈이는 어디 갔니?"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뒤를 돌아 정훈이 자리를 바라봤어.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며 서로 눈을 마주쳤지만, 나도 잘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지. 뒤로 고개를 돌려 정훈이 자리를 바라봤어.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어. 내가 정훈이에게 마지막에 했던 말이 걸렸거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 선생님에게 말했어.
"선생님,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이제 수업 시작하려는데?"
"금방 다녀올게요. 너무 급해서요"
나는 뒷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어.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뛰어야만 했지.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향했어.
설마 했지만 내 예상은 맞았던 거야. 예상대로 정훈이는 거기 있었어.
옥상을 둘러싸고 있는 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
"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정훈이는 뒤를 돌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우두커니 바라봤어. 정훈이는 내가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어.
"... 계속 그 소리가 들려"
"...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너 빨리 내려와! 위험하게 뭐 하는 짓이야"
"나를 원망하는 소리가 귓가에 계속 울리고 있어.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너의 눈이 보여. 바닥에 의식을 잃은 명식이는 잠을 잘 때마다 내 위에 엎드려 있어.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하지 않아. 무서워. 잠을 자는 게 두려워, 너희는 꿈에서 계속 나와. 난 더 이상은 못하겠어, 못 견디겠다고!"
내가 정훈이에게 다가설수록, 정훈이는 뒷걸음질을 치려 했고 오지 말라고 소리쳤어.
"더 다가오면 난 뛰어내리고 말 거야"
소리를 지르면서 뒷걸음을 치고 있는 정훈이에게 말했어.
"너 지금 벌벌 떨면서 어딜 뛰어내린다는 거야"
"다.. 다가오지 마! 진짜.. 진짜 뛰어내린다고"
난 그 자리에 멈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려 애쓰고 있는 정훈이를 바라봤어. 내가 볼 때는 절대 뛰어내릴 수 없을 것 같았거든. 정훈이는 불량한 척하고 다녔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런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주변 환경에 휩쓸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못하는 한 아이가 그저 경거망동한 것뿐이었지. 마음은 그렇게 또 여렸던 거야. 나는 정훈이가 그저 자신이 이렇게 힘이 드니 조금 알아달라 하는 줄 알았고, 나는 확신했어. 절대 뛰어내릴 수 없을 거라고.
대화가 옥신각신 오갈 때쯤이었지. 난 천천히 또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정훈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지.
"정훈아 그러지 말고 내려와, 수업 시작했어. 너 그러면 또 혼날지도 몰라"
그 말을 한 순간 정훈이의 떨림이 멈췄어.
어떤 움직임도 없었어. 정훈이는 나를 등졌어.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어.
"예주야, 미안해. 난 이제 해방되고 싶어. 예주야, 날 용서해 줘. 명식이가 깨어나면 꼭 전해줘, 내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정훈아, 그게 무슨 소리야"
정훈이는 오른쪽 발 다리를 허공에 딛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왼쪽 발로 난간 벽을 밀었어. 정훈이는 그렇게 옥상에서 추락했어.
"안돼!!!!"
나는 정훈이가 뛰어내린 난간으로 다가가서 아래를 쳐다봤어.
정훈이는 뛰어내리면서 머리를 의식적으로 돌에 부딪힌 것처럼 보였어. 오른쪽 뺨을 바닥에 대놓고, 머리에는 피가 흐르는 건지, 터진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있었어.
4층 높이, 화단에 있는 뾰족한 벽돌, 두개골 함몰.
정훈이는 그때 살아있었을까?
나는 엉엉 울면서 교실로 향했어. 복도로 내 울음소리가 메아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학급반에서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나오셨지. 명식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와 똑같았어.
선생님과 애들이 복도로 나왔을 때였을거야. 갑자기 내 머리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 기분이 이상했어. 이게 무슨 느낌이지? 하고 생각했지. 그리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고 하더라. 그다음 기억은 없어.
난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어. 터널 같은 곳을 지나 앞에 보이는 불빛만을 따라가고 있었지. 암흑 속을 지나 터널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밖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어. 아는 얼굴들이었어. 나는 그때 기억을 잃고 다시 정신이 들었던 거야. 친구들이 나를 깨우고 있더라고.
"정신 차려봐, 예주야. 정신 차려보라고!"
"으.... 으응..."
"무슨 일이 생긴 거야?"
"..... 정훈..... 정훈이가...."
"정훈이가 왜"
"정훈이가.. 옥상에 있었는데.."
"정훈이가?"
"응, 정훈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렸어"
"정훈이는 아까 아파서 조퇴했다고 들었는데"
".......? 그게 무슨 소리야?"
"선생님이 그러셨어. 조퇴했다고"
"... 아까 분명 선생님이 정훈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셨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일단 일어나 봐. 괜찮아?"
"응.... 으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임 선생님에게 말했어.
"선생님.. 저 분명 똑똑히 봤어요. 정훈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걸 봤다고요.."
"정훈이는 아까 조퇴했는데?"
"네? 아니 분명 선생님이... 어디 갔냐고..."
"내가? 내가 언제?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나는 내가 꿈을 꾼 건가 싶었어.
아이들은 전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어.
나는 지은이에게 물어봤어.
"지은아 내가 지금 이상한 거야? 정훈이가 분명 옥상에서 뛰어내렸...."
"정훈이는 집으로 갔어. 예주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훈이가 뛰어내린 곳을 향해 달려갔어. 내가 본 것이 사실이라는 걸 꼭 증명하고 싶었어. 회색 돌 모서리에서 흘러내려오던 피를 분명 봤으니까. 정훈이는 분명 죽었다고. 하지만, 바위에 도착해서 아무리 핏자국을 찾아봐도 흔적 하나 발견할 수 없었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왜 쓰러진 걸까. 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이 움직였어. 모두 내가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하는 듯이 나를 쳐다봤고, 이내 나는 물었어.
"나.. 나는 왜 쓰러졌던 거야?"
"네가 갑자기 복도에 쓰러져 있었어, 나는 그 기억밖에 안 나"
무슨 일이었을까, 내 기억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아이들이 하나 둘 입을 열었어. 하지만 하는 말은 다 똑같았어. 다 내가 그냥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거든.
조금씩 소란이 잦아들 무렵이었어. 한 아이가 내게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이의 입모양만 움직이는 거야. 다른 친구들도 자기들끼리 뭐라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옆에 있던 지은이한테 말을 걸었어. 그런데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야.
뭔가 잘못됐다 생각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어. 그리고 몇 십 초쯤 지났을까, 아이들이 웅성거리던 소리가 내 귓가에 한 번에 밀려 들어왔어.